안녕하세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화종철입니다. 좀 전에 뉴스레터를 마무리해 놓고 뭔가 모를 분노에 휩싸인 글들을 보며 씻고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씁니다. 제가 썼기 때문에 맞다고 하고 싶고, 글을 쓴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저 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이럴 땐 확률로 판단해서 저 글은 보류하기로 합니다. 그냥 쓰잘데기 없는 글이나 다시 쓰려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소개를 해주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좋냐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저는 불쌍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걸 왜 솔직하게 말 안 하냐면요. 듣는 사람들이
- 나네(아닙니다)
- 나 정도면 불쌍하지(아니에요)
- 먹고살 만하니까 베풀고 싶어?(아니라고요)
- 그게 뭐야 차라리 예쁜 사람이라고 해(아니라고)
이 한마디를 하는 순간 온갖 하나도 안 맞는 추측과 내가 기어코 불쌍하고 말겠다는 고집 대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냥 순수하게 이해를 못 하는 사람도 있는데 ‘불쌍하다’는 말이 너무 흔한 말이다 보니 자신의 뜻대로 온갖 불쌍한 걸 끌어와서 저를 납득시키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좋다는데 왜 지들이 난리야 이 못 배워 먹은 놈들이.
사실 저도 많이 안 배웠기 때문에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 사정이나 형편이 좋지 않아 가엾고 마음이 슬프다
- 처지가 딱하여 가엾고 애처롭다
방언으로 보면 귀엽습니다. 불쌍헤다(제주), 뿔쌍하다(경남), 불쌍히다(전북), 불싸하다(함경북도) 함경도는 왜 강하죠?
저 사전도 딱히 의미를 정의하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가엽다 딱하다 이렇게 설명하면 설명이 되나요 ㅋㅋㅋ
제가 좋아하는 불쌍함은 실제적 불쌍함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불쌍한 이야기하면 온갖 고난 가진 사람이 나타나 불행 배틀을 벌이기 시작하는데요. 저도 끼고 싶네요. 저 어제 하루 한 끼 먹었는데 샐러드 먹었습니다. 샐러드도 두 끼 먹으면 찝니다.
제가 좋아하는 불쌍함을 지구 인류 단어 중에서 가장 가까운 걸로 꼽으라면 ‘애처로움’을 꼽겠습니다. 예를 들어 비련의 여주인공들, TV 밖에서 화려하게 나와도 좀 안쓰럽잖아요. 고윤정 같은 사람. 작게 보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예쁜 여자네’ 이런 답이 돌아오겠군요. 그치의 미약한 인내심과 게으른 생각을 들으며 저는 말하기를 포기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요. 뭔가 애처로운 사람. 가진 게 많은데도 자꾸 도와주고 싶고, 어디 자꾸 숨고 그늘져 있는 사람. 분명히 나보다 부잔데도 지갑 꺼내야 할 것 같고, 업무 못 하고 쩔쩔매면 대신해 주고 싶고, 같이 길을 다니면 업어주고 싶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애처로운 사람이요. 예쁜 여자냐고요? 예쁘냐의 정의를 사진처럼 순간으로 남겨서 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애처로운 사람은 객관적으로 미인이 아니더라도(객관적 이런 기준이 대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쁘고, 개중에 남자들도 상당수 포함됩니다.
애처로운 걸로 탑인 어떤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도와주고 싶은 재주로 거성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말로 표현은 할 줄 몰라도 다 아는 거예요. 애처로운 사람의 러블리함을. 그 쩔쩔매는 모습의 사랑스러움을, 당황 속의 진실을.
