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원주에 다녀왔어요. 책방 코이노니아에서 북토크가 있었거든요. 다른 지역 책방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되도록 온 가족이 움직이는 편이라 1박2일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주에 가면 '소로 여행자의 집'에서 밥을 먹고 '뮤지엄 산'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있는 청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저의 숨구멍인데 아마도 원주에 산다면 뮤지엄 산이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런데 도보로 갈 수 없고 입장료가 비싸다는 점 때문에 숨구멍 치고는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중년이 되면서 느끼게 된 위축감과 불편함에 대해 적어봤어요. 🙂
3. 마흔 일기 / 아줌마
왜 아무도 내 옆자리에 안 앉아?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대학시절 제 집 앞처럼 다녔던 쇳소리 나던 을지로가 이제 힙지로라고 불린다는데 거길 가볼까. 요즘 연희동이 눈에 들어오던데 연남동에서 밥을 먹고 연희동으로 넘어가 볼까. 아니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홍대에 가볼까.
한때는 요즘 멋진 곳을 줄줄 꾀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조금 심드렁해졌다. 예전이야 홍대나 강남 만나는 곳이 뻔했는데 이제는 갈 곳도 알아볼 곳도 많아졌다는 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것도 나이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날짜를 정해놓고 친구들과 각자 장소는 좀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지인이 올린 인스타그램 피드가 눈에 들어왔다. 광장시장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세련된 분위기였다. 광장시장이란 자고로 애피타이저로 마약김밥 먹고 종문 횟집에서 소주 한 잔 한 다음 순희네 빈대떡에서 막걸리가 떡이 되게 마시던 곳 아니었나. 언제 이렇게 세련된 와인바가 생겼담.
일산, 청주, 화성에 사는 유부녀 둘과 싱글 한 명은 만나자마자 스무 살 그때로 돌아갔다. 공강 시간에 치즈 떡볶이를 먹던 그때로. 어둡고 지저분한 동동주 집 다락방에 몸을 구겨 넣고 떠들던 그때로. 야작을 하다가 컵라면을 사려고 캠퍼스 호수를 가로질러 걷던 그때로. 데킬라를 잔뜩 마시고 화장이 다 지워진 얼굴로 강남역에서 아침 첫차를 기다리던 젊고 무모했던 그때로 말이다.
아현동에서 맛있는 초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대학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이동했다. 예약한 와인바의 루프탑은 온실처럼 유리로 되어있었다. 테이블은 딱 두 개뿐. 창밖으로 불 켜진 빌딩들이 보였고, 마침 회색도시의 풍경과 어울리는 비가 알맞게 내렸다. 연인이라면 역사가 이루어질 분위기였고 소개팅이라면 백 프로 성공할 만한 타이밍이었다. 어스름한 밤이 되자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어우러져 완벽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오랜만에 집 밖으로 탈출한 우리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기 충분한 무드였다.
우리는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육아, 남편, 일, 휴직, 연애, 청약 등등 주제의 경계 없이 마음껏 널뛰며 생각 나는 대로 수다를 떨었다. 적당히 차가운 와인과 함께 양은 적고 플레이팅은 예쁜 안주를 곁들여서.
한 병을 금세 비우고 두 번째 와인은 직원이 추천해준 것 중에 가장 저렴한 것으로 시켰다. 어릴 적 용돈을 받아 친구들과 와인을 먹던 때는 오히려 저렴한 와인을 주문하는 것이 망설여졌는데 이제는 거리낌 없다.
와인을 설명하던 직원이 가격대는 얼마를 생각하냐고 묻는데 스스럼없이 '저렴할수록 좋죠.'라고 할 만큼. 이제는 얼마짜리 와인인지, 화이트 와인인지, 샴페인인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몇 년 만에 얼굴을 본 친구들과의 자리인데 영수증 금액에 얼마가 쓰여있든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투명하고 예쁜 유리잔에 적당히 취할 수 있는 마실 거리만 따를 수 있으면 무엇이든 얼마든 괜찮았다. 그때보다 지갑도 두꺼워졌고 얼굴도 그만큼 두꺼워졌으니까. 아무거나 한 병 더 마시며 이 분위기를 끊지 않고 이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직원이 새로운 와인을 따라주고 내려간 뒤에,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낯선 남자랑 얘기했다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젊은 남자가 상냥한 말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걸 듣는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낯선 남자가 그것도 젊은 남자가 친절하게 와인 종류를 설명하는 걸 듣는 게 속물처럼 좋았나 보다. 그런 내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도 흉보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더 좋았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필요 없는, 어떤 말을 해도 나를 멋대로 판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오랜 친구는 그래서 편하다.
