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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사회문화시설 덧대기

어느 유랑자의 노트

2026.10.15 | 조회 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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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해

나는 기록학 바깥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기록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기록관이나 기록원(이하 아카이브)보다 도서관, 박물관, 문화공간과 각종 ‘○○센터’에 더 가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기록생태계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문화와 인문 기반의 생태계에서 더 진하게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록의 공간을 볼 때도 자꾸 다른 공간들이 겹쳐 보인다. 직업병이다.

 

최근에 이런 공간들을 다녀왔다.
최근에 이런 공간들을 다녀왔다.

특히 요즘 여러 지역의 문화유산기관들, 사회문화시설을 찾아다니면서 기록의 공간에 대한 고민이 조금 깊어졌다. 도서관에 가고, 박물관에 가고, 이런저런 지역 거점 공간을 드나들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아카이브는 사회문화시설인가?

또 사회문화시설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 그렇게 되길 원하는가?

물론 이 질문은 국가기록원 같은 중앙기관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커지니 여기서는 일단 로컬/지역 아카이브 정도를 떠올려주면 좋겠다. 먼저 내가 말하는 ‘사회문화시설’은 엄밀한 법률용어가 아니다. 아래의 정의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공모 안내 및 현장 질의응답을 글쓴이가 재구성한 내용이다.

  • 사회문화시설이란 지역주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여가 및 사회적 교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성·운영되는 시설로, 도서관·박물관 등의 문화유산기관뿐 아니라 생활문화시설, 지역문화공간 등을 포괄하는 개념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지역 아카이브는 그런 곳일까.

법부터 살펴보면 답은 조금 재미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기록관과 기록원은 기본적으로 ‘기록물관리기관’이다. 기록물관리의 범위에는 생산·분류·수집·평가·보존뿐 아니라 공개와 활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공개와 활용부분에서 공공 그리고 사회적인 기능 그리고 문화유산기관·문화시설로서 역할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문화예술진흥법」이 규정하고 있는 문화시설에는 공연장, 박물관·미술관, 도서관, 문학관 등이 명시되어 있지만 아카이브(기록원)는 별도의 시설 유형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현재 제도 안에서 아카이브는 우선 ‘문화시설’보다는 ‘기록물관리기관’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분명하다. 

국내의 대표적인 아카이브 홈페이지 소개를 읽다가 가슴이 웅장해졌다(p).
국내의 대표적인 아카이브 홈페이지 소개를 읽다가 가슴이 웅장해졌다(p).

그렇다고 아카이브가 기록물관리기관 그것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해외의 다양한 아카이브 및 원칙에서 아카이브의 역할은 보존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법적 분류와 별개로 기록학의 전문적 원칙은 오히려 사람들의 접근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국제기록관리협의회(ICA)의 「Principles of Access to Archives」 첫 번째 원칙은 공공기관 아카이브에 대한 시민의 접근권을 명시한다.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기록에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이라 모호한 말이다. 기록물을 신청받고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그 접근의 조건이 채워질 수 있을까?

The public has the right of access to archives of public bodies.

ICA. (2012). Principles of Access to Archives. International Council on Archives. 8p

학계에서도 아카이브를 닫힌 보존공간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케틀라르(Eric Ketelaar)는 이미 2008년 「Archives as Spaces of Memory」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와 공공 아카이브가 연결되고, 아카이브가 사회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아카이브는 기록이 들어와 멈추는 최종 목적지라기보다 기록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공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connecting people’s stories with public archives … 

Nor is the archive ever finished. The openness of the archive outweighs the closure of a trial …

less collection driven, but directed towards archives as social spaces and records as social entities.

Ketelaar, E. (2008). Archives as spaces of memory. Journal of the Society of Archivists, 29(1), 9–27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또다시 직업병이 발동했다.

이런저런 사업에서 정성평가에 골머리를 앓던 사람답게 “그럼 다른 문화유산기관 및 사회문화시설을 평가하는 지표를 지역 아카이브에도 한 번 가져와보면 어떨까?” 싶어진 것이다. 오히려 이 평가지표에서 '접근'은 물리적 접근과 비물리적 접근으로 그 기준은 명확한 편이다. 이렇게 했을 때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얼마나 쉽게 갈 수 있는가. 문이 열려 있는가. 행사가 없는 날에도 이용할 수 있는가. 시민은 프로그램의 참가자에 머무는가 아니면 기록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주변의 시민조직, 학교, 도서관, 박물관, 예술가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연령이나 장애, 정보격차와 관계없이 다양한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가.

기존 생활SOC, 생활문화센터, 문화영향평가 지표를 아카이브에 덧대어 보았다.
기존 생활SOC, 생활문화센터, 문화영향평가 지표를 아카이브에 덧대어 보았다.

사회문화시설, 문화적 공간을 우리 기관 및 시설이 고민하고 있다면, 위 지표를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그중에서도 물리적 접근성, 이용의 일상성, 시민 참여성이라는 세 가지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지역 아카이브에서도 이제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하고, 전시를 열고, 페어/페스티벌도 연다. 반가운 변화다. 

 

여기에서 ‘개방’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서고를 활짝 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록에는 개인정보가 있고, 비공개 기록이 있고, 보존환경을 지켜야 하는 자료가 있다. 오히려 내가 궁금한 것은 사회문화적 기반시설로서의 개방이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시민을 단지 행사의 관객이나 교육 프로그램의 수강생으로만 부르지 않으며, 기록의 생산·활용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 그리고 그 만남이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아카이브와 지역사회 사이의 관계로 축적되는 상태.

 

얼마 전 한 사서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책을 싫어한다. '책'하면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나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웃었지만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기록을 좋아하나? 아니 기록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기록을 알까? 기록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기록이 중요하니까 아카이브에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책이 중요하니까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종류의 공급자 중심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아카이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카이브가 반드시 도서관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물관이나 생활문화시설을 닮아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카이브에는 아카이브만이 해야 하는 전문적인 일이 있고, 지켜야 할 원칙과 책임이 있다.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은 그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지역사회의 문화적 기반이 되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아직은 나 역시 답보다 질문이 많다. 그래서 당분간 이런저런 기록 페어와 페스티벌에도 부지런히 기웃거려보려고 한다. 아카이브가 시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문을 열고 있는지, 시민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사가 끝난 뒤에는 무엇이 남는지 살펴보면서 말이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한 발씩 떼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면 조금 더 응원하고 연대하고 싶다. 그리고 아카이브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는 이런 질문도 기록의 생태계 안에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기록인들이 준비하는 행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보려 한다. 

p.s. 마지막으로 항상 이상한 타이밍에 요상한 질문을 던져도 진지하게 받아주는 두 분께 애정 어린 감사를. 덕분에 또 하나의 쓸데있을지도 모르는 질문이 생겼다.
p.s. 마지막으로 항상 이상한 타이밍에 요상한 질문을 던져도 진지하게 받아주는 두 분께 애정 어린 감사를. 덕분에 또 하나의 쓸데있을지도 모르는 질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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