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도 삶은 끝나지 않으니까

2021.10.16 | 조회 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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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여러분에게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개인적으로 저에겐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하고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항상 차고 넘치는 저기에,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곤 하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순간마다 언젠가의 일기를 꺼내보곤 합니다. 지치고 힘든 순간마다 꺼내보는 글. 오늘은 해마다 제게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보는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디 이 작은 삶의 순간들이 당신에게 한 걸음의 용기가 될 수 있기를.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날들이 있었다. 아니, 어떤 날들 뿐만 아니라 삶을 통해 나는 방황을 꿈꿔왔던 것 같기도 하다. 안주하면 굳어버릴까봐, 나아가지 않으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까봐, 나는 매일 푸드덕대며 삶을 쏘다니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아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을 탐구해보겠다고 몇년 간 상담도 받고 상담 공부도 해봤지만, 마음 깊이 내려갈수록 오히려 나는 내 안의 어둠들과 더 깊이, 더 오랜시간 싸워야만 했다.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밖엔 설명되지 않을, 그리고 계속되어야 할 나와 나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이 잦아든 건,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 한 해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논문을 마치고 그냥 놀았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최대한 책임감 있게 해내려고 노력하고, 집에 와서는 그냥 하고싶은 대로 살았다. 난생 처음 게임에 몰두하기도 하고, 미친듯이 책을 읽기도 했으며, 넷플릭스에 빠져 밤을 새기도 했다. 물론 처음엔 마냥 불안했다. 남들은 집을 사고, 이직을 하고, 또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이 자리에서 점점 현재란 늪에 빠져드는 건 아닐까 싶었다. 평생 나를 붙잡아왔던 그 '주어진 것을 열심히'라는 명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코끼리처럼 불쑥불쑥 내 머릿속을 침범했다. 내안에 깊이 자리잡은 '진짜 주인'처럼, 그의 말은 늘 내 삶 전반에 불안을 몰고왔다. 이렇게 살면 결국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은 그 숨막히는 불안을.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버티며 '그냥 살아보는' 연습을 해봤다. 애인이 매일 나에게 해주는 말, 쉬어도 괜찮다는 그 말을 스스로에게 매일 기도문처럼 들려주면서. 그렇게 일년 쯤 지났을까. 어느날 문득 무언가로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냥 내 삶은 그대로 살아진다는 걸 이제야 나는 '몸으로 알게' 되었다. 머리로만 알던 그 말이 내 삶 속으로 스며드는 데 딱 그만큼의 '실천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내 삶이 조금은 또렷하게 보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에 대해서도. 어쩌면 나는 흙탕물이 된 마음을 첨벙대며 매일 왜 내 삶은 투명히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히, 가라앉혀 버리고 난 뒤엔 이렇게 내 삶의 바닥들도 예쁜 모래알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데도.

 

그래서 요즘은 나름대로 잘 지낸다. 이전처럼 시시때때로 '특별하지 않은 내 삶을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가진 것들이 꽤 과분하고 감사한 거란 생각도 든다. 일생 거울속의 나를 보면 늘 혐오감이 앞섰는데, 요즘은 거울 속의 나를 자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나대로인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앞으로의 내가, 그렇다고 대단히 크게 삶의 궤도를 수정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무'의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는 건 아니다. 종종 생각나는 즐거운 일들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날것이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 또 다른 무언갈 만들어 갈 것이다. 다만 달라진 건, 가끔 내 삶이 어지러울 때 스스로 '멈춰서는' 법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무언가를 향해 달려나가는 대신, 잠시 조금 더 건강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도록 쉬어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 그 '쉼을 아는 몸'이 된 나는 이제 스스로를 완전히 태울 때까진 달리지도, 스스로를 학대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위해 애쓰지도 않을테니까 말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삶. 전시하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 내가 하고싶은 것들은 단순하다. 매주 열심히 야근해서 번 돈으로 주말엔 애인이랑 집에서 소고기를 사다 굽고, 퇴근하고 나서는 그날그날 읽고싶은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것. 성적도 직업때문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즐겁게 무언가를 공부하며 사는 것. 살면서 꽤 많은 잘못과 실수들을 저질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그 문제들과 마주하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고민한다는 것.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내 안을 어지럽히는 많은 것들, 특히 타인의 시선, 사회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잘라내는 나와 이별하고 불필요한 언어들과는 거리를 둘 줄 아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 그렇게 내 중심을 한장한장 단단히 쌓아가는게 진짜 ‘나답고 개성있는’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어떤 가치가 중요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늘 자유로움, 나다움이라고 답해왔다. 그래서 20대 내내 남들과 달라지려고 아등바등거렸다. 잘함, 잘나감, 삐딱함, 일탈 그 모든 것들은 삐딱선을 그리면 나다울 수 있을 거란 착각에 기반했을 것이리라. 그러나 서른다섯, 이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지나는 이 시기를 살아내며 나는 깨닫는다. 그 ‘다름’은 ‘보통’이란 타인의 시선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다는 것을. 외려, 남들이 뭐라하건 내 삶이 ‘내 안의 평범함’으로 고요해질 수 있을 떄, 그제야 진정으로 나는 자유롭고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 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건 간에, 지금 내가 딛을 수 있는 이 한 발과 한 숨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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