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테크 영업

18화. 더 바쁘게 미팅을 해야 한다는 건?

AI가 생산성을 높여 준다더니, 미팅을 엄청 하라고 하네?

2026.10.23 | 조회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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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 미팅, 그 어려운 여정

따라라란~ 따라란.

컬러링이 유행하던 시절 새로운 잠재고객에게 전화를 할 때면, 좋아하던 노랫가락에도 긴장감이 서려옵니다.

“여보세요?”

한창 바쁜 것 같은 고객사 차장님의 예민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이시죠?”

할 말이 많지 않아도 애써 밝고 친절하게 인사를 합니다. 얼굴도 안 보일 텐데 왜 웃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제품을 소개하러 찾아뵙겠다, 등등.

그랬더니 이번 주는 보고, 다음 주는 출장이랍니다. 3주 후에 다시 전화 달라고 하고 끊습니다.

뭐, 일단 고객사 담당자 상황이라도 알았으니 된 건가. 쩝.

그러고는 CRM과 엑셀에 적습니다.

‘담당자 아무개 차장. 이번 주 보고, 다음 주 출장.’

다시 이메일도 쓰고 다른 곳에도 전화합니다.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고객도 있습니다. 허허.

이번에는 다른 고객사 과장님입니다. 이번 주 시간이 될 것 같으니 보잡니다. 오, 좋구나.

혼자 오는지, 자기도 다른 팀원하고 같이 볼지 묻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가볍게 차 한잔하며 보는 것도 좋겠지만, 전문성을 보이기 위해 엔지니어(프리세일즈)에게 동행을 요청합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엔지니어가 어떤 페인 포인트가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봅니다.

‘나도 모르는데.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까 같이 가자고 한 거지.’

물론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한때는 SDR이나 ISR 같은 초기 리드 전담 인력이 이런 일을 맡았죠. 하지만 처음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계 회사나 신생 스타트업 영업담당자는 혼자 다 해내야 합니다. 고객이 늘어도 매일, 매주 유의미한 미팅을 채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제 AI의 도움으로 통화도, 미팅도, 이메일도 기록됩니다. 고객사 정보도 모으고, 무슨 말을 했고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도 정리합니다. CRM을 업데이트하고 자료까지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낱낱이 다 드러나게 도와주니(?) 영업은 남는 시간에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운동을 하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죠. 그만큼 더 많은 미팅과 성과를 요구받습니다. 더 세세히, 더 많이, 더 빨리, 더 제대로 미팅을 하라고 신호가 날아옵니다.

그런데 미팅을 더 하자고 하면 미팅이 그냥 생기나요? 누굴 어떻게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혼자 갈까요, 프리세일즈와 갈까요?

누군가는 만날 고객이 없어 고민이고, 누군가는 미팅에 쫓기면서도 정작 일이 진행되지 않아 고민입니다.


고객도 미팅을 원한다는데

RAIN Group의 2018년 조사에서 구매자의 82%는 먼저 연락한 영업과 적어도 가끔 미팅을 수락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영업과의 미팅 중 58%는 가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만났지만 시간을 쓸 이유는 없었다는 거죠.

고객도 이제 제품 정보를 먼저 찾아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Gartner가 2026년 발표한 조사에서 구매자의 67%는 영업 없는 구매를 선호했지만, 같은 조사에서 69%는 AI가 찾은 정보를 영업과 검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난다면 자기 회사에 맞는지, 무엇이 적합하고 아닌지 직접 확인하려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수많은 영업이 생각보다 그냥 갑니다. 일단 만나면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하면서 제품소개서를 들고요. 게다가 한때는 “난 잘 몰라요”라며 아는 척하지 않는 게 미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는 척하지 않고 듣는 영업과, 정말 모르는 영업은 천지 차이입니다.

제 생각에 미팅은 아래와 같이 세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형미팅 목적확인 사항참석자
관계 개발사람을 알고 신뢰를 쌓고, 조직의 흐름을 이해새로 알게 된 사람, 그들의 고민, 다시 만날 이유보통 영업 중심
사업 탐색실제 문제와 현재 상황을 확인확인한 문제, 제반 환경, 담당자, 더 알아볼 일영업 중심, 필요하면 프리세일즈
업무 진행데모·기술 검증·제안·의사결정 지원고객이 검토하거나 결정할 일들과 실제 다음 행동, 예산과 승인 등목적에 따라 영업·프리세일즈 등

관계 미팅도 물론 필요합니다. 새로운 시장에서는 만나 봐야 아는 일도 많으니까요. 시장을 배우기도 하죠. 다만 이 미팅을 사업 기회가 있는 것처럼, 고객에게 니즈가 있을 것처럼 내부에 공유해서는 안 되겠죠. 프리세일즈가 매번 동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기술적 신뢰가 중요하다면 첫 미팅부터 함께 가야 할 수도 있죠.

