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올어'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생소하실 수 있지만 언어 관련 전공을 하신 분들께는 모를 수가 없는 단어입니다.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통역 없이 모여 있는데,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처음에는 답답하겠지만 곧 기본적인 어휘를 띄엄띄엄 나열하면서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데요, 이 때 두 언어가 섞여 생긴 언어를 '피진'이라고 합니다. 피진은 그 특성 상 문법이 간단하고 어휘도 적습니다.
그런데 피진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2세들이 탄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2세들은 피진을 모어로 습득하고, 피진을 쓰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자라납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피진은 부모 세대에 비해 어휘도 풍성하고 문법도 정교해집니다. 이렇게 모어로 습득된 피진을 '크레올어'라고 부릅니다. 크레올어를 관찰하면 언어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언어학에서는 크레올어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주로 어떤 언어들로부터 크레올어가 탄생했을지 추리해 보실 수 있겠나요? 크레올어가 생기기 위해선 전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며 세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크레올어는 대부분 유럽 언어와 비유럽 언어 간에 형성됩니다. 한국 같은 나라는 아예 말이 안 통하는 문명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무역이나 식민 지배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크레올어 중 가장 사용 인구가 많은 아이티 크레올어도 프랑스어를 바탕으로 스페인어, 영어, 타이노어, 아칸어 등이 섞여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크레올'이라는 말 자체가 아메리카에 거주한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 간의 혼혈 계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일본어를 기반으로 대만 원주민의 언어와 혼합돼 형성된 크레올어가 있다고 해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대만 '이란 현'에 존재한다는 '이란 크레올어'입니다. 이 언어는 2007년에야 겨우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일본이 대만을 식민 지배 하던 시절, 총독부는 산에 사는 대만 원주민들을 보다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이주 정책을 펼칩니다. 이 때문에 산 속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아타얄 족'은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시디그 족'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아타얄 족과 시디그 족은 각각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일제 통치 하의 조선도 일본어를 배웠던 것처럼, 아타얄 족과 시디그 족도 일본어 교육을 받았습니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아타얄 족과 시디그 족은 더듬더듬 일본어까지 섞어 가며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어로 공부한 일본어인 만큼 그들의 일본어도 그렇게 유창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세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언어는 그렇게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고 대략 2,000에서 3,000 명 가량의 사람들이 여전히 이란 크레올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란 크레올어는 일본어처럼 주어, 목적어, 서술어 순으로 구성된 문장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 일본어처럼 '-스루'로 끝나는 동사들이 있습니다. 어휘의 경우 절반 이상이 일본어, 그 외에는 아타얄 어와 시디크 어, 적게는 중국어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나 일본어와도 아타얄어와도 크게 달라진 언어이기 때문에 일본어 원어민도, 아타얄어 원어민도 이란 크레올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아래 영상이 이란 크레올어의 샘플인데요, 중간 중간 일본어처럼 들리는 구간도 있고, 중국어 비슷한 억양도 들리고,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발음들도 들리는 오묘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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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닉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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