고향 집에 살던 캐른이(개)도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순해 빠져서 어디 가서 당하기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게 있는데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모르고, 제가 부모님 댁에 오랜만에 가면 제가 어디 가 버릴까 봐 계속 찾아다니다, 이윽고 소파에서 만나면 다른 표현은 할 줄 모르고 스윽 손에 엉덩이를 갖다주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바보 캐른이. 저는 동물은 전부 좋아합니다만(인간은 아닙니다) 캐른이보다 더 사랑할 만한 동물은 못 만날 것 같아 집에서 동물은 안 키우고 모기 키우고 있습니다. 그만 좀 물어라. 맛도 없는 피를.
그런 게 왜 좋냐고 한다면 모르겠어요.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100℃에 도달하지 않고 예열로 눈치만 보다 끝나 버리는, 폭발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 속에 뭉근 것들 들들 끓이다 보여주지 못하고 끝나는 많은 것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이것이 연애관에도 영향을 준 것 같고요.
사실 요즘은 사랑 자체는 충만하나 견디고 표현하는 데 지친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발달하니 하루에 가치 판단을 백몇 번씩 해야 하고, 이 가치 판단에는 많은 집중력을 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까끌한 느낌을 견디기 쉽지 않고 기존에 아는 사람들과도 감정 교류하는 데 피로를 느끼더군요. 체력도 과거보다 떨어지기 시작하니 이제 저는 일 외의 무언가를 못 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애처롭다 진짜.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에너지가 드는 일입니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보다 발견하기 어렵고, 저도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누군가는 말을 먼저 꺼내야 하니까요. 그냥 끌려다니고 싶을 때가 많은데 또 잘못 끌면 화가 나는 이 몹쓸 성격. 애처롭다 애처로워(n).
사람들은 아마 저만큼, 저 이상으로 힘들 거예요. 그러니 사랑 찾기가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요즘은 무해하지 않으면 사랑하기 어렵잖아요. 온 사방에서 사랑하지 말라고 공격을 하니까요. 푸바오와 동생들, 설호, 부캉이가 뭔가 잘못되어 가는 듯한 느낌의 사랑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리센느가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저 애처로운데 예쁜 존재. 마음 놓고 사랑하기 좋은 존재들이죠. 아참 어제 리센느 신보 나왔습니다.
글을 적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완벽하지 않으면 좀 어떻고 좀 유해하면 또 어떻고 남들이 보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신경을 그만큼이나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유해하면 안 된다고요? 역사적으로 한 획을 남긴 모든 매력자들은 대부분 유해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또 무해하다면? 주변 이야기 듣지 마세요. 저도 여러분이 불쌍 배틀 할 때 안 듣고 있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사라지지 않았다 2. 사랑에도 눈치를 보기 시작한 괴로운 시대 3. 이종철에게 소개팅 해주 아 아니.
글을 적으며 저도 피로에 반성하고요. 불쌍한 사람 찾아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글쓰기 전에 다 죽어 가고 있었는데 적다 보니 좀 살겠네요. 오늘도 이렇게 얼기설기 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들 모아놓고 수종철배 실전! 불행 배틀을 해보고 싶군요.
이전에 쓴 주화입마 글은 어떡할지 생각해 봤는데, 멤버십 위주로 공개하자니 멤버십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보류하겠고요. 비밀 댓글이나 댓글 주소 보내주시면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 높은 확률로 저에게 실망하실 겁니다. 몰라 나도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놔 이거.
하여튼 여러분도 사랑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수종철 어때요? 헛소리 그만하고 저는 다음 주에 돌아옵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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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로트로키
저는 적당히 불쌍해보이지만 그다지 존재감은 없어서 큰 동정의 대상도 되지 않고 주목도 끌지 못하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실속은 적당히 챙기는 삶은 지향하는 변태적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릴때부터 귀가 부처님귀 닮아서 복귀라느니 인상과 기운이 남다르다느니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쌍 해 보이고 싶었는데 불상 해 보이는 사람인 것이었습니다. 대강 튼튼하고 가벼운 주재료 위에 금칠이나 금색 칠을 한 것 같은 속이 비었고 그럴듯해 보이는 불상. 저는 불상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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