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쭘마인서울] 집

구독자께 보내는 열 다섯 번째 이야기

2022.02.17 | 조회 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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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vol.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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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어느 날, 농협에 다니던 큰 형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약종합통장이 나왔는데 가입하라는 전화였다. 청약통장이 뭔지도 모르던 나는 형부가 좋은 통장이라고, 다른 것보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매달 3 만원의 청약종합통장을 만들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라남도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 첫 직장 생활을 보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2년을 보낸 후 서른이 되기 한 달 전에 귀국한 나는 갑자기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광주에서 함께 살았던 언니들이 모두 서울로 상경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고,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갔기에 더 이상 광주에서 함께 살 가족이 없었다. 

그때부터 언니들 집에 얹혀 살았다. 작은 언니는 첫 조카를 낳기 직전이었고, 둘째 언니는 어린 아이 둘이 있었으며 큰언니는 아이가 셋이었다. 염치가 없었지만, 눈 딱 감고 언니들 집에 기생충처럼 빌붙었다. 

 

언니들도 모두 전라남도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모두들 결혼과 함께 광주를 떠났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 대부분 작은 빌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2년마다 철새처럼 이사를 다닌다. 그러던 언니들이 줄줄이 장기 전세에 당첨되었다. 장기 전세란 국가에서 20년 동안 전세를 내주는 것으로 일반 전세 값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다. 그렇게 하여 언니들 모두 이사 걱정을 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 

둘째 언니는 장기 전세에 당첨된 첫 번째 세대였다. 4년 후면 20년 만기가 되어 집을 나가야 한다. 장기 전세에 당첨되어 들어올 때는 좋았지만, 다른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전세 보증금으로 새로운 집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그동안 서울의 집값은 말도 못하게 올라버렸다.  

"우리 이번에 당첨됐어. 민간 분양에 당첨 돼서 계약 하려고." 

그동안 공공 분양이 어떻고, 민간 분양이 어떻고, 청약 점수가 어떻고.... 하는 말들을 카톡으로 들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99 제곱미터가 도대체 몇 평인지, 일 순위는 또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줄줄이 청약에 당첨되었다. 큰언니는 서울로,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김포 쪽에 당첨되었다. 청약 통장이 있으면 신청할 수 있으며 점수가 높으면 당첨 될 확율이 높다고 했다. 바로 2009년에 형부가 만들어 준 통장이었다. 

그 통장은 아직도 살아있다. 중간에 금액을 높여 매월 10만원씩 적금을 넣고 있다. 10년이 넘었으니, 순위가 꽤 높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해외에 거주하면 안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청약 통장을 그냥 적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집이란 도대체 뭘까?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가는 곳. 집은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 하지만 집이라는 계념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영어로 치자면, house와 home의 차이랄까. 나는 집을 home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집을 house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점점 내 집을 갖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대출을 끼지 않으면 집을 사기는 커녕 전세도 얻기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 해외에 살고 있어서 월세 값을 지원 받는 우리는 집에 대한 걱정은 덜한다. 하지만 한국에 다시 들어올 경우, 가장 걱정 되는 일이 바로 "집"이다. 

그냥 한 가족에겐 하나의 집만 필요하면 안될까? 집이 투자의 개념이 아니라 아늑한 공간의 개념이면 안될까? 인간의 기본 욕구는 의식주인데, 가장 기본이 되는 "주"가 이렇게 비싸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까? 

집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꼬리에 꼬를 물고 인생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깊어만 간다. 

2 (뭄바이 집에서 바라본 석양)
2 (뭄바이 집에서 바라본 석양)

지금까지 참 많은 집에서 살았다. 

