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지지 않는 계단 #7

작은 실수

2021.07.21 | 조회 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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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제목 : 엘리베이터로 진입하다.

  “내 소식 많이 기다렸나? 엘리베이터를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영 기회가 닿질 않아서 연락을 못했네. 안달 난 네 모습을 생각하니 내 얼굴을 거울에 비쳐 보면서도 그 속에 숨은 또 다른 얼굴을 대하는 기분이 들어서 영 찜찜하더군그래. 아무튼 나도 진작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 너만큼이나 나도 엘리베이터가 가진 비밀이 궁금했다고. 영혼이 아닌 인간의 형체로서 미스터리를 대하는 느낌이 사뭇 궁금했거든. 내가 자네 몸을 언제까지 점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말이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빨리 그곳의 정체를 파헤쳐 보고 싶었어. 그런데 드디어 며칠 전에 기회가 생겼지. 그날따라 가족의 날이라나 뭐라나 전 직원이 6시 넘어서, 그러니까 자네가 잠에 빠져든 직후에 모두 회사에서 빠져나가더라고. 참 그 광경이 장관이었어. 무슨 막혀있던 폭포수가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니까. 그날이 기회다 싶었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사건을 해결하는 마치 탐정이 된 듯한 공상에 빠져들었다니까. 일단 탐정이 되겠다고 작정하니까 어떤 우연적 사건들이 겹치고 겹쳐서 또 다른 사건의 봉인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어떤 것들은 제풀에 풀려나갈 듯한 느낌이었어. 드디어 인간의 몸을 뒤집어쓰고 제대로 된 일을 벌일 수 있겠다 싶었던 거지.”

  “12시를 기다린다는 것, 참 지루하더라. 네 책상에 앉아 있는데 할 일이 없더라고. 너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너 혼자 사무실에 고립된 거야? 대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었던 거야. 아예 네 주변으로 성을 만들어줬더라. 바깥쪽에서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절대 알 수 없도록 말이야. 아니 왜 방음 장치까지 해놓은 거지? 그렇게까지 넌 직원들과 동떨어지고 싶었던 거야? 뭐가 널 그렇게 만든 거야?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야기를 좀 들려줘. 솔직히 별로 듣고 싶진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야기를 해주면 듣는 척이라도 할 테니까. 말이야. 하하 농담이야. 진지하게 듣지 말게나 친구. 자네가 듣고만 있으니까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자네도 읽지만 말고 답장 좀 하고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서로 돕고 살자고.”

  “서론이 길어졌네 친구. 지금부터 내가 그날 밤에 겪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도록 할게. 자네가 옆에 앉아있다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가능하다면 말이야. 그래야 자네도 실감이 나지 않겠어? 뭐 영화 감상하는 느낌으로 그러니까 티브이에서 2미터쯤 떨어진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라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내 이야기는 마음 편하게 들을만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뭐 그렇다고 친구,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또 자네 몸이 상처를 입었거나 어딘가 심각하게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니 그냥 귀를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줬으면 해.”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오래된 자명종 시계가 12시를 알렸지. 그리고 나는 후각을 곤두세워야 했어. 어딘가 여자 향수 냄새가 진짜 올라올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거든. 아니 대체 12시, 엘리베이터, 여자 향수, 이런 단서가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진단 말이야. 이건 3류 추리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잖아. 난 우습지만 정체 모를 이야기에 몸이라도 벌벌 떨어야 할 것 같았는데,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이 된 건지,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더라. 그 흔한 식은땀조차 흘릴 생각을 안 하더라고. 내가 영혼이어서 그랬을까. 마음이 식으면 덩달아 몸도 차갑게 냉각되어버리는 걸까, 싶었어.”

  “난 12시 정각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신속하고도 차분하게 일어났어. 그리고 사무실 바닥을 나 혼자 독점하며 걸어갔지. 내 발걸음과 바닥이 만나니 이상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거야. 그 소리는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도 날아오는 것처럼 무음이었지만 가금 명료해지기도 했어.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소리였지. 난 엘리베이터 앞에 우뚝 섰어. 그리고 기다렸지. 엘리베이터는 예의 1층에서 출발해서 60층까지 단 30초 만에 도달했어. 녀석 여간 성마른 게 아니었어. 뭐가 그리 급해서 누군가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쳐들어오는 거냐고. 몇 달이라도 굶주린 녀석처럼 말이야. 나는 눈을 최대한 부릅 뜨고 녀석이 60층에 도달하는 걸 지켜봤지. 엘리베이터 바로 위 60이라는 숫자가 찍힌 부분이 빨간색으로 빛이 났지. 그리고 몇 초간 서로를 감시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도 엘리베이터도 숨을 쉬지 않았지. 먼저 소리를 내는 쪽이 싸움에서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녀석과 나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던 거야.”

