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주간모기영 89호

[은프로의 이책저책] 『자기앞의 생』(1975), [모기수다 시즌2] 6월의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

2023.06.03 | 조회 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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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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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프로의 이책저책]

홀로 완전하지 못해서, 함께입니다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1975)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뚱이를 오로지 두 다리로 지탱하여 매일 칠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다. 그녀는 유태인이라서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처지가 못 되지만, 그래도 칠층을 오르내리는 일만은 정말 힘에 부친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그녀는 다른 일들로 심신이 괴로운 데다가 건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또 하나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녀가 엘리베이터 하나쯤은 갖추어진 아파트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는 점이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17, 9쪽.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유대인인 마담 로사와 아랍인 소년 모모가 서로 기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로사 아줌마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입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생계를 위해 했던 일은 몸을 파는 일이었어요. 나이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아줌마는 성매매 여성들의 아이들을 맡아 키웁니다. 개중에는 아이를 맡겨두고 돈을 보내지 않거나 소식이 끊긴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고스란히 로사 아줌마의 책임이 됐죠.
모모라 불리는 모하메드는 세 살 때부터 로사 아줌마와 살고 있는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열 살이 아니라 열 네 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요. 아줌마는 모모가 자라서 자신을 떠나게 될 것이 두려워 모두에게 모모의 나이를 속였어요. 가짜 서류를 제시하는 바람에 모모는 학교에도 갈 수 없었죠.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17.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17.

유대인 노인과 아랍인 소년도 이례적인 조합이지만, 세네갈 출신 전직 권투선수로 트랜스젠더 성매매 여성인 롤라 아줌마, 빅토르 위고가 되고 싶었지만 실상은 양탄자 행상이며 정신이 흐려져 가는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 다이아몬드를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는 부자 포주이면서 문맹인 나이지리아 태생 은다 아메데 씨, 창녀의 아들인 경찰서장, 늙은 유대인 의사 카츠 선생 등, 모모의 이웃들은 온통 어딘지 결핍을 안고 있는 부류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우직하게 홀로 살아내는 동시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타인에게는 주저 없이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물론 그들 중에서도 우리의 모모는 엉뚱하면서도 단연 총명하고 사려 깊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덜 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99쪽)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8쪽)

모모가 푸들을 한 마리 훔쳐와 애지중지하다가 어느 귀부인에게 비싼 값에 팔아버린 에피소드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쉬페르(최고)’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푸들이었는데, 그 아이를 팔아서 받은 오백 프랑을 모모는 하수구에 던져버렸어요. 누가 봐도 바보같은 일이었지만 모모는 그것으로 돈을 위해 쉬페르를 팔아치운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보였어요. 모모에게 중요한 것은 쉬페르가 이름 그대로 최고의 삶, 즉 ‘자기의 생’을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언제 빈민구제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자신보다는 귀부인과 함께 사는 것이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푸들의 생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했겠죠. 모모는 그것을 로사 아줌마에게서 배웠을 겁니다. 아줌마는 흑인 꼬마를 맡게 되면 흑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일부러 꼬마아이를 데려가는 일을 모모에게 맡겼어요. 그 아이가 흑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들과 어울리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같은 이유로 아줌마는 모모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대로 유대식으로 기르는 대신 자주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에게 보내 이슬람 문화와 세상의 지식을 배우게 했고요.

한편 어떤 삶은 그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었다면, 어떤 삶은 끝까지 곁에 두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모모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트라우마로 몸과 정신이 모두 죽어가는 로사 아줌마가 바로 그런 경우였겠지요. 아줌마가 만들어놓은 비밀 요새에 함께 숨어 부패해가는 육중한 육체에 열심히 분칠을 하고 향수를 뿌려가며, 모모는 그렇게 스무 날 이상을 견뎠습니다. 아줌마는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할 자격이 있었거든요.

