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수라>(2022) - 아름다움을 본 죄
'수라 100개의 극장' 추진단이 함께한 시사회의 GV에서 임순례 감독이 전한 말입니다. 생태운동 영역에 있는 이들에게는 일찍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 <수라>는 환경이라는 주제가 갖는 소수성의 한계를 넘어 일반 관객의 마음에까지 흘러갈 힘을 가진 영화라 여겨집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으로 시작해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국내경쟁 대상 등 굵직한 수상에 이어 지난 6월 21일 관객의 손에 의해 전국의 상영관에서 개봉하기까지, 영화 <수라>는 환경문제를 다룬 독립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황윤 감독은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자신이 먼저 수라를 찾은 것이 아니라 수라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강행하라’는 2006년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직후, 곧 사라질 갯벌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처음으로 새만금을 찾았지요. 그런데 자신을 늘 환대하며 아껴주었던 지역 어민 류기화씨가 물막이 공사의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하자 그 충격에 카메라를 놓게 됩니다. 갯벌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담은 필름들은 그렇게 감독의 서랍 깊숙한 곳에서 수 년동안 빛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요.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개인적인 이유로 군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황윤 감독은 지인으로부터 군산에서 물새를 조사한다는 오동필 시민생태조사단장을 소개받게 됩니다. 그녀는 새만금이 이미 시멘트로 완전히 덮이고 이제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왔는데, 아직도 갯벌에서 물새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며 오동필 단장을 따라 나서게 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여전히 바닷물이 낙낙히 드나드는 어느 작은 갯벌에 전세계 단 5천 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1급의 저어새가 약 150마리 가까이 떼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 앞에서 그녀는 너무도 다행스럽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 소중한 생명들을 결코 사라지게 해서는 안되리라는 절박함을 가득 껴안게 됩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현장의 생명들을 꾸준히 기록해 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 앞에서 그녀는 한 번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서 이미 모두 끝난 싸움이라고만 여겼던 스스로가 너무도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하지요. 소중한 생명들이 여전히 이렇게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황윤 감독은 그날로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곧장 새만금의 생명들과 시민생태조사단을 기록하는 장장 7년의 여정이 이어지게 되었죠. 이야기의 힘은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다시 작가의 삶에 찾아와 그 진실을 스스로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본 죄
저어새들이 노닐던 마지막 한 줌의 갯벌에 ‘비단에 놓은 수’(수라)라는 이름을 되찾아 준 것은 갯벌의 생명들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오동필 시민생태조사단장의 절박함이었습니다. 방조제 건설로 지금은 물이 막혀 옛모습을 잃어가지만, 그 자리를 계속 갯벌이라고 부르노라면 언젠가 다시 원래의 갯벌로 돌아오고 말 것이라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시민들이 사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정부와의 지난한 씨름을 이어가는 이유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봐 버린 죄가 아닐까'하고 그는 고백합니다. 방조제 건설이 본격화 되기 전, 10만 마리의 도요새가 군무를 펼치는 광경은 황홀함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그의 일생에 있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장엄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만나버린 죄로 인해 그는 편하고 안정된 길 대신 물새들의 곁을 지키는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고 말하지요. 방조제 건설 이후 많은 생명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물이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풀이 무성해진 갯벌마저도 웅장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황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갯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관객들에게 경험시켜주는 것이 작품의 가장 큰 목표였다고 밝혔습니다. 그 덕분에 <수라>를 본 관객들은 수라갯벌의 아름다움을 눈과 귀로 함께 만난 목격자들로서 어떤 부채감을 지닌 채로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살아있음을 만나버린, 생명의 황홀함을 함께 겪어버린 우리로서는 그 소중한 존재들을 반드시 지켜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깃들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보게 만드는 것들은 결국 우리 마음 깊숙이에 씨앗처럼 심어진 생명들에 대한 사랑을 그득 피어오르게 하기 때문이지요.
관객으로 인해 완성되는 다큐멘터리의 진정성
모든 매체는 늘 스스로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진정성은 결국 관객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음을 다큐멘터리 작가 김옥영의 문장이 드러냅니다. 영화 <수라>는 이 점에 있어서 상당한 인정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시사회 등을 통해 영화를 먼저 만난 관객들이 자발적인 모금과 자원봉사를 통해 전국 150여개의 상영관에서 직접 이 영화를 개봉시키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스튜디오 두마 김성환 PD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수라 100개의 극장, 100명의 관객' 프로젝트는 자본의 힘이 아닌 순전히 영화의 진정성에 동화한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관객을 단순히 소비자로서만 바라보는 오늘날의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영화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수라'들 앞에서
<수라>의 이야기가 결코 수라갯벌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세계 도처에서 펼쳐지는 생태 착취의 스토리는 등장인물들을 바꾸어가며 동일한 양상으로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전히 살아있는 갯벌에 공항을 짓겠다는 이들의 멈출 줄 모르는 무지막지함은 산양이 노니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팔색조의 보금자리인 노자산에 골프장을 기어이 지어낼 기세입니다. 이들은 이제 거의 남지도 않은 생태계의 숨들을 모두 끊어낼 작정일까요?
물이 끊긴 갯벌에서 10년을 죽지 않고 버틴 흰발 농게처럼, 갯벌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우직한 웃음처럼, 영화 <수라>가 보여주는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도 어쩌면 단지 수라의 것만이 아니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곧 개봉 3주차에 접어드는 <수라>는 여전히 전국의 상영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그 아름다움을 꼭 극장에서 만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5회 영화제 후원모금]
강*중, 강*영, 강*철, 김*현, 김*관, 김*정, 김*호, 김*교, 더불어숲평화교회, 로고스서원, 류*, 박*혜, 박*영, 박*애, 박*선, 배*우, 박*홍, 북인더갭, 신*주, 신*식&변*정, 아카데미숨과쉼, 윤*훈, 윤*원, 이*기, 이*욱, 전*영, 정*하, 지*실, 최 *, 허*호 님 (총 33명)
[ 모기수다 시즌2 ]
🎬 7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7월의 모기수다 영화는 카를라 시몬 감독의 <알카라스의 여름>(2022)입니다.
📍 시간 : 2023년 7월 8일(토) 오후 3시 (3~5시-영화감상, 5~6시-감상 나눔)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문토' 어플리케이션-> '모기수다' / 사무국 010-2567-4764
모기수다 모임 참여는 '문토'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앱스토어 / 구글스토어에서 '문토(MUNTO)' 어플 설치
▶︎ '모기수다' 검색
▶︎ '7월의 모기수다' 클릭 후 '참여하기'
▶︎ 참가비 결재 (1만원)
*문토 이용 수수료와 다과준비 및 공간사용료를 위해 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의 힘을 믿으며
혐오 대신 도모를, 배제 대신 축제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갈 분들을
계속해서 기다리겠습니다.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7월 8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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