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평화는 지역의 것

작은 학교, 크는 마음

2026.10.07 | 조회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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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 나는 4년째 작은 학교 방과후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오후 2시 50분,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로부터 매번 똑같은 인사말을 듣는다. “선생님! 오늘은 뭐 해요?” 정말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그 안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놀아요!’ 혹은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요!’이다. 사실 두 가지 속마음은 같은 욕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놀이가 곧 배움이며, 배움이 곧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흔히 작은 학교라 하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경쟁보다는 다채로운 체험을 하며, 공동체의 경험을 시켜줄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다녀 본 여러 작은 학교에서는 정말로 화려한 체험 활동들과 넉넉한 자유 놀이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위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일회성 체험 활동을 여러 번 다니고, 자유 놀이 시간에 그저 강당을 어슬렁거리고, 학교를 마치면 눈치 보지 않고 핸드폰 게임을 실컷 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서 눈빛이 반짝거리고 가슴이 두근대는 그런 경험. 더 알고 싶고, 잘해 보고 싶고,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마음을 이끌어 내는 교실. 아이들은 어디서든 알아서 놀이를 만들어 논다고 하지만, 그 놀이의 세계에 계단 하나를 놓아 줌으로써 적당한 모험심을 자극해 줘도 좋지 않을까? 어른으로서 천둥 같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줄 의무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어떤 놀이터, 어떤 놀잇감이 아이들의 가슴을 부풀게 할까?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친구’라고 생각한다. 읽고, 쓰고, 셈하고, 실험하고, 실용 기술을 익히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분명 즐거운 배움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관계 속에서 신비한 감정과 도덕성을 키워 나간다. 그것은 찰나의 재미와는 달리 충만함과 행복감을 남겨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학교는 다양한 관계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학생 수가 적어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작은 학교에서는 학년 간 통합 수업이 많고 전교생이 모두 알고 지낸다. 막내로만 지내던 아이는 동생들 앞에서 의젓한 체하며 으쓱댈 수 있고, 외동인 아이는 더 넓은 의미의 형제자매를 만날 수 있어 신이 난다.

"한 학년에 학생 한명" 사진: 먼지

작은 학교가 만들어 주는 관계의 다양성은 또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의 가정환경은 도시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조부모, 한부모,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점은 오히려 아이들의 세계를 넓혀 갈 기회가 된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친구가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고,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고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친구는 그저 친구이기 때문이다. 학교 뒷산의 조화로운 풍경처럼, 작은 학교에서는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이 비교적 선입견 없이 한데 어울려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짧은 시간 드나드는 외부강사인 내 눈에도, 이런 천혜의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쌓일 때도 있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수업 형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학교는 꽤나 보수적인 곳이었다. 마을 교사로 학교 텃밭 수업을 하러 갔다가 만난 선생님으로부터 어려움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을 탐방 수업이나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학교에 제시했을 때 매번 막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려움은 도시도 마찬가지겠지만, 작은 학교가 가진 특별한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연극, 이웃 학교와의 통합 수업,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배우는 길 위의 교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학교 밖으로만 나가면 지천에 널려 있는 꽃과 풀, 논과 밭, 강과 산이 학교 선생님들과 생각보다 가깝지 않은 것도 아쉽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하동에서 유일하게 생태 과목을 방과 후 수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 외의 학교에서는 특별 수업의 일환으로 일 년에 몇 회 정도의 생태 수업을 진행한다. 물론 교과 시간 안에서도 자연물을 관찰하고 활용하고 이해하는 수업을 하고 있겠지만, 굳이 여기서도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창밖에는 도심 속 건물이 아니라 산이 떡하니 앉아 있는데, 학교 뒤편에서는 새들이 화려하게 울고 강물이 철썩철썩 소리를 내고 있는데, 똑같이 주어지는 교과서를 굳이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연의 생명들과, 둥그렇게 모여 앉아도 서로의 얼굴을 훤히 다 볼 수 있는 친구들. 이곳에는 교과서 밖에도 배울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정규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나는 학교 바깥에서 맴돌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쑥쑥 자라고 있는데,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을 안고 같은 마을에 사는 언니를 찾아갔다. 언니는 마을의 작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데, 언니도 무기력에 빠져 겨우 숨 쉬고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기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뭐 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우선 학교 밖에서 재미난 일들을 벌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학교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넘어야 할 벽들이 꽤나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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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으로 벌인 일은 동네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모여 함께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바람재 넘어 피자’라는 초대장을 손수 만들어 학교의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옳다구나!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훈련’시키려는 어른들의 흑심(?)을 모르고 ‘피자’의 미끼를 덥썩 물었다. (물론 학부모인 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모으는 것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주말에 집에서 핸드폰만 하던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간단히 체조를 하고 처음으로 학교 뒤편의 둘레길을 걸었다. 걷다가 이장님을 만나 물도 얻어 마시고, 신기한 마을 이름의 의미도 맞춰 보고, 둘레길 정점에 위치한 바람이 잘 드나드는 ‘바람재’에 앉아 간식도 나눠먹었다. 힘이 든다 싶을 때는 다같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바람재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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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기 피자집 보인다!” 우거진 숲을 나와 아스팔트 도로가 나올 때 즈음에, 앞서가던 몇몇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 그러자 모든 아이들은 바람처럼, 천둥처럼 우르르 뛰어나갔다. 그리고 도착한 피자집에선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매번 어른들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던 읍내를 직접 두 발로 걸어왔으니 얼마나 뿌듯하랴! 피자를 나눠먹으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니, 여기가 바로 학교잖아?’라고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 아이들의 세계를 작은 학교에만 가둘 수는 없지. 우르르 쾅쾅! 아이들과 발맞춰 신나게 균열을 내 보고 싶다. 여기, 이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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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 바다의 품에 안긴 하동에 살고 있습니다. 고쳐 지은 집에서 요가를 하고 이야기를 짓습니다. 마을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많이 웃고 가장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저보다 더 많이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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