날 때부터 살았던 고향 집, 광주에 올라가서 살았던 상가 건물의 3층 집, 처음으로 살아본 럭키 아파트, 둘째 고모와 함께 살았던 엄청나게 넓었던 집, 처음으로 살았던  전세가 아닌 엄마 명의의 아파트 2층 집, 병원 생활을 하며 살았던 기숙사, 네팔에서 혼자 살았던 방 하나 거실 하나의 작은 집, 동생과 함께 살았던 이대 근처 반지하 집, 셋째 언니네 집, 둘째 언니네 집, 결혼 후 신혼을 보냈던 안산의 작은 빌라의 4층 집, 방글라데시에 처음 가서 살았던 2층 집, 이사해서 살았던 2층 집, 다카로 이사 후 살았던 4층 집, 또 한번 이사하고 살았던 7층 집, 뭄바이로 이사 후 살았던 5층 집, 델리로 이사하고 살았던 4층 집.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에서 사는 동안 얻은 것은 어느 곳에서나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이다. 집의 크기나 층수에 상관 없이 내 살림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내 집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네팔에서 혼자 살았던 집이다. 밥그릇 두 개, 국 그릇 두 개, 숟가락, 젓가락, 밥통 하나만 겨우 갖추고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불렀다.

집이라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정서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럭셔리한 집은 바로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살았던 7층 집이다. 벽은 대리석이었고, 신축 건물이라 깨끗했으며 거실과 주방 공간도 넉넉하고 좋았다. 하지만 8층에 살고 있던 집주인은 지랄 같았다. 돈 많은 집주인은 영국 시민권자였지만, 하는 짓은 졸부였다. 갑자기 인도로 가게 되어 이사를 나갈 때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 갖은 머리를 쓰더니, 결국 부도 수표를 주었다. 역시 집보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힘들었던 집은 뭄바이에서 살았던 5층 집이다. 그곳은 외국인들이 전혀 살지 않는 아파트로 방 2칸 짜리의 작은 아파트였다. 창문을 통해 아라비안 해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매일 저녁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창문으로 비가 새어 들어왔다. 침대와 이불을 적시고 흘러 들어와 거실까지 물이 차올랐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을 퍼 대느라 지쳤다. 

 

다시 한번 새로운 집을 기대하고 있다. 비자를 받고 밀라노에 가면 우리 네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집을 구할 것이다. 적당한 크기의 집, 적당히 햇살이 들어오는 집, 적당히 시야가 트인 집이면 좋겠다.테라스도 있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적당히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학교와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늦잠을 자더라도 지각하지 않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아이들 친구들이 놀러와 즐겁게 놀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 일단 비자가 가장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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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 시골 동네에는 빈 집이 많다. 어렸을 적에는 사람들이 모두 살던 집이었지만, 한 사람 두 사람 객지로 나가고, 노인들은 하늘나라로 떠나고.... 결국 빈 집만 남아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의 사진 속 집은 내 어린 시절 친구가 살던 집이다. 그 친구는 이 집에서 살다가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지금 그 친구는 순천에서 살고 있다. 

이 집의 뒷집 역시 빈 집이었다. 셋째 언니의 친구가 살던 집이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부산으로 이사를 간 후 빈 집이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 객지에서 온 가족이 집을 개조해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대문을 멋지게 꾸며 놓은 걸 보니,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한번씩 귀농을 생각했다. 시골에서 소소하게 농사 지으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농사 일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자의 바람일 뿐이다. 그가 귀농을 말할 때마다 나는 말도 꺼내지 마라고 눈을 흘겼다. 

그런데 최근엔 그의 생각이 좀 바뀐 모양이다. 지난 여름, 울 아부지와 함께 농장에서 일을 좀 해보더니,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장인 어른과 사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마을에도 귀농한 사람이 몇명 있다. 한 사람은 귀농은 했지만 일은 읍내에서 한다. 또 한 사람은 귀농은 했지만 미역 공장에서 일하고 농사 일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귀농은 했지만 바깥 출입을 잘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귀농일까 아닐까? 