  “공포스럽나? 그게 상황이 참 복잡스러웠어. 침이 꼴깍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긴 했는데, 늦게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정신이 다소 무감각해졌다고 할까? 감각이 꽤 무뎌진 상태였거든. 나는 약간 몽환적인 시선으로 문이 열리길 기대했던 것 같아. 꽤 오랜 시간이 흐르다, 또 정지되었고 감각이 사라졌다가 되살아 나곤 하더군. 몇 번 그런 의식을 반복했는지 몰라.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이러다가 내가 다시 네 몸에서 영영 분리될 것 같은 공포에 빠져들기도 했어. 난 그래서 온몸의 혈류들을 뇌 속으로 집중시켰어. 머리에 힘을 잔뜩 쥐고 서 있던 거였지. 그렇게 무한하게 힘을 내쉬고 또 허무한 바람이 입속에서 새어나갔어. 그런데 별안간 통지도 없이 허무하게 문이 열려버린 거야. 그러니까 녀석이 하품이라도 하듯이 한숨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터져 나온 거야. 스르륵 소복이 끌리듯 문이 열리면서 말이야.”

  “드디어 문이 열렸어. 하지만 그 안쪽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검은색 보다 더 검게 그을렸다고 할까. 엘리베이터 안에는 본래의 색채가 존재했겠지만 그게 잠식되어버리고 만 거야. 검은 것이 검은 것을 잡아먹고 또 삼킨 것을 또 다른 검은 것이 삼켜버리는 먹고 삼키는 게 중첩되었달까. 빛이란 것은 몽땅 어디론가 팔려나간 거지. 물론 난 그게 어디로 팔려간 건지 알 수 없었어. 열렬하게 어떤 괴이한 형체를 기대했으나 단지 검은 공기만 가득하다니. 여자는커녕, 향수 냄새조차 나지 않다니 난 좀 허무해지고 말았어. 짜증이 났지. 대체 뭐야,라고 나도 모르게 불만의 언어를 구사하고 말았지. 누가 좀 듣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네가 옆에 있었다면 어쩌면 덜 외롭거나 덜 화가 났을 텐데,라고 생각했지”

  “난 그래도 살짝 한 걸음 조심스럽게 앞으로 옮겼지.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어. 혹시 진공 장치라도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야.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너와 나 우리 둘에게는 희망이 영영 사라지잖아. 내가 구원받을 기회도 영원히 박탈당할 거 아냐. 그건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롭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동했지만 그 어둠에 적응할 거라고 어떤 근거 없는 희망을 꿈꿨던 것 같아.”

  “그 찬란하고도 암울한 어둠을 바라보면서 공허라는 단어를 떠올렸어. 공허를 맛보고 싶다면 깊은 어둠 속으로 한 번 뛰어들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만약 사라진다면 잠시 나마 무의 의미를 새기게 될까, 생각했던 것 같아.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지. 나는 네 몸으로 갈아탄 이후로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됐어. 영혼으로 존재할 때는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거든. 그런데 내가 몸이라는 것을 입게 되자, 생각의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게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어. 어쨌거나 엘리베이터든 나든 두 존재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난 물론 시간이 충분했어. 어쩌면 녀석이 더 조급했을지도 몰라. 난 네가 잘 아는 것처럼 기다리는 데 재주가 있잖아”

  “시간이 지나니 그 텅 빈 공간과 그 속에 숨은 공허가 정체를 드러낼 것 같았어. 어차피 난 질 수 없는 싸움이잖아. 나에게는 언제든 기회가 다시 생길 테니까. 12시는 언제든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설득력을 갖게 될 테니까. 나는 두려움에 구속될 필요도, 조급할 필요도 없었지. 난 전혀 동요하지 않았어."

  "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대목이 하나 있어. 침착하지 못한 쪽이 실수를 범하게 되어 있어. 먼저 행동하는 쪽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느긋하게 기다려야 돼. 암사자가 먹이를 노리다 결정적인 순간, 단 한 방에 먹잇감의 목을 낚아채는 것처럼,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고. 먼저 나서는 쪽이 처참한 결말을 맺게 되어 있다고. 그건 교과서에도 나와 있어.”

