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주간모기영 88호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영화 <논-픽션>(2018)", [5회 모기영] 후원에 감사합니다!

2023.05.27 | 조회 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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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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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 다섯 번째 방 : 영화 '논-픽션'(2018)

취미라 주장하지만 실은 낭비벽에 가까운 습관이 제게 있습니다. 책을 사거나, 책과 관련된 물품을 구입하는 일을 다른 구입에 비해 아까워하지 않는 점이에요. 그중에서 제가 가장 사치를 부린 것은 몇 해 전, 40여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이북 리더기였습니다. 제품명은 ‘크레마 엑스퍼트’인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른 이북 리더기보다 화면 크기가 훨씬 커 텍스트를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 거기다 전용 펜이 있어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든 건 이름이었어요. ‘엑스퍼트’. 가방에 이북 리더기를 넣어 다니면 왠지 흐뭇해졌습니다. 책의 전문가가 된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다 얼마 못 가 금방 후회했습니다. 비싼 값에 비해 이북 리더기의 기능이 불만족스러운 것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어요. ‘내 허영심에 내가 걸려 넘어졌구나.’가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전자책을 읽는 건 아무래도 임시적인(혹은 대안적인) 독서일 뿐, 진정한 독서는 종이책이어야 해.’라는 나이브한 생각 말이에요. 그렇게 저는 크레마 엑스퍼트를 책장에 고이 끼워두고서 한동안 꺼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종이책보다는 확실히 손이 가질 않네요.

영화 <논-픽션>, 출처: 다음 포털
영화 <논-픽션>, 출처: 다음 포털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계와 우리 시대의 독서 경험에 대해, 비루한 제 경험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흥미롭고 지적인 논의들이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논-픽션>에 있습니다.(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마땅한 줄거리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신 에릭 로메르 감독의 인장이기도 한 ‘대화’가 쉴 새 없이 오디오를 채우죠. 대화 그 자체가 영화의 줄거리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일정) 궤도에 오른’ 출판사의 편집장인 알랭(기욤 까네)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종이책의 매력은 여일한데, 그렇다고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을 거부할 순 없다는 식으로요.

독서에 대한 그의 이중적인 선택은, 영화의 제목과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어딘가 상징적입니다. 영화의 원제는 <Doubles vies>, 그러니까 ‘두 개의 삶’인데요. 영화는 독서에 관한 이중적 삶(종이책-전자책)의 메타포로, 각 인물들이 불륜 관계라는 설정을 활용합니다. 그들은 배우자와 파트너 중 한 사람을 결정적으로 선택하는 일을 유예하는 중이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불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은 자의이건 타의이건 그들의 이중적 삶(불륜)이 종료됩니다. 각자 자신의 배우자에게로 돌아가죠. 여기서 우리는, 알랭이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게 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 <논-픽션>, 출처: 다음 포털
영화 <논-픽션>, 출처: 다음 포털

문득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시선이 더 먼 곳을 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단순히 ‘책’이라는 영역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전통’(과거)과 ‘현대’(곧 다가올 미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요. ‘과감히 혁신을 지향하다가 자칫 정체성을 잃으면 어쩌나’라는 전통의 염려와 ‘달라지려 하지 않는 완강함이 오히려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현대의 조급함이 우리 앞에 던져질 때, 둘 중 하나를 우리는 쉽게 택할 수 있을까요? 좁은 예이긴 하나 들어보자면, ‘챗 GPT’가 쓴 소설과 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문학의 범주를 넓혀야 할까요, 혹은 그것들로부터 문학의 범주를 지켜내야 할까요.

이 풍성한 논의에 번뜩이는 해답을 낼 만한 지적 능력이 제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로 제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속 알랭은 종이책의 종말을 선언하는 로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죠.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겨울 빛>을 아느냐고. 텅 빈 교회에서 홀로 남아 목회하던 목사를.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이자, 자명한 현실을 때로 거부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결국 저도 알랭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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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같은 시간, <장기자랑>(2023)상영회

왼쪽부터 - 최은(모기영 수석프로그래머/부집행위원장), 이미경 님(영만 어머니), 김명임 님(수인 어머니)
왼쪽부터 - 최은(모기영 수석프로그래머/부집행위원장), 이미경 님(영만 어머니), 김명임 님(수인 어머니)

 모기영 후원자분들을 위한 선물로서 준비한 시간이었는데, GV로 함께해주신 어머님들께도, 모기영 식구들에게도 더할나위없이 좋은 선물이 된 상영회였어요. 

멀찍이서 마음으로만 이어져 있던 관계, 사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관계가 살갗과 목소리와 눈물과 웃음의 진동으로 직접 마주칠 때 생기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인 어머니 김명임님, 영만 어머니 이미경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숫자와 이름만으로 기억되던 세월호의 아이들을 예술과 삶으로 멋지게 되살려(!) 내셨어요. ⋯ 연극 “장기자랑”의 연출가 김태현님과 생존학생 애진의 어머니 김순덕님 같은 일을 모기영이, 한국교회가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고립되기 쉬운 이들과 무관심하기 쉬운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일을 누군가는 부지런히 해내고, 김명임 님처럼 그 존재를 알아보고 해석해내는 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조금 더 유연하고 너그럽고 씩씩해지지 않을까요.모기영이 가장 하고 싶은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분노가 아니라, 아름답게 싸우려고요.” 그분들이 이야기하셨습니다. -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페이스북

객석을 가득 채워주시고, 뜨거운 열기로 동참해주신 초대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조만간 또다른 선물의 자리를 궁리하고 있어요.
기대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

 


[5회 영화제 후원모금]

강*중, 강*영, 곽*환, 김*현, 김*관, 김*호, 더불어숲평화교회, 로고스서원,박*혜, 박*영, 박*선, 배*우, 박*홍, 북인더갭, 샬롬자유학교, 신*주, 아카데미숨과쉼, 윤*훈, 윤*원, 이*기, 전*영, 정*하, 지*실, 최 *, 허*호 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미지 클릭 - 5회 모기영 후원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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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면서 행인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옷차림만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도 조금은 가볍고 산뜻하시길,
짧은 연휴지만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환기되시길.
모기영은 소망합니다.


글 : 이정식, 강원중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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