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거야
7살 딸 하나에게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듯 내 암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번에 수술로 떼어낸 엄마의 목 안에 있던 혹이 사실 암이었고 지금은 사라져서 다 괜찮다고. 오히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채소도 잘 챙겨 먹었더니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던 나에게 하나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정말 그걸 몰랐냐는 듯 신기하게.
“엄마, 그거 몰랐어?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거야.”
아직 암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의 암에 대해 설명하면서 두려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정말로 이제 나쁜 일은 다 지나갔고 좋은 일이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암을 치료받은 것이 좋은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손을 맞잡고 집으로 걸어오던 길에서 그 말을 하며 웃던 아이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갑상선 유두암은 착한 암, 흔한 암이라고 불리는 질병이다. 초기에 발견하면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되고, 수술도 3일만 입원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의 무게는 동일했다. 오랜 기간 갑상선 항진증과 저하증을 오가며 약을 먹을 때만 해도 ‘갑상선 질환 투병’이라는 단어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는데 ‘갑상선 유두암 환자’라니.
하지만 내 목의 결절이 9단계(98% 확률의 암. 가장 높은 단계다)의 암 조직이라는 것은 번복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심리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얼마만의 시간이 걸리든 간에 손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는 느긋하게 침대를 파고 들어가 훌쩍일 겨를이 없었다. 병원을 검색하고, 유명한 교수님들 초진을 예약하고, 치료 방법을 알아봤다. 어쩔 줄 모르는 심장은 차치하더라도 머리는 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암에 걸렸더라도 아이는 매일 학교에 가야 하고, 나는 아침과 저녁을 준비해야 하니까. 이런 일로 일상이 멈춘다거나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수술하러 가는 날 아침. 이제 막 1학년이 된 딸을 4학년이 된 아들에게 부탁해 등교를 마쳤다. 다행히도 다음 날부터는 남편의 휴가였다. 3박 4일 병원에서 퇴원하고 친정에서 이틀을 더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개화가 늦어졌다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몹쓸 병에 걸린 것이 아이가 아닌 나여서 차리라 다행이었고. 일찍 발견해 전이 없이 일부만 절제할 수 있어 감사했다.
수술 후에는 연습 또 연습이었다. 나를 맨 앞으로 내세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 피곤할 때는 쉬는 것, 피곤하지 않아도 쉴 수도 있는 것도 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니 어색했다.
암의 원인은 밝혀진 게 없다지만 그 후로 내 모든 선택은 내가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덜 괴로운 쪽으로, 가능하다면 기쁜 것을 향해서. 삶이 조금씩 단순해졌다. 이제 좋은 일이 찾아올 차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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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9.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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