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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수필] 어둠 속에서 춤추기

2025.10.31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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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편지

춤추는 거북이 무구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일단 바닥에 편히 누우라는 얘기에, 나는 비교적 먼지가 덜한 자리를 찾았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사람들은 바닥에 누웠다. 음악이 시작됐고, 눈을 감은 뒤 호흡에 집중했다.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술을 살짝 벌려 그 사이로 내뱉는다. 두 손은 배 위에 살짝 얹었다가 한쪽 팔은 스르르 바닥으로 편히 떨어트렸다. 호흡에 집중하며 내 몸이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낯선 장소와 처음 보는 사람들, 불친절한 프로그램 진행에 여기저기 잔뜩 불편함과 불안함이 몸을 경직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음악을 들으며 숨을 고르니 이제 몸 곳곳으로 중력을 느껴보란 이야기가 들렸다. 손가락 끝으로 톡톡, 바닥을 쳐보기도 하고, 팔꿈치로, 어깨로, 등허리와 엉덩이, 허벅지와 종아리, 발과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도 보고 몸의 무게 중심을 한 곳에 집중해서 둬봤다. 엉덩이 한쪽에만, 왼쪽 어깨 위에, 그러다가 몸을 모로 세워서 다리를 구부리고 등을 둥글게 굽혀서, 엎드려서, 다시 돌아누웠다. 눈은 떴다가도 금세 스르르 감겼다. 살짝 뜬 눈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멋쩍은 느낌과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면서도 부끄러운 감각이 빠르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감고 좀 더 이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파트너를 한 명씩 정했다. 한 명은 눈을 감고 한 명은 눈을 뜬다. 눈감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을 한 손을 잡은 채, 기척으로만 느끼면서 따라가는 연습을 번갈아 한다. 그 후에 본격적으로 눈을 감고 춤을 춰보기로 했다. 온전히 파트너의 손을 믿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간. 음악에 맞춰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공포가 가장 먼저 밀려온다. 내가 붙잡은 손이 나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을 믿어야 그다음 동작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처음엔 조금씩 걸음의 보폭을 늘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파트너의 손바닥을 의지하게 되면서 점점 움직임은 대범해졌다. 팔을 위로 들고 그 아래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바닥에 가까이 내려갔다가, 제자리에서 높이 뛰기도 하고, 어두운 공간 저 멀리 뛰어가 보기도 했다. 실제로는 얼마나 빨랐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둠 속 세상에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게 몸을 움직였다.

시야의 차단이, 눈 아닌 다른 감각의 몰입을 끌어올린다. 손바닥으로 전달되는 파트너의 몸짓, 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온도,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느껴지는 바람, 팔의 흔들림, 다리와 관절의 움직임, 귓속으로 들어와 나의 등을 순순히 밀어주는 음악 소리.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몸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하고 싶다고 느끼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

 

글쓰기만으로는 내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주로 글쓰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나는 예술가이지 교육자는 아니기에, 어떤 대상에게든 수업하는 일은 매번 앞이 컴컴한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진행될지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어둠, 나의 실력이 만천하에 까발려질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내 손을 잡은 파트너의 존재였다. 나와 함께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내가 준비한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 이 시간의 의미를 함께 인정하고 공유하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 사람들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나는 자유롭게 춤출 수 있었다.

제약이 없었다면 애초에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영역에서 예상 밖에 얻은 것들을 떠올린다. 새로운 만남, 성장, 누군가의 사소한 변화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풍성하고 넓어지는 나의 시야와 세계. 숨을 크게 들이쉬고, 후우,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호흡을 바깥으로 내뱉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전혀 존재를 모르고 스쳐 지나갔을 각각의 인생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온전히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새로운 방식의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무섭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시각의 차단이, 파트너의 손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드넓고 어두운 공간에서 마음껏 춤추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 나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손을 믿으며 자유롭게, 어둠 속에서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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