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말과 일 둘 중 하나다. 사실 둘 다 어려운 일인데, 이 중 말은 좀 더 심각한 영역이다. 일을 못하면 짜증나고 답답한 수준이지만, 말은 상처가 되고 무언가를 결정하게 만든다. 사직서 또는 영원히 미워하기 등...그 한계는 알 수 없다.
단언컨대 리더든 구성원이든 [말]이 바뀌지 않으면 조직문화의 변화는 정말 힘들 것이다. 우리가 소통소통소통 사방팔방에서 소통을 외치는 터라 무뎌져서 그렇지...사실 이건 그렇게 다뤄질 만큼 가벼운 단어가 아닐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훈련하고 온 리소스를 쏟아부어야 할 영역인 것이다.
오늘의 내용은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어디에 잘 저장해 놨다가 리더의 소통 교육이나 원온원 가이드를 만들 때 써먹어 보도록 하자.
1. 부드러운 마찰: 예기치 않은 불협화음
대화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을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앞에 상대와 함께 나누었던 앞선 2개의 주제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만 했다. 상대는 이번에도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줄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한 가지 다른 생각이 있어요"라고 살짝 다른 방향을 튼다면 어떨까.
상대방은 그 순간에 “뭔가 다른 것이 시작되나?” 약간의 마찰이 흥미로운 엇박을 만든다. 집중력은 높아지고 긴장도는 살짝 올라간다. '한 가지 다른 생각'은 길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국물떡볶이에 치즈를 넣는 건 국물의 시원함을 해치지 않을까요?]
이 정도만 터치해주자. 상대는 더 많은 정보를 쏟아낼 것이다. 아니다, 치즈의 기름짐이 국물을 더 감칠맛있게 만들어 준다는 둥, 맛있는 집을 안 가봐서 그런다는 둥 다채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세부적으로 충돌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터치만 해주는 것. '아니요!! 그건 완전 에바죠! 사문난적이죠!' 라고 급발진 하진 말자.
2. 사회적 미로: 정보를 탐색하게 만들기
사람들에게 정보를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게 만드는 방식도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느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호한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보자. 가장 심플한 건 '왜?' '어떻게?' 를 물어보는 방법일 것이다.
- "왜 그렇게 생각해요?"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게 좋을까요?"
- "예전에 그런 상황을 겪었던 적이 있나요?"
이때 상대방은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꺼내게 된다. 그 결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은 자기 생각을 나누고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 사람은 원래 자기 얘기할 때 신난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이 신나는 걸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3. 내러티브 유도: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 되게 하기
그렇다. 사람들은 본인 생각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데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진 않다. 리더는 상대방이 지닌 주요 키워드를 알고 있어야 한다. 클라이밍, 노션, 팝업스토어, 화보촬영, 퍼포먼스 마케팅, UX라이팅, 개발, 재고관리, 조직문화 캠페인 뭐든 좋다. 내러티브의 '시작점'을 찾아주고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 중요한 건 [노션 기능 뭐 써요? / 달리기 10K 몇 분대에요?] 이런 정보를 캐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방의 자아와 연결된 이야기, 즉 그 사람만의 이야기나 신념을 꺼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 [문제/주제/상황/사건/사람]을 어떻게 보세요? 예전에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요."
이렇게 대화해보자.
이렇게 말하면, 물론 오글거리고 팀장님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겠지만. 상대방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자기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 자신의 내러티브를 말할 때 가장 마음을 열게 된다.
이 때 하나만 진짜진짜 조심하자. 물어봤으면 그걸 듣고, 계속 다음 이야기를 물어보자. 갑자기 '아 맞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하면서 화제를 본인으로 돌리지 말자. [전환 화법]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화법이다. 일단 공식적으로 대화하기 싫어지는 화법이기도 할 뿐더러, 매력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4. 허점 보이기: 약점은 강력한 무기
사람들은 완벽한 존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리더가 자신의 약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오히려 사람들은 더 강하게 끌리게 된다. 자신도 어떤 부분에서 힘든 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인간적 연대감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사실 저도 그 일을 해결하는 데 정말 고생했어요. 아마 그 상황을 겪어본 사람만 알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파토스를 자극하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이 리더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더 정확히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동료'로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라포가 형성되고,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약점은 강력한 인간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안물어봤는데 먼저 말하진 말자. 이상해보인다. (어쩌라고... 이런 느낌)
5. 탈출구 제공: 선택권을 주기
사람들은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느낄 때, 입을 연다. 솔직히 답정넌인 상황이라면 말해 뭐하겠는가. 빨리 그냥 당신 머릿 속의 정답이나 얘기해주길 바라겠지.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방법을 먼저 시도해보고 싶으세요?"
협박조로 말하지 말자.
이처럼 상대방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위 질문에선 심지어 '택일'도 아니다. '먼저 시도'라고 말했다. 우선순위만 정하게 해주는 거다. 이러한 방식은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며, 둘 중 하나를 택함으로써 버려야 하는 기회 비용의 갈등도 줄였다. 동시에 그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여 더 강한 참여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대신 말투에 조심하자. 말투를 조금 살벌하게 한다면 갑자기 [게임을 시작하지]느낌이 될 수도 있다.
6. 침묵의 활용 : 텐션을 높이는 감칠맛
흔히 청중을 집중시킬 때 3초 포즈(pause)스킬이 자주 쓰이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침묵의 무게는 굉장하다. 견뎌내야 한다. 일단 견뎠다면 디테일에 신경 써보자.
침묵에도 퀄리티가 있다. 그냥 먼 산 보면서 멍 때리는 침묵이 아니라, 이 때는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응시해보자. 노려보진 말자. 눈에 힘은 풀고 (가급적 이런 방식을 쓰고 싶다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자)
텐션이 확 올라갈 것이다. 상대는 처음에 '뭐지?' 싶다가 '왜 보지?'로 발전한 후, '뭔가 정보가 더 필요한가?' 생각에 다다를 것이다. 이것은 고작 몇 초. 다시 말하지만 눈빛을 조심하자. 이건 맹수들의 눈싸움이 아니다.
'어...맞네. 쓰읍..호오...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래...뭐야 멋진데?'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그냥 상대를 잠시 바라보자. 그 정도 눈빛이 딱 좋다.
이 모든 것은 잔기술이 아니다. 한 두 번은 어찌 따라 해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가 바뀌지 않으면 이틀도 못 갈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상대를 아는 것이 더 큰 가치이다.' 라는 점이다.
말을 참고 아끼고 침묵해야 할 때가 많다. 나도 썰 풀고 싶고 입이 근질근질거려 미치겠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몹시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특별함이 한 문장, 두 문장 쌓이면 평범함이 되고 만다.
기억하자 말은 적을수록 귀하고, 작을수록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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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일상에서나 업무에서나 소통과 대화의 기술이 참 중요하더라구요. 잊고있던, 혹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주어 좋네요. 동료나 가족, 친구와 대화에 좀더 신경쓰면서 적용해봐야겠어요.
일할시간
오 맙소사!! 첫 댓글이예요!! 감사드립니다 :) 말이라는 것이...참 너무 흔하면서도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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