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와 이름들
이삭은 노아와 모세(모자수)를 낳고, 모세는 솔로몬을 낳았고, 사무엘과 요셉과 이삭은 형제입니다.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의 희한한(?) 족보입니다. 최근 애플TV+ 드라마로 공개되고 번역서 초판이 절판되면서 품귀현상을 낳은 화제의 책이죠.
소설은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하던 훈이와 양진 부부의 딸 선자를 중심으로,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선자의 남편이 된 백이삭은 평양의 양반출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부터 병약해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독립운동가였던 큰형 사무엘을 따라 목사가 되기로 했지만 그의 약한 몸은 늘 걸림이 됩니다. 평양에서 형 요셉이 있는 오사카까지 먼 여행을 감행했다가 결핵으로 죽을 뻔 한 이삭은 영도에서 선자네 모녀의 돌봄으로 생명을 구합니다. 이삭은 유부남 고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와 결혼한 후 이삭의 형 요셉과 경희 부부가 살고 있는 오사카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지요. 그리고 노아와 모자수를 낳았어요. 그렇게 해서 선자네 가족의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름뿐 아니라, 이민진의 소설은 성경 인물들의 모티프를 여러 곳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백이삭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가진 선자를 아내로 받아들이면서 창부 고멜을 아내로 맞은 호세아를 묵상했어요. 선자에게 복음이란 그렇게 ‘받아들여짐’이었어요. 신앙이 전혀 없었지만 이삭 덕분에 수치를 면하고 목사의 아내가 된 선자는 나중에 한수와 재회했을 때, 요셉의 일생과 그를 이끄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난 요셉은 “형들은 나를 해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게 하셨다”고 고백했죠. 그것은 세상의 악에 대해 묻는 선자에게 선량한 남편 이삭 목사가 가르쳐준 지혜였어요.
돌이켜보면 영화 <미나리>(2020)에도 성경의 이름들이 여럿 등장했지요. 감독 이삭(정이삭)이 낳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야곱(제이콥)이고 야곱의 어린 아들은 다윗(데이비드)이었고요, 바울(폴)이 예언자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미나리>와 『파친코』는 모두 이민자의 자녀로 자란 한국계 미국인 감독과 작가의 작품이죠.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자 미국인 또는 한국인이자 일본인, 아빠이고 아들이자 남편이고 아내이고 딸인 이들의 삶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터운 사유를 지닌 서사입니다.
여러 세계에 속해 있으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의 서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신의 품에서 ‘이름’을 찾은 것이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실적으로는 그만큼 이민 사회에서 종교, 특히 개신교가 차지해온 의미가 컸다는 사실의 방증이겠지요. <미나리>가 암시하듯이 교회란 어디서건 적잖은 문제를 지닌 사교의 장이기도 했겠지만, 모두가 어렵던 시절, 누가 뭐래도 낯선 이들과 디아스포라의 이방인들을 포용해온 환대의 공동체였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 삶을 종교서사가 아니라 대중서사로, 종교의 언어보다는 차라리 세속의 언어로 만나고 있는 겁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이름들이 지닌 소원 또는 욕망에 대해 잠시 생각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미나리>의 제이콥도, <파친코>의 모자수도, 아들에게 왕의 이름을 주었더군요.
드라마 <파친코>는 원작의 서사에 역사성을 한층 더 부여했습니다. 예컨대 원작에서 가볍게 다룬 한수(이민호)의 과거사에 한 회차 분을 통째로 할애하면서 1923년 관동대지진의 참사를 추가해 넣었습니다. 원작자가 소설의 첫문장에서 “우리를 망쳐놨다”고 강렬하게 표현한 그 ‘역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친코> 시즌1은 백년 가까운 가계도의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솔로몬(진하)과 늙은 선자(윤여정)의 이야기를 과거와 나란히 오고가도록 구성했어요.
인상적인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왕의 이름을 지닌 솔로몬은 자이니치 2세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즉, “중력을 거슬러” 꼭대기로 날아오르고 싶었어요. 일단, 추락을 면하기 위해 도쿄의 노른자위 땅 호텔 건설 부지에 ‘알박기’를 하고 있는 한국인 할머니를 설득해 땅을 팔게 해야 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나라를 빼앗긴 이국땅에서 차별과 억압을 견디고 살아남은 할머니는 수억 앤을 준다 한들 그들에게 집과 땅을 넘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선자가 솔로몬에게 묻습니다.
“니도 저 꼭대기에 올라가고 저 할매도 편히 죽는 법은 없나?”
“없어요.”
그리고 솔로몬은 다음 대사를 일본어로 말합니다.
“그게 제가 사는 방법이에요.”
“..... 니가 착한 아라는 거 내 안다. 할매는 니 바르게 키왔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에 다녀왔어요
지난 6월 15일(수) 개막하여 22일(수)에 성황리에 폐막한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에 모기영 스태프가 총출동했습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프로그래머로 맹활약하고 있는 모기영의 강도영 사무국장과 박일아 프로그래머의 노고를 확인하는 현장이기도 했어요. 활기찬 현장 분위기와 엄선된 프로그램, 참신한 이벤트들이 돋보이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확인하며, 모기영이 함께 기뻐합니다.
네 번째 모기수다 <코다>(2021)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이죠. 션 헤이더 감독이 연출한 미국영화 <코다>와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는 원작이 같습니다. 실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인 베로니크 플랑의 베스트셀러 『수화, 소리, 사랑해! 베로니크의 CODA 다이어리』를 각색한 영화들이에요. 지난 모기수다에서 프랑스 영화와 미국영화의 화법이 어떻게 다른지 잠시 비교해보기도 했고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이야기하다가, 각자 눈물을 흘린 대목을 밝히는 고백타임을 갖게 되기도 했답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전혀 안 울었다고 답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지요.^^;;
아래 사진은 웃음과 감동이 있었던 수다를 마치며 서로에게 손인사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코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사이기도 해요. “I really love you...”
[모기수다]는 주간모기영 독자여러분께 열려있는 작은 모임입니다.
격주로 열리는 모기수다에 참여하기 원하시는 분은 본 메일에 댓글이나 회신으로 관심을 표해주시거나 카카오채널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에 문의해주세요. 온라인 참여 링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주간모기영 구독자 여러분들을 특별히 환영합니다.🙌🏻
장프로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2021)
지난 2주간 정기후원으로 모기영을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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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지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아들고 한동안 일상이 정지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새삼 생각합니다.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어요. 종일 장례식장에 머물며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고인에 대한 타인의 기억들을 수집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것이 그렇게도 많은 걸까요.
그 와중에 예술이 잠시 기댈 너른 품이 되어주었습니다.
빈 들에 홀로 선 나무에 실을 엮고 긴 숨을 담은 풍선을 하늘 멀리 날려 보내는 화면 속 이미지는 그날 저에게는 한 생명을 멀리 떠나보내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정지되었던 시간이 다시 그렇게 흘러갑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2022.6.25.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수석프로그래머
최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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