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1

쭘마인밀란 스물 여덟 번째 이야기

2022.08.18 | 조회 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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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28호
28호

8월이 되자마자 밀라노 시내는 더 조용해졌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8월은 그야말로 관공서부터 마트 직원까지 휴가를 가는 시기이다. 홍 군의 회사 역시 8월 둘째 주부터 2주 동안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맞는 휴가이니만큼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해외 생활 10년 동안 해외여행은 겨우 태국과 네팔이 다였다. 경제적 사정과 긴 휴가를 받지 못하는 한국 회사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2주씩이나 휴가를 쓸 수 있다니.... 게다가 여기는 이탈리아가 아닌가?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홍 군은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잘 모른 장소,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화려한 곳이 좋다. 남들이 다 아는 그런 유명한 곳,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곳. 나는 좀 관종이다. 

나랑 10년을 넘게 산 홍 군은 그런 내 성향을 꽤 뚫고 있었다. 이번 만큼은 내 취향을 존중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전에 베네치아와 피렌체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휴가 첫날,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먼저 쌀을 씻어서 냄비에 밥을 앉혔다. 냉장고를 뒤져 단무지와 스팸, 어묵을 꺼냈다. 야채는 겨우 당근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여유가 있는 달걀로 지단을 충분히 만들기로 했다. 

"우 투 더 영 투 더 우"가 좋아하는 우엉은 없었다. 어디선가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제 겨우 밀라노 살이 1/2단인 나는 우엉이 이탈리아 말로 뭔지도 모른다. 김밥 재료를 손질하는 동안 냄비가 끓어 넘쳤다. 얼른 중불로 줄이고 넘친 밥물을 행주로 닦았다.  냄비로 밥을 하려면 불 조절과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다행히도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인덕션이기에 냄비가 까맣게 타는 일은 없다. 하지만 김밥을 만들 고슬한 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약불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밥이 질다. 아무래도 물 조절부터 실패한 것 같다. 이런, 어쩔 수 없지. 밥이 된 게 어디냐. 

 

김밥을 열심히 말고 있는데 홍 군이 노트북을 들고나왔다. 어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화가 온다. 

"예, 팀장님. 네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네네."

통화를 마친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아무래도 일찍 출발하긴 틀린 것 같다. 

아침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에게 김밥 꽁다리를 먹으라며 건넸다. 이미 짐을 다 싸고, 옷까지 갈아입은 아이들은 언제 출발하냐며 날 쳐다본다. 

"글쎄.... 아빠 일이 아직 안 끝났나봐. 아빠 일 끝나야 갈 수 있겠는데...."

"아빠 언제 일 끝나?"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하염 없이 홍 군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일이 끝나나 싶으면 새로운 전화가 왔다. 그의 모습을 보며 일찍 출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그렇지 뭐..... 

그의 케리어를 보니.... 짐도 전혀 싸지 않았다.... 

 

"이제 가자~"

12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난 그는 그제서야 짐을 대충 쌌다. 그러고는 밥도 먹지 않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왠지 걱정이 된다. 

 

베네치아에 살면서 글을 쓰시는 김혜지 작가님을 만나기로 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글을 쓰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같은 이탈리아 하늘 아래서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있다는 것이 참 든든했다. 그런데 그 작가님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이다.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내 책도 작가님의 책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민하다 김밥을 몇 줄 챙겼다. 제발 가는 동안 맛이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밀라노에서 베네치아까지는 차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조수석에 앉아 남편의 시중을 들었다. 햇살이 많이 따가웠다.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말아서 그런지 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수석에선 절대 졸면 안 된다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졸음을 쫓았다. 

남편은 가는 내내 김창옥 씨의 강의를 들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강사이자 열혈 시청자이다. 남편이 불안증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김창옥 씨 강의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그의 모든 강의를 섭렵했고, 차만 타면 틀어 놓는다. 나와 아이들은 남편 덕분에 함께 듣게 되었다. 

