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세 번의 밤 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그날. 다음 날 아침 출국 전 요깃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바로 다시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밤 산책을 핑계로 조금 더 도쿄를 걸어보기로 했다.
이치가야는 코로나 전에 해마다 겨울이면 방문했던 동네였다. 매번 그곳에 있는 교회 건물에서 숙박하기도 했고,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던 목사님과 인사만이라도 하러 일본에 가면 꼭 들렀던 동네. 코로나로 인한 출국 금지가 풀리고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동네도 이치가야였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가장 먼저 느꼈던 건, 입국 절차가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준비했는데도 꽤 시간이 들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 특히 한국인 여행객도 참 많았다. 공항에서 도쿄역으로 가는 고속버스도 가격이 오르고, 버스가 매번 내리던 정류장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차해서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못 온 몇 년 사이에 도쿄가 바뀌었구나. 코로나 때문에 바뀐 것도 있고, 시간이 그만큼 흘렀기에 변한 것도 있겠지 싶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도시인데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는 아쉬움을 안고, 휴대전화로 지난 몇 년간 차곡차곡 저장해둔 정보가 있는 구글맵 앱을 켰다. 지도가 알려주는 이동 경로를 따라 숙소를 향해 갔다. 나흘 동안 지낼 짐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전철에서 나와 역 플랫폼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치가야, 넌 그대로구나. 괜히 반가운 마음에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세 밤을 자고 오는 이번 여행은 일본이 처음인 친구와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알차게 먹고 보고 누리고 싶은 마음에 신주쿠, 시부야, 긴자 등 크고 멋진 동네들을 데려갔다. 평소엔 비싸서 잘 안 사 먹던 디저트를 과감히 구매하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문구 상점에서 형형색색의 연필 모양 샤프를 사기도 했다. 빈티지 옷 가게에서 이것저것 입어보며 어울리는 옷을 사고, 유명 드라마 촬영 장소였던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돌아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까지 사고 보니 금세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는 조만간 고향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었고, 나는 곧 결혼하고 신혼 생활은 광주에서 시작할 계획이었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한동안 만나기 어려워질 예정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단 생각을 나도 친구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딘가 헛헛했다.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나는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우리는 이치가야 골목길을 걸었다. 숙소를 향해 가는 오르막길에서 숙소 방향으로 꺾지 않고 쭉 앞으로 걸어갔다. 한 손에 포장된 주먹밥을, 다른 손엔 컵라면을 들고서.
사실, 내가 아는 곳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내가 내 발로 걷기 전까지는 그 장소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지도를 보고 알았기 때문에, 지도가 보여주는 것을 내가 믿기 때문에 그 장소가 있다는 정보를 알 뿐이다. 그날 밤, 친구와 같이 그 골목길을 처음 걸어보며 내 마음속에 실제로 그 장소가 생겨났다.
무슨 공장 단지로 보이는 공터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를 걷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건물 단지 앞에서 표지판을 보면서 우리가 모르는 일본어의 뜻을 추측하기도 했다. 동네를 그렇게 작게 한 바퀴 돌고서 야간에는 버튼을 눌러야만 신호가 바뀌는 짧은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 불을 기다렸다. 길을 건너고, 숙소에 들어가 마지막 짐 정리를 갈무리하고, 잠들었다. 여행 마지막 밤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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