각각의 인생에 어떤 모양의 삶이 가장 적당한지, 언제 떠나보내고 언제 붙들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모모의 경우, 쉬페르는 누구나 원할 만한 푸들이었고, 로사 아줌마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차별점이 분명했다는 생각은 드는군요. 그렇다면 모모의 행복은 어떻게 되나요?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모모 같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은 정작 ‘모모 자신의 생’에는 좀 미안한 일이거나 억울한 것 아닐까요?
다행히도 작가 에밀 아자르는 이제 다시 완벽하게 홀로 된 모모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 나딘 아줌마와 의사 라몽 같은 이웃을 새로 선물합니다. 나딘 아줌마는 일찍이 자기네 별장 주소를 적은 메모지를 모모의 손에 슬쩍 쥐어주었죠. 아줌마와 가족들을 다시 만난 모모의 목소리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어요.

“사랑해야 한다.”

(311쪽)

소설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의외로, 따뜻하지요.^^

그러고 보니 모모는 (마약이 제공하는) 행복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했어요. 각자의 결핍을 안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질주하는 대신 용감하게 타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 결핍투성이인 세상에서 그렇게 만들어낸 행복의 연쇄가 결국은 공동체 전체의 구원이 되는 거겠지요.
흠. 그렇다면 우리는 본디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타적인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앞의 생>(에두아르도 폰티, 2020),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자기 앞의 생>(에두아르도 폰티, 2020),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에밀 아자르의 소설은 최근 소피아 로렌이 로사 아줌마를 연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자기 앞의 생>(2020)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감독 에두아르도 폰티는 소피아 로렌의 아들입니다. 85세 고령인 소피아 로렌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게 한 것이, 아들이라서 가능했나 싶기도 하죠. 알제리 출신 아랍인 모모를 흑인 소년으로 설정하고 영화적인 서사를 위해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지만, 인물들 중 누구도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고 이해하는 척 하지도 않으면서 서로의 틈새를 메워간다는 점이 여전히 위로가 됩니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로맹 가리의 다른 이름입니다. 같은 작가에게 다시 주지 않는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였죠. 그에게 두 번째 콩쿠르상을 받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이었어요. 1975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1980년에 작가는 자살하면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에세이를 남겼어요. 여기서 에밀 아자르는 자신이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혹 흥미가 동하시면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을 원작으로 한 영화 <새벽의 약속>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피에르 니니가 로맹 가리를,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아들밖에 모르는 극성스러운 모친을 연기했어요.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폴란드와 니스에서는 난민으로 살았고, 미혼모의 외아들로 자랐으나 예언에 가까운 모친의 바람 그대로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고 작가가 되어 콩쿠르상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특별한 경험과 이력 덕분에 에밀 아자르이기도 한 로맹 가리는 정체성과 편견에 관심이 많았던가 싶습니다.

<새벽의 약속>(에릭 바르비에, 2017)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새벽의 약속>(에릭 바르비에, 2017)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5회 모기영을 위한 모금활동과 정기후원 현황]

진행중인 모금 현황과 함께 모기영의 정기후원 현황을 공유하며, 소중한 후원과 응원에 오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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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5월 1-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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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수다 시즌2 ]

🎬 6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6월의 모기수다 영화는 일디코 엔예디 감독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입니다.

📍 시간 : 2023년 6월 10일(토) 오후 3시 (3~5시-영화감상, 5~6시-감상 나눔)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문토' 어플리케이션-> '모기수다' / 사무국 010-2567-4764

모기수다 모임 참여는 '문토'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앱스토어 / 구글스토어에서 '문토(MUNTO)' 어플 설치
▶︎ '모기수다' 검색
▶︎ '6월의 모기수다' 클릭 후 '참여하기'
▶︎ 참가비 결재 (1만원)

*문토 이용 수수료와 다과준비 및 공간사용료를 위해 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 이미지 클릭 - 6월의 모기수다 문토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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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간모기영 독자님들을 얼굴로 만날 수 있는 11월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모기영이 많은 분들에게 기다려지는 계절이 되는 날까지 잘 살아남아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6월 3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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