많이 만나는 것 자체가 틀린 건 아닙니다. 잘하는 영업은 실제로 고객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니까요. 중요한 건 많이 만날수록 왜 만나는지, 그리고 ‘누가 함께해야 하는가’를 영업이 구분하고 설명할 수 있느냐입니다.

다만 미팅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는데, 막상 미팅 건수를 채우다 보면 그렇게 되기 쉽죠.


그런데, 만날 사람 자체가 없다면?

당연히 문의가 오는 고객이면 만나고, 기존 고객·지인·이직한 담당자의 소개도 활용합니다. 같은 고객을 상대하는 SI나 리셀러 업체와 공동으로 접근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길마저 없으면요?

저라면 기존 계약 사례 한 건부터 되짚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고객은 왜 그때 우리 제품을 찾았을까요? 조직이 바뀌었는지, 기존 시스템이 한계였는지, 규제가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비슷한 변화를 겪는 회사를 찾아보는 거고, 그와 관련된 협력사나 지인들도 찾아보는 거지요.

17화에서 이야기한 Use Case를 먼저 정리하고, 왜 계약했는지도 찾아보고, 비슷한 고객군을 추리는 셈입니다.

다만 여기서 끝나면 또 ‘그럴듯한 리드 목록’만 생깁니다. 담당 부서는 어디인지, 관련 기술 공급사나 기존 사용자가 있는지, 연결될 경로는 무엇인지까지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존 고객이 클라우드를 확장하면서 보안 제품을 도입했다면,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는 기업뿐 아니라 그 구축을 맡은 MSP나 SI도 살펴보는 겁니다. 그 업체에 무작정 고객을 소개해 달라는 게 아니라, 협업을 제안해 보는 거죠. 상대에게도 도움이 될 일이 있어야 새로운 고객에게 접근할 길이 열릴 테니까요. 기존 고객의 담당자가 다른 회사로 옮겼다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고요.

물론 이렇게 새로운 고객을 찾는 일은 늘 쉽지 않습니다. AI는 여러 부분을 빠르게 도와줄 수 있겠지만, 담당자 연락처를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광고성 연락에 사전 동의가 원칙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직통 연락처를 구해 무턱대고 연락하는 건 현실적으로도, 개인정보 측면에서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고객을 찾아낼 때부터 ‘왜 하필 이 회사에, 지금, 이 문제로 말을 걸어야 하는가’라는 이유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명단만 쌓이고, 어렵게 연결돼도 회사 소개만 하다 끝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겨우 찾은 고객과 통화할 때 “제품 소개차 찾아뵙겠다” 대신 “최근 클라우드를 도입한 회사들이 권한 관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던데, 혹시 여기도 그런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했다면, 3주 뒤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대화가 시작됐을지도 모르죠.


미팅에서는 무엇을 알아낼까?

드디어 고객이 시간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회사의 업무, 최근 변화, 우리 제품이 필요할 수 있는 이유는 공부하고 가야겠죠. 가설이라도요.

이게 말은 쉽죠. 그들의 업무를 모르는데 어떻게 가설이 나오겠습니까.

고객은 평소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최근 무엇이 달라졌는지, 지금 쓰는 방법으로도 충분할 가능성은 없는지. 이런 것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엔지니어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다만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 같이 가자”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겪을 것 같은데, 기술적으로 맞는지 함께 확인해 달라”고 하는 거죠.

미팅에서는 준비한 스크립트를 외우고 읽으며 제품 소개를 하기보다 고객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 하나를 알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고객이 “내부적으로 좀 복잡해서요”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떤 부분이 제일 복잡하던가요?”라고 물어볼 수 있겠죠. 운영팀과 협의가 어려웠다고 하면, “운영팀은 뭘 제일 걱정하던가요?”라고 한 번 더 물어보는 겁니다.

처음 생각했던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운영 부담이나 책임 문제일 수도 있겠죠.

