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인간

초단편 소설

2023.05.15 | 조회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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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나는 현재 강동구 한 아파트의 작은 문화센터에서 시 쓰기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 같은 곳에서 불러주는 메이저 강사가 되면 좋겠지만, 나를 찾는 곳은 200세대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의 문화센터뿐이다. 그것도 나 스스로 그곳을 찾아가 담당자에게 읍 조리며 얻어낸 결과다. 그렇다고 나에게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단지 작은 백일장 시인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은 것이 전부라, 그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시 쓰기 수업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첫 시간이면 이런 주문을 느닷없이 던진다. 탐스럽게 익은 사과 하나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진 싸구려 플라스틱 쟁반 위에 올려놓은 다음, 우두커니 그것을 한 시간 동안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로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전부다. 첫 시간에 이런 짓을 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다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시인이 가져야 할 태도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에 있다고 믿으니까. 물론 이것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선배 시인이 써놓은 시작법에 그저 충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침이나 질질 흘리고 있다.

비극은 나도 그 행위가 과연 시인다운 결실을 거두게 만드는데 얼마나 일조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과는 깨끗하게 씻어서 한 입 크게 베어 물라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불멍'도 아닌 '사과멍'에 빠지라는 게 느지막이 시를 배우겠다고 뛰어든 사람들에게 시킬 일인지, 왠지 그리스 비극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시인이자 동시에 클래스를 운영하는 강사, 그러니까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사람이다. 근엄하고 사뭇 냉정하게 이런 주문을 설파하며, 그 행위에 담긴 진정한 뜻을 새겨듣는 것보다는, 그 행사 자체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사람들이 빠지도록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은 나와 같은 선생들이 즐겨 쓰는 강제적 마법 장치 같은 것이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과를 관찰하는 것이 정말로 시 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낱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작동시켜 놓고 내가 제일 처음에 한 일은 냉장고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는 일이었다. 얼음이 담긴 투명한 글라스에 제로 콜라를 담아 한 방에 마셔버리는 게 보통인데, 그날은 이유 없이 사과가 당겼다. 사과에는 가끔 어떤 강력한 힘이 작용할지도 모른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어떤 특별한 것.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슬픈 이미지가.

나는 창가 쪽, 햇살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쪽에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놓고는 그 위에 고흐의 그림이 그려진 쟁반은 비록 없지만, 대신 대나무로 만든 쟁반 위에 깨끗하게 씻어놓은 사과를 놓고 다시 테이블 정중앙에 쟁반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약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이케아에서 구입한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그 위에 앉아 사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1분이 지나가기도 전에 지루해졌다. 사과는 무엇이고 관찰은 무엇일까? 사과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사과라는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 관념의 세계로 이동하게 될까? 사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결국 그 끝은 누군가의 소화지점일까.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걸까? 겨우 1분이 지났는데 이렇게나 좀이 쑤시는데, 10분 30분, 아니 수업 시간에 요구한 1시간을 나는 버틸 재간이 있을까. 마치 나는 사형 집행자 입장에서 사형수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라고 협박하는 것 같다. 경험해 보지도 않은 일을 무책임하게 사람들에게 주문했다는 생각에 빠지려다, 나는 순간 잠이 들고 말았다.

아마도 분명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이 든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에서 잠이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라는 것은 이렇게 불편한 자세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는 꿈속으로 진입하면서도 이 행위가 몹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사과를 보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한 입을 크게 베어 물고 싶었다는 충동만 그득했다. 마치 사과를 잡아채지도 않았는데, 사과 한쪽 귀퉁이에서 치아 모양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틀니처럼 치아가 위아래로 딱딱 소리를 내며 마치 사과를 씹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사과 어느 한쪽이 안쪽으로 맹렬하게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혹은 지진이 일어나듯이 사과 한쪽 면이 제 스스로 흔들흔들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러 줄의 균열이 한쪽에 집중되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반이 내려앉는 것처럼 한쪽이 허물어졌다. 말하자면 작은 구멍이 생긴 것이다.