  “그런데 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아. 그렇게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는데, 내가 인간의 탈을 뒤집어썼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만 거야. 빌어먹을 인간의 몸은 이렇게 나약하다니까. 거의 타락하고 만 저주받은 형체가 아니냐고. 나처럼 형이상학적인 존재는 이런 피곤한 상황을 겪을 필요가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몸이 앞쪽으로 나서버리고 말았어. 내 잘못이야. 내가 더 단단히 붙잡았어야 했는데. 네 몸뚱아리가 경솔하게 봉인을 열고 말았어.”

  “그래, 난 엘리베이터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어. 엄밀히 말한다면 그 속에 점프를 해버리고 만 거지. 난 거기가 마치 구덩이처럼 보였다니까. 제대로 공포를 만끽하고 싶다면 걸어가는 것보다 그냥 그 속살로 뛰어드는 게 낫겠다 싶었나 봐 네 몸이 말이야. 어쩌면 그 속은 심연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헤엄을 쳐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까지 했던 것 같아. 만약 그렇다면 호흡이 유지되어야 할 텐데, 저 속에 빠져서 숨이 멎기라도 할까 봐, 내가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니까.”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자마자 뭔가 번쩍하고 장면이 바뀌는 것 같았지.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어. 눈을 감고 있던 이유는 그 어둠이 사라질까 걱정했던 걸지도 몰라. 난 빛을 마중 나갈 준비가 덜 되어 있었거든. 하지만 엄청난 이물감에도 난 눈을 떴어. 이왕 뜬다면 번쩍하고 뜨자고 결심했던 거지. 눈을 뜨니 엘리베이터의 존재가 갑작스럽게 펼쳐졌어. 그 세계를 묘사한다면, 이 부분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해 내 글쓰기 실력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과연 실감 나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 엘리베이터 안쪽의 조금, 아니 아주 심각할 정도로 기묘했어. 내가 기묘하다고 말하는 건 인간이 생각하는 기준보다 더 심각하다는 얘기야. 일단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통 거울로 도배되어 있었어. 천정에도 바닥에도 앞, 뒤, 옆까지 모두 거울로 둘러싸여 있던 거야. 그러니까 투명한 내가 나를 에워싸고 있었던 셈이지. 대체 무슨 속셈일까. 지겹도록 밤마다 거울을 지켜보는데 또 거울이라니 사람을 지겹게 만드는 구석이 있네.라고 생각했지. 물론 내가 초록 색의 들판 같은 것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어. 그냥 엘리베이터라면 회색의 철판과 한 개 정도의 거울이면 충분하잖아. 그런데 사방이 거울이라니. 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걸까 싶었지.”

  “더 웃긴 건 뭐였는지 알아? 사방이 거울로 도배된 것도 웃긴데 내가 공중에 30센티미터 정도 붕 떠있더라고 내 몸을 어떤 막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할까?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가두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떠 있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더라고. 본래의 영혼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잠시 공기 방울처럼 떠 있다가 막 경계 부근에서 자장이 생기는 것 같았어. 내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거지. 어지러웠어. 아 어지러운 게 이런 거구나, 평생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지. 재미있었지만 희한하기도 했어. 인간은 이런 걸 놀이로 삼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피곤함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우습게도 그런 감각은 찾아오지 않았어. 녀석은 나를 잠시 골탕 먹이려고 작정했을지도 몰라. 얼마나 돌았는지 모르겠어. 원심력인지 구심력인지 아주 나를 팽이처럼 돌려버렸다니까. 나는 회전하면서도 엘리베이터를 계속 관찰했어. 사방이 거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한 귀퉁이에 망치 같은 게 하나 보였다는 사실, 그게 내가 얻은 정보의 전부였지.”

