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이걸 왜 진작 못 했지?' 메일에서는 훨씬 일찍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음에도 발명이 늦어진 기술들에 대해서 알아 보았었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기술 자체는 생각보다 일찍 발명됐지만 쓰임을 갖기까지 오래 걸렸던 기술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가라 하면 흔히 제임스 와트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임스 와트의 업적은 증기기관의 발명이 아니라 토머스 뉴커먼이 만든 증기기관을 실용적으로 개량해 산업혁명을 이끌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나아가 토머스 뉴커먼조차도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최초의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보다 무려 1,700년 가량을 앞섭니다.
위 사진은 1세기 이집트의 수학자 헤론이 발명한 아에올리스의 공이란 물건입니다. 위의 공에 물을 채운 뒤 가열하면 증기가 발생하고, 이 증기가 좁은 관을 통해 빠져 나오면서 공이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단순하긴 해도 말 그대로 증기기관입니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힘을 이용해 신전의 문을 여는 등 신전에 신비로움을 더하는 장치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1세기, 하지만 제임스 와트의 등장과 산업혁명의 발발은 18세기입니다. 인류는 1,700년의 시간동안 무엇을 했던 걸까요?
앞서 언급한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열 효율이 0.5% 정도였다고 합니다. 석탄을 때서 1000의 에너지를 얻으면 그 중에 5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은 이 효율을 2.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것도 제가 느끼기엔 대단히 작아 보이지만 산업혁명을 이끌기엔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헤론의 증기기관이 어느 정도의 열 효율을 보이는지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만, 특별히 냉각이나 응축 등의 과정조차 없었던 헤론의 증기기관(그러니 최초의 증기기관이긴 해도 뉴커먼이나 와트의 증기기관의 직접적인 선조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은 더욱 처참한 효율을 보였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최초로 무언가를 해낸 사람에겐 참 억울한 일일 수 있겠지만 최초로 무언가를 만든 사람과 그것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은 다른 사람일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1등일 때도 자만하지 말고 1등을 빼앗겼을 때도 좌절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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