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한 번도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 적 없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길었다. 30대가 끝나고 누가 봐도 중년인 된 후로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에만 가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하지 않았나. 겁 많고 걱정은 더 많은 내가 혼자서 떠날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해마다 영어 공부를 새해 목표로 세우는 사람. 말도 안 통하는데 괜히 혼자 핀란드에 갔다가 남아있는 알량한 자존감마저 훅 꺼져버리면 어쩌나 지질한 걱정이 들었다.
운 좋게 해외여행을 몇 번 가보았지만, 가이드가 있는 여행이거나 의지할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딱 한 번 혼자였던 적이 있지만 공항에 내리면 거기 살고 있는 친구가 마중 나와 있는 여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나 돈이 문제지 떠날 수만 있다면 언제든 갈 것처럼 굴던데 나는 아이들을 놓고 혼자가 되는 것에, 낯선 나라에 혼자 떨어지는 것에 설렘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일주일짜리 마흔 살의 여름방학을 떠난다. 그것도 갑상선암 수술 후 받은 보험금으로 떠나는 여행. 대출금 이자와 생활비로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500만 원을 뚝 떼어내어 내 몫으로 챙겨두었다. 방학이 없는 성인으로 살다가, 방학이 더 바쁜 엄마가 된 지 10년.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은지 여러 번 자문했다. 마흔은 부러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나이니까. 낯선 곳으로 혼자 떠나는 도전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필요한 것은 오직 결단과 용기뿐. 아주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보자.
차라리 다 같이 갈까, 큰 아이만이라도 데려갈까. 한 장, 네 장, 두 장, 다시 한 장,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여러 번 취소했던 비행기 티켓을 할인하던 마지막 날 가까스로 결제하고, 브런치에 공표하듯 글을 썼다. 남편과 아이들을 놓고 혼자서 유럽 여행을 결심했다고. 그 글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소개되었다. 종종 그런 적이 있는데 조회수만 올라갈 뿐 아마도 어차피 글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바로 삭제해 버린 탓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 유럽에 가다니 미쳤냐는 뉘앙스였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욕설이 담긴 댓글에 놀라 익숙하지 않은 닉네임을 클릭해 보니 캡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의 프로필 사진이 떴다.
자기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놓고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욕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구나. 내가 사는 세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조용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생각해 보니 신고할 것을 그랬다).
말을 고르고 글을 다듬는 것이 내 일이니까,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주저 없이 쓰는 사람의 한 줄에는 휘청이지 않기로 한다. 북유럽, 아이 없이, 남편 없이, 마흔의, 여자 혼자. 내 글의 어떤 단어가 그 사람을 분노로 이끌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떠나는 것을 결심하기까지는 어려웠으나 이왕 가기로 마음먹은 것 기쁘게 다녀올 예정이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혼자서 북유럽으로.
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초반에는 뉴스레터에 썼던 글과 본 듯한 이야기들이 있을 거예요. 3편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요즘 저는 4월 제주북페어에 맞춰 선보일 신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또 작게 다른 꿍꿍이가 하나 있는데 시작하게 되면 말씀드릴게요(별건 아니지만요).
1~3편까지 오늘 다 보낼 예정이라 메일을 열어보는 것이 피로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느 대형 플랫폼 마케팅 담당자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피로함을 뛰어넘을 정도로 계속 눈에 띄어야 알려지는 거라고. 그렇구나... 하나 배우면서 또 나는 참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구나를 느꼈어요. 저는 메일함에 안 읽은 뉴스레터가 쌓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구독을 취소하거든요. 허허.
그럼, 2, 3편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25. 3. 9.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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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in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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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맞아요. 별거 안 하고 휴식하기 딱 좋은곳. 그러려고 거기까지 갔냐면 할 말 없지만. 그게 여행이기도 하고요. 그쵸? 여기서 뵙게 되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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