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J : 좋은 게 좋은 건 좋지 않아요

불편한게 많은 INTJ 직장인 라이프

2021.10.20 | 조회 1.6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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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mbti 과몰입 증상을 겪는 분들이 저 말고도 참 많으실 것 같습니다. 비과학적이고, 단순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지만,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INTJ 인간으로서 사는 답답한(?) 회사생활에 대해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모두의 경험이 알파벳 4글자로 꼭같이 이뤄지진 않겠지만,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친구들도 있구나 생각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긴 말 할 것 없이 프로 불편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판단은 잠시 내려놓고, 저의 항변(?)을 들어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일희일비의 새 콘텐츠로 '고민상담' 사연들을 받고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드는 자잘한 고민부터 마음속에서 털어놓지 못했던 큰 고민까지, 

여러분의 마음 속 이야기들을 담아 메일이나 DM(@1he1be)로 보내주시면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을 삭제/재구성 한 뒤 답장을 글로 써 보내드리고 브런치 등에 게재하는 형식으로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로 삼키고 뒤돌아 서게 되는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 축에 속한다. 솔직히 말해서,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상에 대해 말하자면 한도끝도 없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대체로 시니컬한 나의 성격 때문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꼴도보기 싫은(?) 유형을 꼽자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mbti 과몰입러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나의 mbti는 INTJ다). 그리고 그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이 바로 인생의 1/3 이상을 허비(...)하는 회사라는게 가장 큰 문제일테다. 사실 좋은 게 좋은 거란 태도는 불필요한 갈등을 없애주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모든 일에 눈을 부릅뜨고 네가 틀렸네 내가 맞았네 하며 싸울 순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거나,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봐야만 하는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 바로 회사생활에서 말이다)

 

우선 좋은 게 좋은 거란 말 속에는 ‘이해되진 않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란 대전제가 깔려있다. 네가 좋은 게 나도 좋은, 혹은 우리가 합의한 ‘합리적인 합의구역’ 안에 포함된 결론이 도출됐다면 애초에 이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합리적으로 협의된 문제라면 누군가 불만족해 우리 모두가 논의의 장으로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나올 일도 없었을 테고, 그렇기에 이 말을 쓸 이유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을 써야 하는 순간은, ‘불만족스럽지만 적당히 덮어두자’는 결론에 이르러야만 성립 가능하다.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윗사람의 마음에 따라야’ 하는 순간에 생득적 거부반응을 보이는 INTJ 인간으로선 이 순간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권력관계에 있어 상위를 차지하는 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일종의 ‘고위층 전용’ 언어다.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이 “거 참 적당히들 하자. 좋은 게 좋은 거지 왜 싸우고 그러니?”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부모의 부부싸움에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 좋은 게 좋은 거니 적당히좀 합시다”라고 훈계하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위계질서 상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이 말을 했다면, 쟤는 정신머리나 싸가지 둘 중 하나가 없거나 혹은 둘 다 없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을 테다.

 

그러니 결국 이 말이 주로 쓰이는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이 ‘좋은 게 좋은 거’란 발화와 태도는 결국 ‘까라면 까’의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까라면 까가 좀 더 (90년대 혹은 엣날 군대 스러운) 직설적인 속마음의 표현이라면,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은 ‘나는 문화인이므로 굳이 권력 관계를 대놓고 드러내진 않겠지만 너는 (입을 다물고) 결정된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로 읽히는 말일 뿐. 본질은 결국 같다는 얘기다. 권력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애초에 사용할 수 없는, 그리고 합리적인 결정해 이르지 못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말. 그래서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을 남발하는 자들을 극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말까지는,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동의할 수 있으나, 망하면 다같이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 일들을 결정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면, ‘쟤는 혼자 죽지 왜 나까지 머리채 잡고 지옥불에 끌어들이냐’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살다보면 – 특히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 결국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텐데, 우리는 좋은 게 좋은 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이 갈등들을 회피하지 않고 다룰 수 있을지 까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구멍난 보트에 함께 승선해서 같이 바닷속 물고기 밥이 되어보는 진기한 체험을 하지 않을래? 하고 묻고싶은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좋은 게 좋은 거라 말하는 대신 ‘왜 이 결정이 불편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 (비합리적) 결말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 하는 건 본인의 마음 속 미해결된 문제를 투사한 결과물일 뿐이니 말이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말하는 구성원이 더 좋다고 말하는 건, 결국 자기 속이 좁다는 사실을 반증할 뿐이다. 진짜 리더라면 어떤 결론에 이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되묻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정말 좋은 결과물을 얻고 싶다면, 좋은 게 좋은 거란 말 대신 모두가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묻는 과정을 꼭 거쳐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더라도 곪은 부위의 상처를 째고 다시 꿰메야지, 지금 당장 불편한 상황에 눈을 감아버리면 결국 더 큰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테니까. 그러니 부디 평화를 좋아하는 존재들이여, 좋은 게 좋다는 말을 발화하기 전, 딱 한 번 만 더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 

 

INTJ들이 사회성이 조금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래서 팩트로 맞다 보면 조금 아플 순 있겠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문제의 본질을 보는 통찰을 존중해 준다면 함께 더 멋진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INTJ들, 아니 나 스스로의 사회성 훈련과 독설 완화 훈련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불편함과 문제제기를 받아주는 리더가 있다면, 다시 말해 뾰족하게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날을 세워 얘기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일들이 ‘좋은 게 좋은’ 걸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앞으로 더 많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회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빈다. 새해 소망으로 좋은 게 좋은 건 좋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나는 오늘도 쓸쓸히 점심시간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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