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발견

초단편 소설

2023.05.05 | 조회 448 |
0
|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먹을 게 다 떨어졌어” 녀석이 말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라고. 분명 어느 구석에 먹을 게 남아있을 거야.” 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렇다, 우리에겐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다. 소파 밑을 쓸어봤자 감자칩 쪼가리도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곧 우리의 위장은 배고픔에게 봉쇄될 예정인 것이다. 뭔가 대책이든 묘안이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근처 노숙자 센터에 가서 밥이라도 동냥하는 건 어떨까?” 내가 말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인데, 그런 지저분한데 가서 비굴하게 공짜 밥이나 처먹으려고 줄을 설 수는 없는 거라고.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나는 냄새도 견디기 어렵고” 녀석이 말했다. 아직 배가 부른 것이다.

그래, 녀석에게는 배고픔보다 쪽팔림이 더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뱃가죽이 스스로 고동을 울리는 기분이다. 이러다가 우리는 며칠 못 가서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시베리아 유형지도 아닌 편안한 내 집에서 아사를 당하다니… 내 인생은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까.

그때 녀석이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뛰쳐나간 덕분에 나는 낡은 소파 반대쪽에 누워있다가, 한쪽에서 바람이 빠진 바람에 푸슉 하고 바닥으로 꺼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이나 하고 좀 일어서든지, 바닥으로 꺼지고 말았잖아!” 가뜩이나 배고파 죽겠는데, 처량한 신세가 된 것처럼 내가 말했다.

“야야, 내 말 좀 들어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니까” 녀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엔 먹을게 하나도 없지? 그렇다고 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는 상태도 아니고 우린 신용카드 따위도 없잖아. 마트에 외상을 달라고 구걸할 형편도 아니고. 배민 주문하면서 구구절절 불쌍하게 처지를 말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 게다가 하루키의 소설처럼 빵 가게를 습격할 용기도 없잖아. 그러니 영락없이 이러다가는 며칠 못 가서 우린 아사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고. 이러다 어쩌면 둘 중의 한 명이 먼저 죽을 테고, 어쩌면 우린 남극에서 조난당해서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는 좀비들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건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 대책이 거의 없는 상태라는 건 잘 안다고. 우린 이미 친구들이건 이웃들이건 모두에게 어마어마하게 빚을 진 상태고 이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들, 늑대소년의 매가리 없는 울림처럼 우리는 무시당하고 말 거야.”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답답해하며 내가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며칠 전에 유튜브를 하나 본 게 있는데, 거기서 보니까 어떤 남자가 쇳덩어리를 뜯어먹더라고. 자전거를 분해하더니 그걸 하나씩 하나씩 씹어 먹는 거야. 인간의 소화능력이란 참으로 위대해서 무엇이든 입속으로 넘기기만 하면 신이 내린 능력으로 배고픔은 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라고.” 녀석이 신나서 말했다.

“그래서 나더러 내가 가진 유일한 명품인 저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라도 뜯어먹자는 거야? 그래 쇠붙이라면 집안 구석구석에 아주 널려 있지, 저기 톱도 있고 망치도 보이는군. 특히 저 자전거라면 평생 굶어죽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어마어마한 발견이야! 차라리 내 보물을 당근에 내다 팔자고 하지? 그렇게 했다간 아주 가만 안 둘거야!” 내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비관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일단 실천해 보자고. 누가 알아 우리에게 천부적인 소화능력이 있을지도 말이야. 일단 시도해 보고 불가능하면 다른 대책을 마련하면 돼. 쇠를 먹지 못한다면 플라스틱이나 네 옷장에 철 지난 옷들도 잔뜩있잖아." 녀석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밤 시범 케이스로 작은 쇳조각을 하나 공구 통에서 가져왔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한입으로 삼킬만한 작은 너트 조각이었다. 그 정도라면 이빨로 씹어 먹을 수도, 치아가 약하다면 쪽쪽 빨아먹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눈 딱 감고 알약처럼 꿀꺽 삼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신나는 글쓰기에 당신을 무료로 초대합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주변에 소개하기 📣

주변 사람들에게 '공대생의 간헐적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아래 사이트를 지인에게 추천해주세요.

https://brunch.co.kr/@futurewave/1136

오늘 글은 어떠셨나요?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