마을의 빈 집과 함께 노인들도 많아졌다. 이제 70대 중반이 된 울 엄마가 그나마 젋은 사람 축에 속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고흥이 몇 년 후면 사라질 거라고 했다. 우리 동네의 모습은 그대로일테지만, 더 이상 고흥이 아닌 고흥을 만나면 코 끝이 시큰 할 것 같다. 

 

도시의 집값이 올랐듯이 시골의 집값도 올랐다. 이렇게 시골인 고흥 아파트 값이 3억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골에 아파트가 있는 것도 너무 신기한데, 3억이나 하다니....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고 하는데 왜 집은 점점 많아지는 것인가? 집이 이렇게 많은데 왜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러고보니, 내가 살았던 방글라데시, 뭄바이, 델리의 집값도 계속 오르기만 했다. 밀라노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저렴했던 월세 값이 지금은 너무 올라서 2천 유로로 구할 수 있는 집이 별로 없을 지경이다. 

이탈리아의 시골에는 1유료 짜리  있다고 한다. 1유료면 겨우 1400원 정도인데, 그런 집이 널렸다나.... 그런데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시골을 싫어하는 건 우리나라만은 아닌가 보다. 거기도 여기도 빈 집이 이렇게 많은데.... 

 

저 빈 집에서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했다. 저 빈 집 앞에서 우리는 개구리를 잡았다. 저 빈 집에서 강아지 털봉이가 뛰어다녔다. 저 빈 집은 내 친구가 살던 집이었지만, 지금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발자국을 남기는 곳이 되었다. 

언젠간 우리 엄마의 집도 저렇게 빈집이 될까? 

그걸 생각하면 또 한번 코 끝이 시큰하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코로나가 너무 심해졌네요. 구독자님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합니다. 

 

이번 주 내내 참 많이 분주했습니다. 친정 엄마가 병원 진료를 위해 서울에 오셨거든요. 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왔지요. 시골에서만 지내던 엄마는 서울의 코로나 확진자 소식에 겁을 잔뜩 먹었어요. 외출도 안 하시고, 집에만 계셨지요. 저는 그런 엄마를 위해 하루 세끼 밥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지낼 때는 엄마가 해준 밥을 얻어먹고 설거지만 했어요. 엄마 집에선 요리를 하기가 싫더라고요. 언니 집에선 제가 주로 요리를 했어요. 엄마는 제가 생각보다 요리를 잘 한다며 놀라셨지요. 왜 그동안 요리를 안 하고 먹기만 했느냐 따지셨어요. 저는 그냥 솔직하게 하기 싫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다고요. 

엄마는 일주일 동안 푸욱 쉬시고 오늘 내려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참 분주했습니다. 원래는 매거진 원고를 미리 준비하는데, 오늘은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부랴부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루 미룰까? 생각도 했지만, 내일도 할 일이 좀 많거든요. 그랬다간 이번주에 발행 펑크를 낼 것 같아서 늦은 저녁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많이 쓰나요?"

사실 저는 제가 글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많이 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들에 비하면 전 아주 보통으로 쓰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글을 쓰는 게 참 좋아요. 우울했던 제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것이 글이거든요.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도 글 덕분이고요. 글을 써서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마음부자가 되었답니다. 

오늘 쓰려고 했던 남해 독일마을 이야기는 쓰지 못했어요. 지금 써야 하는데 너무 졸리거든요. 제가 또 잠을 참 좋아해요. 안 그래도 오타쟁이인데 졸린 상태에서 글을 쓰면 더 엉망인 글을 쓸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다음주엔 과연 어디서 글을 쓰게 될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은 신정동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구독자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어서 밀라노로 돌아가 찐 밀라노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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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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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asong

    0
    almost 3 years 전

    빈 집이 많이 생기는데도 가격은 계속 오르고... 글이 정말 쏙쏙 잘 들어오네요. 구성도 좋고요. 너무 잘 쓰심!!!

    ㄴ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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