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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릴 기미 없는 시나고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어요.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좌표를 통해 내가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요. 오스만이 세 차례나 진입을 고전한 성벽. 메흐메트 2세의 끈질긴 공방전에 끝내 무너진 바로 그 성벽. 순간 성벽 근처에 꼭 한 번 둘러보고 싶었던 모스크가 있음을 기억해냈어요. 본래 동로마인들이 코라 성당이라고 명명하던 곳이, 모스크로 바뀐 이후로는 새 이름을 얻었지요. 카리예 모스크. 내 귀에는 똑같이 청명하게 들려 미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이름, 코라와 카리예.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이것이었대요. 하기아 소피아에 입성하기. 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교회의 중심에서 그는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지요. 메흐메트 2세는 동로마 상징이던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함으로써, 땅의 주인이 진정으로 바뀌었음을 공표했어요. 용도가 변경된 건축물이 뿜어내는 독특한 기운이 있다고 나는 믿어요. 이를테면 요정에서 절이 된 길상사에,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클럽이 된 베르크하인에 그러한 기운이 흐르지요. 두 어깨에 기대를 듬뿍 짊어지고 지어져, 사명을 갖고 기능하다, 소유권이 넘어가 다른 일을 하게 된 공간들. 그 전환의 까닭에는 배신이, 파산이, 전쟁이, 체제 전복이 있을 수 있지요. 그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리되는 경우도 있겠고요. 속에서 성의 축으로, 생산에서 쾌락의 축으로 건너간 공간에서 옛 기저는 공기 중에 남아 미세한 영향을 끼쳐요. 공간이 지나온 축을 더듬어 찾기. 동아줄처럼 들어올리기. 내가 길상사와 베르크하인 한 모퉁이에서 즐겨 하던 놀이가 그것이었지요.
언젠가 토머스 핀천을 닮은 미국인이 내게 말한 적 있어요. 당신은 참 머큐리얼(mercurial)해. 오해는 마, 그러니까 좋은 의미로. 오해 말라는 걸 보니 딱히 좋은 말은 아니겠거니 싶어, 더는 자세히 묻지 않았어요. 대신 그 의문의 단어를 잊지 않으려 머리에 꾹꾹 새겨놓았지요. 머큐리얼, 머큐리얼. 집에 돌아가 뜻을 찾아보니 변덕스럽다는 얘길 교양 있게 한 것이었더군요. 머큐리, 혹은 헤르메스는 신의 전령으로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고 빠르게 이동하지요. 변신과 속임수에 능하고요. 그는 삶과 죽음을,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가요. 원소 수은(mercury)의 이름이 바로 여기에서 왔어요. 방울로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졌다가, 이리저리 굴러다녀 손에 잡히지 않는 특질을 재기발랄한 신의 이름에서 따왔다지요. 게다가 수은은 저온에서 응고되니, 아예 자신의 상태까지 바꾸어버리는 그 변덕이 정말 머큐리의 특징과 똑 들어맞지요.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 머큐리얼할 뿐 아니라 머큐리얼한 상황과 공간에 매력을 느껴왔던 듯해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아나톨리아의 역사에 매혹된 것도 그래서였겠지요.
카리예 모스크 매표소에는 일본인 관광객 한 명과 나뿐이었어요.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프랑스인 노부부가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다며 직원과 무의미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지요. 모스크 경내는 한적하고 고요했어요. 청소부가 콧노래를 부르며 바닥을 쓸고, 그 옆에는 아기 고양이 서너 마리가 서로를 깨물며 떼구르르 바닥에 구르고 있더군요. 그곳에 영영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깊은 평화가 맴돌았어요. 모스크 건물 내에 들어서니 돔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가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복원이 잘돼 있었는데, 모스크로 전환된 후 성화 위에 회칠을 한 덕에 오히려 원형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더군요.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것은 《아나스타시스》라는 제목의 프레스코화였어요. 아나스타시스는 '일으켜 세움'을 의미하는데, 말 그대로 예수가 하데스 바닥에 주저앉은 아담과 이브를 양손으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지요. 예수는 유달리 역동적으로 보였어요. 그간 나는 예수를 이렇게 인식했어요. 무얼 대단히 하지 않고도 은근히 기적을 행하고, 비밀스럽게 은총을 내리고, 남모르게 희생하는 이. 깡마르고 입이 짧으며 걸음이 느릴 것 같은. 주도적으로 완력을 써 인간을 구제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어요. 처음으로 난 머큐리얼한 예수를 본 거예요.

모스크에서 나오자 깔깔 떠들며 언덕을 내려가는 아이들이 보였어요. 얼핏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였는데, 내 쪽을 돌아보더니 일동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지요. 그중 청일점이던 남자아이가 내게 다가와 한국어로 인사했어요.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주워들은 한국어 단어를 섞어가며 적극적으로 대화를 청했어요. 벌써 숙녀 태가 나는 여자아이들은 내가 자기네 나라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따지고 들더군요. 머리가 어떻게 됐어요? 우리는 나중에 꼭 한국 남자를 만날 거예요. 성숙한 여자애들이 남자 얘기 이후 흥미를 잃고 사라지고 나서도, 남자아이 셀림은 내 곁을 지켰어요. 우리는 한참을 함께 걸었지요. 한국어를 열심히 독학 중이라는 셀림은, 한국에 언제 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가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진지한 고민을 늘어놓았지요. 셀림의 한국행 계획 논의가 일단락되자, 셀림은 아주 중요한 주제라는 듯 침을 꿀꺽 삼킨 후 물었어요. 그런데 누나, 무슬림이에요? 내가 아니라고 하자 아이의 깨끗한 눈에 눈물이 슬쩍 고였어요. 셀림은 쎄쎄쎄하듯 내 양손을 부여잡고 나를 구원해주겠다고 했어요. 누나,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라 하세요.
에쉬헤뒤 엔 라 일라헤 일랄라, 베 에슈헤뒤 엔네 무함메덴 압뒤휘 베 레쉴뤼 문
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أَشْهَدُ أَنَّ مُحَمَّدًا رَسُولُ اللَّٰه
셀림의 입에서 나의 입으로 옮겨온 것은 샤하다라고 불리는 신앙 고백으로, 이런 뜻을 가져요. 나는 알라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한 무함마드가 그분의 종이자 사도임을 증언합니다. 샤하다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증인 앞에서 암송하면 이슬람에 입교할 수 있다지요. 금요일마다 카리예 모스크에 기도하러 간다는 셀림은 그렇게 나를 카리예화했지요. 셀림의 뜻대로 내가 개종이 되었을는지는 몰라도, 나는 카리예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요. 지나온 축을 잊지 않고, 기억에 회칠해 그 빛깔을 오래오래 보존하는. 일으켜 세워지고 평화로우며 값비싼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하피즈(쿠란 암송자)계의 스티비 원더로 불리는 카니 카라자 명창의 아름다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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