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아의 요즘 한국영화
길복순이 문을 여는 방법
<길복순> 변성현, 2023
영화 <길복순>은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 세 번을 면한다’는 유머를 구사하며 ‘살인’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계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물이자 블랙코미디입니다. 길복순(전도연)은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으로 중학생 딸을 키우고 있죠. 그녀는 이 업계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대기업 MK 소속의 A급 킬러지만, 딸 길재영(김시아)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상대의 약점을 찾고 다음 수를 예측해서 이기는 그녀의 전술이 전혀 먹히지 않기 때문이죠.
발로 차버린 아버지의 세계
길복순이 청부살인업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입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폭행과 가혹행위로 그녀를 교육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복순은 차민규(설경구)가 그녀의 아버지를 자살로 위장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켜오던 차민규가 열일곱의 목격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도중, 복순은 아버지가 천장에 매달려 겨우 딛고 있던 의자를 발로 차버리죠.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이제 아저씨가 목격자라며 아버지의 세상에서 벗어납니다.
우연히 살인 현장을 본 순간, 복순의 선택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만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부모의 폭력에서 해방되었다고 보기에는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환희는 무척 해맑기 때문이죠. 이후 복순이 현장을 즐기고 있다는 듯한 특유의 표정은 마치 ‘순수한 악’의 모습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어린 복순이 아버지를 죽이자마자 지어 보였던 함박웃음이 차민규에게 각인된 이유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집 안에서 폭행당하던 복순이 이제 차민규의 규칙안에서 폭행을 가하는 복순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십 대부터 차민규에게 죽이는 법을 배워왔던 복순은 동종업계 선후배들이 회사 하나 차려서 일거리 좀 달라는 투정에도 가차 없이 차민규의 세계를 떠날 생각이 없다는 못을 박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딸 길재영입니다.
엄마가 된 킬러의 고민
영화 <길복순>의 첫 장면은 일본 야쿠자의 대부 오다 신이치로(황정민)와 대결하는 길복순입니다. 사무라이 칼을 든 오다와 이마트에서 삼만 원 주고 산 도끼로 싸우던 길복순은 싸움의 실패가 그려지자, 바로 총으로 해결해버리지요. 그가 잠든 사이 잠입에 성공했다면 바로 죽였어도 될법한데 청부살인을 하는 사람이 진검승부를 왜 벌였던 걸까요? 그것은 재영과 했던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오정식이라는 정치 후보자가 아들을 부정 입학시켰던 뉴스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복순과 달리, 재영은 “부모라면 세상이 원래 공정하지 않다고 가르칠 게 아니라, 공정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니야?”고 반문했기 때문이죠. 집에 오면 문 닫고 들어가는 딸과 어쩌다가 대화를 터도 말문이 콱 막히는 통에 복순은 킬러로서의 계약을 연장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딸에게 직업(?)을 숨기기도 점점 어려워지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대신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재영을 보며 자꾸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옳은 일과 그른 일, 그리고 떳떳한 일
청부살인 업계를 전문화하기 위해 차민규가 만든 세 가지 규칙은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고, 반드시 회사를 통해 일이 분배돼야 하며, 소속된 킬러는 회사가 지시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평생 그 규칙을 따르며 승승장구하던 길복순이 세 번째 규칙을 어기는 일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딸 재영이와 대화를 나눴던 오정식 후보가 지지율을 위해 아들을 자살로 위장해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오정식의 아들임을 알아본 복순은 결국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살인을 막고 위험을 자초하게 되죠.
이 일을 계기로 길복순을 죽이려는 자와 길복순을 지키려는 자 사이에서 길복순은 여럿을 죽이게 되는데요, 이전과는 다른 살인을 합니다. 그간 지시 받은 살인 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살인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내면의 동기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지요. 복순은 자신이 지켰던 오경석의 아들을 죽도록 재지시한 MK의 이사 차민희(이솜)를 찾아가 펜을 꽂아 죽였고, 차민규 대표가 MK의 유망주이자 복순을 따랐던 영지(이연)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가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복순이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리고 앳된 얼굴을 보면 “엄마는 내가 저런 일 당하면,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거야?” 했던 재영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요? 어쩌면 죽기 전 영지가 복순에게 했던 말 “잘못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더 잘 알아요, 남들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용기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이게 맞는다, 다른 누군가는 저게 맞는다고 하지만 내 안에 양심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그 명쾌한 답을 복순에게 알려주는 것은 다음 세대였습니다. 자식이 부모 세대를 위해 이용당하고 희생당하지 않기를, 미래 세대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부터 바꿔보는 그 걸음을 킬러 길복순은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노력을 엿본 재영은 킬러 엄마 길복순에게 방문을 열어두라고 하게 됩니다.
길복순은 이미 적응된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익숙했지만 재영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했기에 딸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 기준을 자신의 세계에 적용해보았지요. 딸이 그리는 미래를 보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정한 그녀는 타인의 규칙을 깨고 자신의 규칙을 새롭게 시도하지요. 물론 강력한 반발에 그녀는 새롭게 지켜야 할 가치를 발견합니다. 다음 세대, 그 미래말입니다. 길복순 정도의 행동력이라면 현실 속 세대 간의 닫힌 문도 열리지 않을까요?
[ 모기수다 시즌2 ]
🎬 깊이 있는 모기수다, <매스>(2021)
프란 크랜즈 감독의 영화 <매스>를 함께 보고 나누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톨릭의 예배의식인 '미사'(MASS)를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학교 총격 사고로 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와 가해자의 부모가 만나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요.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과 상처입은 부모들의 내면을 표현한 압도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는 영화였습니다. 용서와 치유, 예배(미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히 성찰하게 되면서 절로 흘러나오는 다양한 이야기가 모기수다의 시간을 풍성하게 채웠답니다.
* 공간과 음료, 간식 등을 위한 최소한의 회비를 책정하게 되었습니다. (회당 5천원, 2~10월 일시 납부시 3만원, 모기영 정기후원자 무료)
5회 모기영, 출발합니다!
지난 주 부터 제5회 영화제의 후원모금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어느덧 다섯살이 된 모기영,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후원모금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출발합니다!
수고한 분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마지막까지 펀딩 결과에 전정긍긍하지 않고 영화제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년보다 좀 더 일찍 준비를 시작합니다.
모기영이 ‘모두’에게 닿기를 소망하며, 5회 영화제는 더욱 접근성 높은 장소에서 확장된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2023.11.16~19 / 메가박스 홍대 & 상상마당시네마 / 주제 "거리-감")
좋은 영화의 힘을 믿는 모기영이 울타리를 넘어 뻗어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5회 영화제의 첫 바퀴를 굴리며,
떨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입니다.
세상에 이런 영화제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힘을 실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응원하고 지켜봐주세요!
글 : 박일아, 강원중
편집디자인 : 강원중
2023.4.15.토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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