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마흔 일기 / 유머
네가 야! 하면 나는 호!
블로그에 쓰는 육아일기의 제목은 <유머와 인내>다. 처음 생각은 <유머와 체력>으로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며칠간 허리를 쓰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도 육아는 계속되었으므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체력은 실질적으로 건강한 몸이라기 보다 인내할 수 있는 범위라는 생각에 인내로 바꾸었다.
처음 글을 올린 게 23년 3월 12일이니 나는 아마 그 시점부터 ‘재미’의 존재를 의식한 것 같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이를 키울 때는 물론이고, 부부 사이에서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말버릇이 여러 개 있지만 가장 싫어하는 것이 첫 번째가 혼잣말처럼 하는 욕설이고 두 번째가 아이들에게 이름 대신 ‘야’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더 큰 소리로 해보기도, 무시해 보기도, 경멸해 보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은 그와 그럴 때마다 긴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경직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전수영의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딸은 자주 말했다. 사람에게, 집안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맞다. 사는 데는 유머가 절실하다. (중략) 정색하면 모두가 더 불행해져 버리고 만다.’
차에서 안전벨트를 벗겠다고 너무 답답하다 짜증 내고 있는 딸에게 그만 좀 하라며 남편이 또 야!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정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의식적으로 지금부터 방법을 달리하겠다 마음먹었다. 분노와 무시와 경멸도 이 사람의 ‘야’ 소리를 바꿀 수 없다면 유머의 힘을 빌려보리라.
나는 남편이 빨간불로 차가 멈춘 사이 고개를 돌려 딸에게 야! 하면 바로 뒤따라 호! 했다. 뜻밖의 야호 돌림노래에 아이들은 웃어도 되나 망설이더니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엄마 그게 뭐예요. 푸하하”
“앞으로 우리 집에서 누구든 야라고 하면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이 딱밤을 때려 주는 거야.” 새로운 규칙도 만들었다. 이제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야! 하면 혼나고 있던 도중이라도 아이들 입에서 반듯이 호! 가 나오고 만다. 그럼 나는 이때다 싶어 후다닥 달려가 딱밤을 때린다.
과연 유머의 힘은 대단했다. 입에서 ‘야’소리만 나오면 우스워지는 상황에서 남편은 더 이상 화가 날 때도 ‘야’를 소환하지 못했다. ‘내가 야! 하면 너는 예! ‘한다는 노래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네가 야! 하면 나는 호!’작전은 꽤나 쓸만했다. 끝내 웃음을 만들어 냈으니. 그 듣기 싫은 소리를 멈추었으니.
나는 그다지 웃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들 덕분에 자주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띠띠띠띠 번호 키 울리는 소리가 나면 이를 닦다 말고 나와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며 맞이한다. 괴상한 얼굴 표정 짓기는 단순하지만 효과가 빠르다. 이상하게 개사해서 노래 부르기도 유치하지만 아이들은 깔깔깔 웃으며 매번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또 한 번 전수영 작가의 글을 빌리자면 ‘이 나이에 심심하지 않은 건 오로지 아이 곁에서 살아갈 기회를 얻은 덕분’일 것이다.
지금 내 삶에는 가벼운 것들이 좀 필요하다. 내 책과 영화 목록은 너무 무겁다. 책은 가장 좋아하는 것인 만큼 무척 진지하게 고르고 엄격하게 평가한다. 내 일에 도움이 되거나, 내 취향의 글이 아니고는 잠시라고 손에 쥐고 있고 싶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으니까. 다음! 다음! 다음! 좀처럼 기다려 주는 법이 없다.
영화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류를 선호한다. 두 시간 몰아치는 스토리와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운 암시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장면이나 충격적인 결말 같은 것이 없으면 좀 서운하다. (다들 의외라고 한다) 그래서 '카모메 식당'과 '안경' 같은 일본 특유의 감성적인 잔잔한 영화는 끝내 끝까지 보기에 실패했다. 그래도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고자 '패터슨'과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두 번 만에 결말까지 보기에 성공하긴 했지만. 끝내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선호하는 것들에는 좀처럼 유머가 곁들여 있지 않으니 나는 그 외의 것에서 자주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 요즘은 일부러 웃기 위해 유튜브를 킨다. 시답지 않을 것을 보며 낄낄대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던 것을 반성하며. 아무 생각 없이 웃겨줄 것을 찾아 엄지손가락을 움직인다. 유익하지 않고, 교훈적이지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은 것들을 밥 친구로 틀어놓고 밥 한 술 떠고 푸핫 웃어버리는 시간에 이제는 죄책감 느끼지 않는다. 낄낄거리기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낭비한다.
어제는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나이가 들었는지 이제 기사님과의 대화가 싫지 않다) ‘즐겁게 사는 게 최고예요.’라는 말로 끝인사를 나눴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자녀분들은 그곳에서 결혼하고 한국에 와서 택시 기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분의 육아관을 꽤나 흥미롭게 듣고 있었는데 결론은 그거였다.
"공부를 잘하든 어디에 살든 결혼해서 애들 낳든 말든 아무튼 즐겁게 사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즐겁게 살면 되는 거예요."
"맞아요. 맞아요. 기사님. 많이 웃고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지요."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11월의 첫 날에 편지를 쓰는 제가 무척 대견하지 않나요. 저는 곧 이사라는 조바심을 들키지 않기위해 미리 노트북 앞에 앉았답니다. '불안을 섬기는 세계에서는 확인까지가 사랑'이니까요.
혹시 저와 영화 취향이 비슷하다면 흥미롭게 본 영화 추천해 주세요. 저는 타임 루프 영화는 거의 다 봤다고 자부할 정도로 좋아하는데 '타임 패러독스'와 보고 나면 영 찝찝하고 충격적인 영화로는 '그을린 사랑' 추천합니다!
또 편지할게요.
24.11.1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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