반수면 상태로 김창옥 씨의 강의를 들으며 베네치아로 달렸다.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길, 김창옥 씨 강의를 들으며 : 김창옥씨 만나면 너무 반가워 껴안을 것 같은 느낌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길, 김창옥 씨 강의를 들으며 : 김창옥씨 만나면 너무 반가워 껴안을 것 같은 느낌
 휴식 공간에서 잠시 쉬기 : 바로 옆에 고속도로 통행료 내는 곳이 있다. 
 휴식 공간에서 잠시 쉬기 : 바로 옆에 고속도로 통행료 내는 곳이 있다. 

드디어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베네치아 본섬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으로 버스와 트램이 다니는 곳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지고 온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다시 노트북을 꺼내 든 홍 군과 핸드폰을 꺼내 든 아이들을 숙소에 남겨두고 나는 혜지 작가님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스타그램과 책으로만 만난 누군가를 직접 만나는 그 기분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전의 마음 같았다. 

숙소 바로 앞에 서 계시던 작가님을 만났다. 언제 머리를 자르셨는지 귀 라인의 짧은 단발에 에코백을 메고 계신 모습이 마치 대학생 같았다. 작가님의 남편분이 머리를 잘라주신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서 봤었는데, 이번에도 남편분이 잘라주셨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작가님은 이 동네를 잘 아시는 듯 보였다. 앞장서서 나를 리드해 주셨는데 어찌나 든든하던지. 낯선 동네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라 웃음이 났다. 

작가님이 나와 함께 가려던 곳은 작은 서점이었다. 그 서점엔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한국 책이 있다고 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도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며 갔는데.... 문을 닫았다. 결국 근처 작은 바(Bar)로 향했다.  

작가님은 스프리츠(spritz :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전에 마시는 칵테일 형태의 가벼운 술)를,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바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황색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음료수가 뭔지 몰랐다. 나는 그게 차가운 레몬티인 줄 알았다. 지금까지 스프리츠를 마셔본 적도, 그걸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긴, 나는 이탈리아 친구도 없다. 밀라노에 온 뒤로 만난 사람이라고는 학교에서 만난 일본 친구 나오고, 베트남 친구 호아, 중국 친구 맨디, 한국 언니 수잔이 전부이다. 그녀들과 만나면 우리는 꼭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러니 뭘 알겠어? 

 

작가님과 한잔 하면서 글과 책과 이탈리아의 삶에 대해 나누었다. 서로 같은 관심사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말이 통하는 느낌을 받은 게 실로 오랜만이었다. 작가님은 얼마 전에 '로마로 가는 길' 이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 그 책을 쓰기까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나대로 쓰는 삶을 계속 할 수 있는 방법과 무료로 매거진을 발행하는 이유에 대해 나누었다. 나는 작가님에게, 작가님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받았기를 바랐다. 

 

작가님과 헤어지기 전 고이 들고 왔던 김밥을 전해주었다. 

별것 아닌 선물이지만, 부디 맛있는 저녁이 되길 바랐다. 

김혜지 작가님과 시원하게 어깨를 들어낸 선량 작가 : 해외에서는 좀  과감해지곤 한다. 한국에선 절대 못할 일. 
김혜지 작가님과 시원하게 어깨를 들어낸 선량 작가 : 해외에서는 좀  과감해지곤 한다. 한국에선 절대 못할 일. 
야채가 부족해  달걀을 잔뜩 넣은 선 투더 량의 김밥 
야채가 부족해  달걀을 잔뜩 넣은 선 투더 량의 김밥 
이탈리아의 식전 주 spritz : 그후 스프리츠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레몬티와 닮은 거 맞죠?)
이탈리아의 식전 주 spritz : 그후 스프리츠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레몬티와 닮은 거 맞죠?)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 주에는 휴가 중이라서 매거진 발행을 못했습니다. 

이번 글부터는 휴가 중에 경험한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발행할 예정이에요. 일주일 동안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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