  “실컷 돌다가 팽이가 제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나도 정지됐어. 손을 뻗어 보니 투명막 바깥쪽으로 손을 뻗을 수 있겠더라. 그리고 용을 써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아주 조금씩 이동할 수 있겠더라고. 나는 그래서 거울을 만져보려 했어. 물론 약간 두렵긴 했지, 만진다는 게 아직까진 낯선 작업이라서 말이야. 그것도 거울을 만지는 걸 상상해봐. 현실에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잖아. 어쨌거나 거울을 가만히 두드려봤지 거울 속에 누군가 기다리기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나를 그때 봤어. 그리고 중첩된 거울 속의 또 다른 나, 무한대로 길게 늘어선 마치 무한대의 객차를 가진 열차를 그 속에서 본 거야. 그런 경험 한 적 있지? 한 번 상상해봐.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광경. 한 쪽 거울이 반대편 거울로 빛을 보내면 그 빛이 다시 자신의 빛을 그대로 환원하는 것, 그래서 서로가 가진 빛을 무한대로 주고받는 거야. 사이좋게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거울 하나가 맞은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맞은편은 전송한 화면과 자신의 모습을 응답하듯 반사하는 거지. 서로 끝없이 정보를 교환하는 거야. 근데 그게 단 두 개가 아니라 3차원 아니 시간을 담은 4차원 형태로 육면체로 나타나는 거야. 와 세상에서 그런 장면을 구경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일 거야. 내가 끝도 없이 존재할 수 있다니 내가 하나가 아니라 같은 시간의 선상에서 이렇게 계속 이어질 수 있다니. 난 너무나 경이로웠어. 그리고 감격했어. 저 너머로 넘어갈 수 있다면 지금 이곳이 아니라 저 공허한 너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상했지.”

  “그래, 난 저 너머로 넘어가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런 생각을 하니까 벽에 붙어 있던 빨간색 망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더라고. 한 편으론 조심스럽기도 했어. 저 망치로 거울을 부숴버린다면 나는 하나의 가능성을 영영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거든. 그래서 살살 달래 보기로 했어. 거울을 느껴 보자. 그 표면을 세포의 세계에서 느끼도록 해보자,라고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게 된 거지.”

  “거울을 그러니까 고양이 등 쓰다듬듯 천천히 훑어봤어. 미끄러지듯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본 거야. 그런데 손바닥의 느낌이 말이야. 마치 수면 위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던 거야. 잔잔한 호수 표면 위에서 유영하듯 출렁이는 것 같았지. 난 조금 더 과감하게 행동하기로 했어. 만약 이곳이 수면이라면 그 속으로 잠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손끝에 힘을 조금 더 줘봤어. 그랬더니 어느새 내 검지가 사라져버린 거야. 빨려 들어간 건 아닌데, 손가락 반이 안 보이는 거야.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거지. 난 놀라서 다시 손을 빼 버렸어. 설마 잘린 건 아니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한 번 용기를 내니까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었어. 나는 모퉁이 끝에서 가운데 쪽으로 검지 끝에서 출발하여 아예 손바닥 전체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어. 그랬더니 슥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라 다시 바깥쪽으로 빼보고 나서 이번에는 세게 두드려봤지. 그랬더니 영락없이 거울이었어. 너도 나도 잘 아는 그 거울 말이야. 뭐야 이거 그냥 일반적인 거울이잖아. 조급하던 마음이 그 순간 꽤 느긋해졌어. 얼마든지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 싶더라고 아예 통째로 이번에는 우측 몸부터 밀어 넣어야겠다 싶었지. 거칠 게 없었어. 이미 녀석의 비밀을 알아버렸는데,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잖아.

  “역시 예측대로 슥 통과되더라고 안쪽으로 밀려나더라고. 실험을 한 번 해보니까 확신이 생겼어. 다음 동작은 너도 상상이 되지? 그래 이번에는 몸을 통째로 밀어 넣자. 그쪽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결심한 거야. 난 슬며시 아주 느린 동작으로 조심스럽게 그 안쪽으로 들어갔어. 빨려 들어갈 것 같았지만 아무런 기운도 없었어. 그냥 그쪽은 날 받아들이더라. 그렇게 맞은편으로 이동했어. 그랬더니 참 허무하게도 그쪽과 이쪽은 다를 게 하나도 없었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말이야. 그냥 똑같아. 거울에서 비쳐 본 모습대로 영락없이 그 모양이었어. 그렇게 몇 칸을 이동하다가 내가 몇 번을 이동했는지 기억해야겠더라고. 내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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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flower 🌻

    0
    almost 3 years 전

    거울의.메타포가 참 의미 심장합니다~ 인터스텔라의 영화 장면도 상상하게 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떠오릅니다. 작은 실수로 어떤 모험을 할지 궁금해 지네요. 용감하네요~ 다음 편 기대할께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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