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가을이 온 것을 알아차리시나요? 저는 바람, 온몸을 선선하게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낄 때 가을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가을을 가장 좋아했어요. 그건 독서의 계절이라는 관용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인데요, 놀랍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는 여전히 가을을 좋아합니다. 더 이상 제가 순수하다고 자칭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은 흘러버렸지만 말이에요.
어릴 땐 독서하기 좋다는 옛날 사람들의 말을 쫓아 가을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가장 살기 좋은 날씨인 가을을 좋아합니다. 저는 더위도 추위도 잘 못 견디는 사람이거든요. 더우면 땀을 많이 흘리고 쉽게 진이 빠져서 뭔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잘 안 생기더라고요. 추우면 턱이 덜덜 떨리고 옷을 잔뜩 껴입고 있어도 속부터 시려오는 그 냉기를 견디기가 참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봄은? 봄도 참 화사하고 아름다운 날을 가졌죠. 제가 좋아하는 예쁜 꽃들도 다양하게 피어나고,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기 좋은 때입니다. 그런데 묘하게 정이 안 붙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쭉 나열해 두고 나니, 제가 왜 가을을 좋아하는지 조금 더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가을이 지닌 ‘여유로움’을 좋아합니다. 새로움이 가득했던 봄의 반짝임을 지나, 뜨겁게 애쓰고 노력하는 여름이 지나면 결과의 계절, 가을이 옵니다. 그 후엔 많은 것들을 떨구고 긴 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겨울이 오지요.
겨울이 되기 전에 가을에는 내가 가진 결과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가지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해요.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있다고 착각하면 겨울을 보내다가 난감한 상황을 마주치게 될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언가 부족함을 느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봄과 여름을 보내고 맞이하게 된 가을의 결과를 겸허하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 결과를 알게 되는 시간. 그래서 지금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또한 알게 되는 가을. 봄과 여름을 후회 없이 보낸 사람이라면, 가을의 결과를 인정하고 겨울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가을날을 보낸 이의 여유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여유로움을 갖고 겨울을 보내더라도 겨울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다시 봄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을의 여유로움이 필요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합니다. 늘 애쓰고 견뎌야만 했던 뜨거움에서 한 김 식혀주고,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만 정확하게 안다 해도, 꽤 괜찮은 성숙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볼 때, 당장의 결과만을 보는 것이 아닌, 그가 보내온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알고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고, 한계를 지닌 존재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만, 노력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상상력을 활용해서요.
그렇게 가을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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