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여름방학

2-6 행복하다는 증거 수집

마흔의 여름방학 : 헬싱키에서 보낸 일주일

2025.08.13 | 조회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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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2-6 행복하다는 증거 수집

 

그때그때 나누고 싶을 정도로 벅찬 마음이 들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여행 사진이 너무 많으면 혹 보는 사람이 피로할까 꾹 참았는데도 여행의 즐거움이 느껴진다며 연락을 꽤나 많이 받았다. 충분히 자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곳에서의 즐거움은 차고 넘쳐흘러 누구나 알 수밖에 없었나 보다.

 

‘네 사진 좀 많이 찍어라.’

엄마는 딸의 무사를 확인하고, 좀처럼 보기 힘든 혼자 찍은 사진을 저장해두기 위해 사진을 요청했다. 셀카 찍는 취미가 없는 나에게는 꽤 어려운 요구였다. 하지만 딸이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혼자 해외로 나가 있는 것이 엄마의 걱정거리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 까짓것 또 한 번 평소에 하지 않을 짓을 하자.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기미 주근깨 얼굴도 그저 예뻐하는 유일한 존재가 엄마이기에 기회가 되는대로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를 담아 보려고 노력했다. 

 

헬싱키에 머무는 내내 틈나는 대로 내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다 거울이 보이면 멈춰서, 바다가 보이거나 아름다운 풍경에서도 누가 볼 세라 후다닥 셀카를 찍었다. 혼자 사진을 찍는 게 너무 어색했지만, 누구에게 부탁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그랬다면 헬싱키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두 다리를 딱 붙이고 일자로 서서 브이를 하고 있을 게 뻔하다.

그래도 엄마의 당부를 떠올리며 사람이 없을 때 최대한 많이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기쁠 땐 사진 안에서 즐거워하는 내 흥겨움까지 담길 바랐고, 좋은 날씨에는 화창한 햇살과 바삭한 공기까지 담기길 바랐다.

 

한국과 연락하기 좋은 오후 4시쯤이면 열심히 걷다가도 잠시 앉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갤러리로 들어가 벌써 과거가 된 어제의 사진들을 보며 남길 것과 지울 것을 신중히 골랐다. 정신없이 찍은 셀카 중에 도저히 못 봐주겠는 사진이 주요 삭제 대상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저녁부터 오늘까지 내가 본 좋은 것들을 모아 엄마에게 전송한다. 바위산 아래 지어진 암석 교회 사진과 서점 안 카페와 내 여러 장의 셀카들. 한국에서 엄마는 지금쯤 저녁상을 물리고 드라마를 보며 잘 준비를 할 시간이겠지. 엄마의 편안한 꿈자리를 위해 나는 여기서도 안전하고 또 행복하다는 증거를 수집해 보낸다. 

헬싱키에 다녀온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때 내가 찍은 셀카가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다. 프로필 아래 문구는 1년 내내 물결과 하트를 꼬리처럼 달고 있는 이쁜 내 새끼. 어른으로 사느라 애쓰는 모두가 사실은 그냥 누군가의 어린 딸. 마흔에도 방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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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처서가 지나니 바람이 확실히 달라져서 얼마나 놀랍던지요. 주변에서는 계절의 신비, 조상들의 지혜 같은 이야기를 하던데 저는 속으로 긴팔 정리해서 넣은 지 얼마 안 됐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아이들 방에 각자 옷장 하나씩 해서 사계절 옷을 다 넣으면 참 좋겠는데 그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네요.(내 집 사면 좋은 옷장을 사겠다고 꾸준히 버티는 중)

다들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을까요? 저는 이번 주 주말에 포항에 갑니다. 문화다방의 책을 초창기 부터 입고해 준 달팽이 책방에 갈 생각에 들떠있어요. 언제 봐도 좋을 바다는 당연히 몸으로 즐기고 올 생각입니다.

물러갈 듯 물러가지 않은 여름 건강히 보내셔요. 저는 8월에 또 한 장의 편지를 더 써 보내겠습니다.

 

2025.8.13.

희정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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