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먼 나라에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쯤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내가 왜 좋냐고 묻는 아이에게 ‘네 발뒤꿈치가 방울토마토처럼 말랑하니까’라고 대답하는 건 좀 이상하니까. 나는 네가 그냥 좋은데. 무조건 좋아서 모든 걸 좋아하다 보니 네 발뒤꿈치를 보며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설명한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코트가 초록색이어서 좋다거나 체크무늬 가방이라 샀다든가 하는 명료한 이유가 있다면 차라리 쉽다. 하지만 내가 진심을 다해 열렬히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딱히 설명하기 힘든 모호한 부분이 있다.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의 표지만큼은 핑크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 마음에 들고. 이 공간에는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라 애정하는 카페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누 투오미넨 Anu Tuominen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서촌 ‘갤러리 팩토리’에서였다. 그전까지는 그녀가 핀란드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고 핀란드라는 나라 자체도 무척 생소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흔히 얘기하던 휘바휘바가 그 나라 말이었던가 할 정도의 수준.
갤러리 팩토리는 서촌에 살았을 적 좋아하던 갤러리였다. 지은 지 오래된 낮은 주택들 사이 시장과 갤러리가 함께 있는 동네에서, 특히 갤러리 팩토리는 서촌을 서촌답게 만드는 곳이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1층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흥미로운 작품이 보이면 아무 정보가 없어도 장본 가방을 둘러메고 슬쩍 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무더운 여름날, 우연히 들어간 아누 투오미넨의 전시에서 나는 어떤 것에 사로잡혔던 걸까. 최대한 잘 설명해 보자면 닳아서 콩알만 해진 색연필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것에, 낡은 빨랫 집게를 색깔별로 나란히 늘여놓았다는 것에, 접시 안에 음식 대신 실뭉치를 넣어 두었다는 것이 좋았다. 그건 내가 산에 가면 괜히 마른 잎을 주어와 책 사이에 껴놓거나, 모래사장에서 바짝 마른 하얀 나뭇가지가 있는지 찾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 그런 건 왜 모아두냐고 물어봐도 할 말이 없었다. 두고 가기엔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쓸모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내가 들어도 그저 예쁜 쓰레기를 모아두길 좋아하는 지저분한 집주인의 변명 같았다.
이유는 뾰족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따뜻했다. 오래입어 날긋해진 스웨터처럼. 누군가가 버리거나 잃어버렸을 물건들을 작품으로 승격시켜 주는 다정함과 그걸 소중하게 사진으로 찍고 해외로 가져와 진열했을 모습을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좋았다. 전시를 보고 있으면 ‘어머!’라고 혼잣말이 나와버릴 정도의 유머까지 더해져서, 나는 전시를 보는 내내 대체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다.
전시를 꼼꼼히 보고 오래 본 후, 고민하지 않고 갤러리 내에 비치되어 있던 작품 가격 리스트를 확인했다. 곧 네 녀석 중 하나를 꼭 집으로 가져가리라. 집으로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며 우리 집에 어울릴 작품을 고민했고 바로 메일을 보냈다. 마침 첫아이를 낳고 백일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아이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로 오래 간직할 예술 작품 하나 구입하는 것. 엄마가 된 것을 자축하며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될 것 같았다. 기저귀 가방을 사려고 했던 돈으로 아누 투오미넨의 작품을 사고, 가지고 있던 백팩에 노트북 대신 기저귀를 넣어 오래 사용했다. 여러모로 훨씬 이득이었다.
며칠 뒤 도착한 아무 투오미넨의 작품은 우리 집 티브이 뒤에 걸렸고 그 후로 세 번의 이사를 할 때마다 특별 취급을 받았다. 예물로 마련한 진주 목걸이와 결혼반지 같은 것들과 함께 이사 전 미리 챙겨야 하는 귀중품으로 꼼꼼하게 포장해 차 트렁크에 미리 옮겨졌다.
그때 100일이었던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10살이 되었고, 나는 그 사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핀란드 공예 전시를 챙겨보고, 아누 투오미넨의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지켜보며 언제 또 한국에서 전시를 열릴까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다. 저 멀리 북유럽에 사는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내가 직접 갈 수도 있다. 전시장에서 그녀의 전시를 보고 있는데 마침 그녀가 갤러리에 들어오는 상상까지! 그 황홀한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전시 소개
갤러리 팩토리의 10월 전시는 북유럽의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하는 Arctic Fever Series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버려지거나 잊혀진 일상의 물건들을 감성적인 예술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는 핀란드 작가 Anu Tuominen(아누투오미넨)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Anu Tuominen(아누투오미넨)은 주로 자연이나 벼룩시장을 통해 재료를 발견하고 수집한 재료를 작품의 특별한 기술적 특징인 코바늘 뜨개질을 이용하여 세심하게 구성한다. 이것을 놀라운 조합으로 배치하거나 쌓고 걸면서 원래의 기능이 아닌 전혀 다른 기능을 부여하며 친숙한 것들을 예상치 못한 것들로 만들어 낸다.
Anu Tuominen(아누투오미넨)의 색상과 디자인은 노스탤지어와 유머가 섞인 강력한 시각적 언어로 보여진다. 그리고 우리 주변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쓰는' 시인과 닮아있다. 혼돈은 질서가 되고 쓰레기는 아름다운 것이 되고 일반적인 것은 특별한 것이 되며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된다. 그렇게 그녀가 만드는 '볼' 수 있는 무언가의 미묘함과 깊이는 한 편의 시 처럼 우리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긴다.
이번 전시는 Anu Tuominen(아누투오미넨)이 공간설치,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였던 작업이 오브제, 소품 형태의 손뜨개질 작업으로 전시장 안을 구성한다.
♦작가 소개
Anu Tuominen 아누 투오미넨은 벼룩시장이나 자연에서 발견한 눈에 잘 띄지 않고 평범한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해 색, 형태 등으로 분류하거나 파운드 오브제와 크로쉐를 결합하는 섬세한 작업을 하는 핀란드 작가이다.1992년부터 스웨덴,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전 세계적으로 개인전을 해오고 있으며 2014년 10월에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Pracrtical Theories'가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다.1995년 멘테아트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예술상인 아르스페니카 상을 받은 바 있다. Naturally, Thinkable 등의 아티스트북이 핀란드어, 영어, 일어, 스웨덴어 등으로 출간 된 바 있으며, 주요 공공기관 콜렉션에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출처: 갤러리 팩토리 홈페이지
제가 정말 사랑하는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글을 썼습니다. 헬싱키로 떠나게 된 것의 9할은 그녀 때문이었어요. 좀처럼 울지 않은 제가 그녀를 처음 만나고는 엉엉 울면서 안겼다지요.
헬싱키에서 어떻게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것을 했는지 또 천천히 적어 볼게요. 그럼 3월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25. 3. 9.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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