깔깔거리며 웃는 사이 내가 정말 성인 남자와 대화를 주고받은 지 얼마나 됐더라 떠올려봤다. 내 주변에 남자는 그러니까... 정육점 사장님이랑 아이의 합기도 관장님이 있구나. 그래 봤자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다섯 글자 주고받는 것 말고 없으니 대화라고 할 수 없고.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단골 미용실 청년 사장님뿐이었다. 술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 정보도 자주 주고받고 했다. 비록 머리하는 내내 사람이 가장 못생겨 보인다는 미용실 거울을 앞에 두고 이야기해야 했지만.
애 둘 엄마가 낯선 남자와 대화를 꿈꾼다고 해서 불순한 동기가 있을 거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묘한 기류나 특별히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을 바라는 게 아니니까. 그저 이 사회의 절반이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나는 하루 종일 아이의 친구 엄마들 하고만 얘기하며 살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나와 이야기하는 남자라고는 유튜브와 포켓몬 이야기만 하는 수다쟁이 아들과 대화의 마무리는 꼭 싸움이 되고 마는 남편뿐이니까.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아이를 따라다니거나, 그랬구나 그랬쪄 오구 잘했다 같은 아이의 말투를 따라 하지 않는 성인들의 대화를 나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가끔은 식당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를 할까 상상한다. 낯선 어른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그런데 왜 우리 옆자리에 아무도 안 앉지? 아줌마들 옆이라 그런가?"
왁자지껄 떠들다 친구의 금기를 깬 한 마디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금 전 한 처자들이(크롭티를 아무렇지 않게 입는 세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셀카 찍는 걸 쑥스러워하지 않는 세대의 젊은 여자들을 이렇게 부르는 내가 너무 할머니 같지만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가씨'는 어쩐지 입에 붙질 않고) 테라스에 올라왔다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다니 내려가던 차였다. 아줌마들이 분위기 망치는 것 같아 싫은 건가. 나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친구의 말에 뜨끔했다.
그 사람들은 예약이 치열하다는 테라스 자리가 비어있는데 왜 앉지 않았을까? 마치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스캔하던 사람이 내 옆 말고 더 좁은 다른 자리를 선택했을 때처럼 무안했다. 오늘 옷차림이 그렇게 별론가?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나? 티 안 나게 나를 점검하며 뻘쭘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진짜 우리가 아줌마들이라서 그런가? 정확하게는 우리들 중 한 명은 싱글인데? 그러니까 이건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우리가 나이에 위축된 거였다. 힙하다는 곳에 왔다고 설레어 있는 곧 마흔의 여자들의 자격지심.
나이가 들면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위축되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란다. 내가 벌써 그럴 나이인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영 이상해서. 아직도 나는 명절에 친구들과 놀러 다니던 그때가 생생한데, 양가를 오가느라 평소보다 더 바쁜 며느리가 되어있다니. 내 머릿속에 나는 캠퍼스를 누비던 리즈시절 같은데 문득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나는 그저 나잇살 먹은 흔한 아줌마라니.
이제는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 날 학생이나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나 아기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줌마 같아 보이는 것과 아줌마스러운 것들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아줌마'라는 호칭과 반대로 일하는 곳에서 가끔 듣는 '선생님'이나 '대표님' 같은 호칭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도 인생에서도 선생님 소리를 들을 만큼 제대로인 게 없는데, 아직 뭘 대표할 깜냥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모자라고 배워야 할 것 들이 많은데 벌써 선생님이라니.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여전히 내가 만든 것으로 두 아이와 남편을 먹이고 키우고 살리고 있다는 거에 새삼 놀란다. 결혼하고 주부로 11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자신있게 뚝딱 만들어 내는 요리는 몇 개 없다. 요리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여전히 엄마한테 물어 본다. 중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어른은 된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버리는 새벽과 늘어나는 건강검진 항목들이 멍하니 살고 있는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늙고 있다는 것을 나 몰라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걱정이 많은 아줌마는 중년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임과 그리고 동시에 노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거울 앞에 서면 내가 상상하던 나보다 조금 더 늙은 내가 서있다. 키오스크로 주문할 때는 한껏 긴장한 채로 뒷사람을 의식한다. 내 나이 때문일까 단순히 기계치라 그런 걸까 고민하면서. 터미널이나 영화관에서 표를 사지 못하는 할머니가 언젠가 마주할 내 미래가 되려나. 내가 이 시대의 노인이었다면 인스타그램 dm으로만 예약을 받는 가게에서 입장을 거부 당하는 것에 과연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늙는다는 것이 점점 나와 상관없는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문화다방 소식
하반기 문화다방 일정입니다. 구독자님이 어디서 이 편지를 받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제가 그쪽으로 가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서호책방'에서의 북토크와 '글쓰는 월요일' 수업 신청은 링크 걸어두었습니다.
▪9/3(토) 서호책방 북토크+원데이 수업 / 동해
▪9/5(월) '글쓰는 월요일' 가을학기 시작 / 온라인
▪9/23(금)~25(일) 2022 대한민국 독서대전 / 원주
▪10/28(금)~30(일)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편지까지 건강히 지내시길.
22.9.1. 희정.
의견을 남겨주세요
am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아주 사적인 마흔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