안쪽에서 회오리바람이라도 일어난 걸까? 태평양의 흔한 태풍 발생지도 아닌 곳에서 그런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어났다. 나는 꿈인지 환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상상만으로도 창조가 가능한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꿈일 것이다! 나는 꿈을 기묘하게 관찰하면서 그렇게 또 시간이 무한하게 지나간 것 같았다. 꿈속이라면 시간은 의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현실로 다시 회복하려는 찰나, 구멍 안에서 움직임,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어떤 체계적인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음악? 그러니까 일종의 박자를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우렁찬 합창 소리와 함께, 사실 그렇게 우렁차진 않았다. 원자 인간들이 구멍 속에서 바깥으로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도 '이것은 분명 꿈일 거야. 아니야 현실일지도 몰라.' 라며 현실과 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 원자 인간은 사과 구멍 속에서 튀어나왔지만 한 명은 아니었다. 뒤에서 다른 원자 인간이 앞선 원자 인간의 뒤꿈치를 붙잡고 일정한 속도로 연이어 튀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나둘, 하나둘!'

 

이들은 그렇게 박자를 맞춰서 사과 굴에서 연거푸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십수 명은 될 듯했다. 아니면 수백 명일지도… 3미터 앞에서 그 작은 녀석들의 분포도를 어떻게 숫자로 파악하랴. 그저 내 눈에는 그들이 개체가 아닌 커다란 덩어리로 보였을 뿐이니까. 어쩌면 내 상상력이 사과에 개입됐을지도 모른다. 개미를 원자 인간이라고 착각했을지 누가 아는가? 어차피 나 혼자 본 것이고 내 꿈 안의 일들이었는데…

그 원자 인간들은 사과 구멍에서 솟아나더니 제각각 흩어졌다. 마치 그들은 자유를 소유한 듯했다. 잉태는 강제적이었지만 성장은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그들은 사과의 곳곳 부위로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과에 철썩 끈끈이라도 갖다 붙인 것인지 사과를 가만히 노려보며 어떤 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뒷주머니에서 빨대를 뽑더니 푹 쑤셔놓고 흡입을 시작하는 것이다. 원자 인간의 몸은 워낙에 투명해서인지 사과의 수액들은 원자 인간의 몸이 마치 저장고라도 된 듯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나는 그 무렵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니다!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두 눈을 비비고 현실로 돌아온 것을 자축하며 사과를 확인해야 했다. 사과에는 원자 인간도 원자 인간가 부른 새마을 노래도, 그들의 규칙적인 왼발, 오른발, 하나둘, 하나둘의 음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사과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처에는 분화구랄까? 수분을 잃어서 변색된 거랄까, 아무튼 사과에는 상처들이 전쟁의 상흔이 이곳저곳에 남아있었다.

나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원자 인간가 사과 속에서 구멍을 뚫고 나올 확률은 1억의 다시 1억을 곱하고 그것에 또 1억을 1억 번 곱한 숫자로 1을 나눈 것보다 더 낮은 확률일 거라고. 따라서 그것은 내 상상력의 결과이거나 사과에 지나치게 관심을 쏫은 탓에 그 망상이 꿈으로 이어진 거라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 관찰력이 사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염력일지, 시간의 흐름이 낳은 결과일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만 내가 시인이라는 것, 시인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사과 뒤의 세계, 사과가 놓인 보이지 않은 어떤 투명한 장벽 뒤의 세계로 창조할 수 있는 게 시인의 재능이 아니 나며, 큰 발견을 해낸 사람처럼 들뜨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 날, 시 수업에 가게 되면 사람들에게 사과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보다 어떤 장면을 강박적으로 느껴보라고 주문하곤, 그 주문이 환상을 연출해 줄지도 모른다고 1시간 동안 떠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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