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피스모모는 피스모모의 소중한 동료 미도리, 미수, 미카, 토모코, 미래, 나츠하님을 ‘전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일본과 한국을 이으며 활동하고 있는 전문위원님들의 이야기를 더슬래시에 담고자 합니다. 매달 찾아올 전문위원님들의 이야기를 더슬래시에서 만나보세요.
"일본과 한국을 이으며 활동하고 있는 피스모모 ‘전문위원'"
이 소개 글만 봐도 낯설 게 여길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과연 전문위원들은 무슨 활동을 하다가 어떻게 피스모모와 함께하게 된 사람들인지. 이 글에서는 피스모모와 일본 활동가들이 맺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평화교육은 모든 것에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화 그 자체를 배운다기 보다 삶을 위한 철학을 배우는 것. 공감의 힘을 키우는 것.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고, 내가 받아들여지면서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것.”
2014년 11월말 어느 날, 일기장에 적은 글이다. 한국에서의 ‘활동’의 출발점을 돌아보려고 일기장을 뒤져보면서 눈에 들어왔던 페이지. 처음으로 참여했던 <모모평화대학>의 마지막 강의 수강을 마친 후 쓴 소감이었다.
당시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디를 향해 가면 좋을지 매일 헤매고 있었다. 한국살이를 시작한 첫 해. 한 교수님의 추천으로 작은 비영리단체의 1인 사무국장을 맡게 됐는데, 한국사회를 거의 모르는 내가 체계적인 업무 인수인계도 없이 사업을 만들어가야만 했다. 나에게 일을 맡긴 교수님이 기대했을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경험은 한국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엔 일본 평화단체 <피스보트 Peace Boat>에서 12년동안 활동했다. 피스보트는 배를 타고 세계를 돌면서 분쟁과 전쟁, 환경, 세계화와 양극화 등 여러 문제를 마주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평화를 배워가는 국제교류 단체다. 연령대도 살아온 배경도 다양한 수백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석 달의 여행을 하면서 책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른, 그야말로 지구를 캠퍼스로 삼는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다만 그 때는 경험주의적인 측면이 앞서서 피부로 느끼고 감지한 평화의 배움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가시화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4년의 한국에서 만난 피스모모 그리고 평화교육 프로그램은 내가 어렴풋이 품어 왔던 평화에 대한 생각, 느낌, 감정에 정교한 언어를 주고 더 깊은 배움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겪은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아하!의 경험들을 일본의 옛 동료들과 나누고 싶었다.
1인 사무국장 임무가 끝나 다음 활동을 고민하던 참에 미도리에게 연락이 왔다. 미도리는 일본에서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서로배움의 자리를 마련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에듀트립’을 이끄는 청년 활동가였다. 그가 말하기를, 단체에서 해외 각국의 교육현장을 찾아가는 스터디투어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에 한국 방문 코디네이팅을 미수가 맡아주면 좋겠다는 거였다. 내게는 더없이 바라던 기회였다.
대안학교 방문, 대학생들과 교류 등 일정을 짜면서 나는 피스모모를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교육현장 방문 프로그램에서 평화교육 단체를 찾아가는 제안에 살짝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흔히 ‘평화교육’은 과거 전쟁의 반성과 무력 포기를 다짐한 일본헌법9조,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에서의 배움 등 고정화된 이슈에 갇혀 있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측대로 일본 참가자들은 피스모모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큰 울림을 얻었고, 단번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평화가 아닌 상태’는 전쟁이라는 큰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나의 주변, 학교와 교실, 직장, 가정, 그리고 사회 문화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평화를 이루어가는 생각과 행동도 내 손이 바로 닿는 곳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배움을 짧은 체험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아하!’의 순간을 일본어 속담으로 “눈에 붙은 비늘이 떨어지다”고 하는데 그 날은 몇 십 개의 비늘로 바닥이 반들반들했으리라.
미도리와 협업한 한국 교육현장 스터디투어는 그 후 7년에 걸쳐 네 번 진행됐다. 각 회차마다 새로운 참여자들을 맞이했고 방문하는 곳도 조금씩 다르게 일정표를 꾸렸지만 피스모모 방문은 빠짐없이 넣었다. 스터디투어 참여자 중에 미카와 토모코가 있었다. 단번에 피스모모에 매료된 미카는 대학교 졸업 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아 한국에 건너왔고, 피스모모의 첫 인턴으로 활동했다. 그런 미카의 펀딩을 뒤에서 지원한 토모코는 피스모모가 올리는 정보를 그때마다 본인 SNS 계정에 공유하곤 했다.
이렇게 연결된 미도리와 미카 그리고 나는 일본에서 피스모모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계획을 이야기하게 됐다. 때는 2024년. 미도리와 미카는 피스모모 평화교육 진행자인 아영과 대훈을 정식으로 초청하고 도쿄에서 첫 1박2일 워크숍을 기획했다. 참여자를 제대로 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일본 각지에서 30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된 평화교육 워크숍을 함께 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도쿄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자체적으로 조직된 팀의 초청으로 알찬 워크숍이 진행됐다.
물 흐르듯 이루어진 피스모모의 일본 활동을 반가워하면서도, 이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스터디투어와 워크숍 참가자인 미래, 평화교육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 나츠하, 그리고 토모코까지 총 6명이 머리를 맞대고 일본에서 피스 페다고지를 함께 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각자 살고 있는 지역이 달라 온라인으로 1년 반에 걸쳐 꾸준히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임은 단순히 피스모모 워크숍을 일본에 런칭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본 사회 및 정치의 외국인에 대한 배외주의, 군사주의로 기울어가는 분위기, 보수화되는 교육현장 등 평소 생활 터에서 고민하는 평화 문제를 마음 놓고 털어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올해 6월 오사카에서, 그리고 8월 서울에서 비로소 여섯 전문위원들의 오프라인 워크숍이 실현됐다. 각자의 삶과 평화의 씨앗이 된 경험을 나누고, 피스 페다고지를 다시 되짚어보고, 평화교육 진행자되기 과정을 실천해봤다. 우리 안에 흐르는 환대와 존중의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그리고 동시에 알면 알수록 더 마주해야 하는 폭력과 비-평화 이슈의 높은 벽을 느끼며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다.
이렇게 ‘전문위원’이라는 이름의 여섯 사람이 일본/일본어를 기반으로 평화교육 활동에 뛰어들었다. 각자가 쌓아 온 활동을 토대로 이름 짓지 못한 위화감, 걸림돌, 낯설음을 평화의 언어로 표현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가고자 한다. 어디선가 뿌려진 씨앗이 우리 안에서 싹튼 것처럼 평화의 씨앗이 여섯 바람을 타고 더 멀리멀리 퍼지기를 바라면서.

/조미수
도쿄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경기도 안산에 사는 ‘재한 재일조선인’. 한국과 일본, 남과 북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평화교육, 디아스포라 코리안에 관심을 가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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