꼬치꼬치 질문을 많이 하자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꼬치꼬치 묻는 것도 참 부담스럽죠. 하지만 최소한의 질문을 통해서라도 내 가정과 생각을 바꾸는 게 고객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SPIN Selling』의 문제와 영향에 대한 질문도 이런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사례나 고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 하나 정도는 말해줄 수 있어야겠죠. 고객도 자기 문제를 영업에게 설명만 해 주려고 시간을 낸 건 아닐 테니까요. 설명이라도 해주는 고객은 참 좋은 고객입니다. 타인에게 쉽사리 내부 문제를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결국 미팅 전에 ‘오늘 무엇을 확인할 것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고객이 무언가를 하자고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고요.

다 아시죠? 이 쉬운 걸 저도 못했습니다.


바쁘게 만났는데, 무엇이 달라졌을까

미팅의 끝도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가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현업의 실제 문제가 궁금해졌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적 제약이 남았다면 검증할 내용을 정할 수 있겠죠. 고객이 아직 바꿀 생각이 없다면, 슬프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PoC까지 진행했으니 ‘와, 일이 잘 풀리는구나!’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 금액을 들은 CTO가 “그럴 바엔 기존 툴을 활용하면서 AI 도구로 개발해서 붙이지. 그냥저냥 해도 비슷할 것 같은데, 없던 일로 해.”라고 하면요? 

예전 같으면 가격을 좀 더 깎아 드리겠다며 매달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직접 개발하는 쪽과 비교하는 고객에게는 할인을 해주는 것도 더 이상 결정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영업 참 쉽지 않죠.

그러니 이런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봐야 합니다. 8화에서 이야기했듯이, PoC를 시작하기 전에 고객이 무엇을 기준으로 구매를 판단할지, 기존 도구나 자체 개발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도 알아야겠죠.

고객이 생각하는 성공과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다음 일정이 아니라 이 미팅으로 서로 알게 된 것과 다음에 진행할 일입니다. 결국 고객사의 상황과 판단이 달라져야 하죠.

GTM 리더들도 고민할 일입니다. 미팅 건수를 관리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관계를 구축하는 미팅인지, 실제 문제를 발견한 미팅인지, 고객이 다음 검토를 시작하게 하는 미팅인지 정도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프리세일즈가 왜 필요한지도 미리 알 수 있어야 하고요.

CRM에도 미팅 건수만 쌓기보다 어떤 목적의 미팅이었고 무엇이 남았는지, 고객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함께 기록하면 어떨까요.

AI가 자료 작성과 기록에 쓰던 시간을 대신한다면, 그 시간을 다시 미팅 건수로만 채우기보다 고객을 찾고 공부하고 준비하는 데 일부라도 써야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14화에서 본 Gartner 조사처럼, AI가 아껴준 시간을 더 가치 있는 일에 다시 쓰는 조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거죠. 

공부는 밤에 하라고요? 영업은 밤에도 고객을 만나죠. AI가 기록 못 한 술자리에서 역사가 다시 쓰이기도 하고요. 만나는 방식과 횟수는 달라져도, 결국 사람 사이에 신뢰가 쌓여야 일이 풀리는 순간은 여전히 있습니다.

한때 CRM에 ‘이번 주 보고, 다음 주 출장’이라고 적었습니다. AI는 이보다 훨씬 자세하게 기록하겠죠. 하지만 기록이 많아진다고 일이 진행되는 건 아닐 겁니다. 왜 진행이 이렇게밖에 안 되는지 그 이유가 더 자세해지겠죠.

그러다 문득 프리세일즈가 물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러 가는데요?”

답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만나 봐야 아는 것도 있으니까요. 다만 다음 미팅 일정을 동료와 공유할 때 세 줄쯤은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왜 이 고객인가. 무엇을 확인할 것인가. 왜 동료가 필요한가.’

미팅은 영업에게 활동 실적이지만, 고객에게는 자기 시간이고 함께 가는 동료에게는 전문성과 시간을 쓰는 일입니다. 모두 바쁜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게 바쁜 비즈니스맨의 함정이겠죠. 


다음 글 소개

그런데 여기까지는 영업이 직접 문을 두드리는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고객이 우리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제품을 검색하고 후보를 정해버리면요?

이미 미팅을 많이 하고 있다고요? 고객도 많다고요? 어쩌면 누군가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해왔거나, 마케팅과 함께 고객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고객이 먼저 우리를 알고, 필요할 때 찾아오게 만드는 일. 다음 글에서는 이 Demand Generation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참고 자료

  • RAIN Group, Top Performance in Sales Prospecting (2018.1 발표, 구매자 488명·판매자 489명)
  • Gartner, B2B 구매자 조사 (2026.5.20 발표, 구매자 645명, 2025년 8~9월 조사)
  • Neil Rackham, SPIN Selling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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