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프로의 이책저책]
"희망의 이유"
이 세계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는 이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희망을 갖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뉴스에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싶은 유혹에 자주 빠져들게 되었죠. 근래 제가 SNS 활동을 현저하게 줄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새로운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파르르, 분을 내다가도 ‘아, 이건 내가 한 마디 보탠다고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싶은 일들이 쌓이면서 촛불도 피켓도 외침도 노래도 다같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연대감도 모두 아득하고 부질없게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신간 서적 리스트에서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를 보고 진심으로 궁금해졌어요. 백발이 단정한 이 할머니는 어떻게 아직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Reason for Hope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1934년생인 제인 구달은 당시 65세였어요. 이번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에는 2023년 1월, 90세의 제인 구달이 한국어판을 위해 쓴 특별서문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이 분은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 맞더군요. 씩씩하고 확신 있는 목소리로 구달 할머니는 외쳤어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함께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세상을 구하자.”라고요.
한 번 더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저의 절망과 냉소는 뭔가를 어설프게 아는 것 또는 안다고 믿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고요.
침팬지를 품에 안은 위인전기나 학습만화 표지그림들로 잘 알려져 있듯이, 제인 구달은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이자 생태환경운동가입니다. 스물세 살 때 친구의 초청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했던 것을 계기로 그는 탄자니아의 곰베 지역에서 침팬지의 생태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동물들이 생각이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에 제인 구달은 야생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침팬지의 ‘닮음’은 도구 사용이나 모성애와 공동체의식 같은 긍정적인 면에 머물지 않았어요. 충격적이게도, 제인 구달이 가까이서 지켜보고 관찰해온 침팬지들은 무리에서 한 마리를 따돌리기도 하고 집단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죽여서 갈가리 찢어 먹기까지 했어요. 먹을 것이 풍족했는데도 말이지요. 제인 구달을 아끼는 지인들은 이 관찰결과를 보고서로 발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인간과 닮은 침팬지의 동족간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갈등에 몰입하는 인간 성향과 폭력성, 특히 20세기의 명분 없는 전쟁들과 나치의 만행까지도 ‘본능적인 것’ 또는 인간의 숙명으로 합리화하려는 학자들에게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일이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베에서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들이 반복되어 일어났고 제인 구달은 이 점을 은폐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인간과 닮은 침팬지 무리의 폭력을 가까이서 보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전쟁들과 분열,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 인류애의 바닥을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어떻게 끝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90평생을 살면서 제인 구달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인, 진짜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인 구달이 말하는 희망의 이유 또는 근거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놀라운 인간의 두뇌, 둘째, 자연의 회복력, 셋째,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결단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굴의 인간정신이죠. 20세기 내내 인간의 두뇌가 얼마나 못된 일에 잔뜩 사용되어 왔는지, 자연의 회복력을 핑계로 함부로 파헤친 땅과 바다가 얼마나 많은지, 젊은이들의 혈기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악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어떻게 폭력과 착취의 세상을 만들었는지, 그가 모를 리가 있을까요. 하여 얄팍하게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을 꾹꾹 누르고 어른의 지혜를 경청해 봅니다. 젊은 날 그를 사로잡았던 곰베의 고요와 고독 속에서 어쩌면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던 것 같아요. 뿌리와 새싹의 힘 같은 것 말입니다.
요컨대 희망이란 가녀린 새싹에서 벽을 뚫는 힘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인 구달은 알려주었습니다. 어두운 땅속의 튼튼한 뿌리는 볕으로 나온 여린 잎으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는 사실도요. 뿌리의 깊음을 아는 자가 새싹의 경이를 말할 수 있습니다.
[ 모기수다 시즌2 ]
🎬 3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3월의 모기수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2016)입니다.
📍 시간 : 2023년 3월 11일(토) 오후 3시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카카오톡 모기영 수다방 / 강원중 사무국장 010-2567-4764
* 모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오픈 카톡방에 부담없이 입장하셔도 됩니다 :)
소중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 2023년 2월 1-28일 기준
강도영 강원중 구귀남 김대현 김명관 김영준 김응교 김재균 김준수 김진선 대지교회 박일아 박은영 박준용 박준형 박진성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송정훈 신동주 신원균 오늘교회 이동은 이범진 이유혁 이신석 이종화 장다나 정민호 조소희 지은실 채송희 최규창 최은 최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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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게도,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을 잘 지내보려고 준비한 책의 제목이 또 『무모한 희망』이네요.
목차를 따라 굶주린 이들과 아픈 이들, 거처가 없는 이들과 독살당한 이들, 사냥꾼에게 쫓기는 이들과 훼손당한 이들에 대해 40일 동안 읽고 나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부활의 소망’이겠지요.
무모할망정 어쩔 수 없이, 희망을 곱씹게 되는 봄입니다.
고맙습니다.
글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3월 4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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