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과학 시간에 질문을 하나 했다가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주에 고정돼 있는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떻게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그냥 외워라 말씀하시지 않고 칭찬과 함께 친절하게 답변해 주신 선생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선생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말해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대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다.'
선생님의 설명처럼, 천동설을 바탕으로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면 위의 그림 같이 복잡해집니다. 반면 지동설을 바탕으로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면 훨씬 깔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디테일을 무시하고 도식화하면 동심원으로 나타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해집니다. 그래서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고, 지구 주위를 달이 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 주위를 달이 돈다'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조금 잘못된 그림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달의 움직임을 어떻게 상상하고 계신가요? 지구 주위를 돌면서, 더 크게는 태양도 도니까, 마치 전화 수화기 케이블처럼(이제 이 비유도 어린 세대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비유일 것 같아 두렵습니다) 배배 꼬인 궤도를 돌 거라 상상하시진 않으셨나요?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떠올려 보면 위 그림은 잘못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1년 간 달은 지구를 12~13회 정도 돕니다. 음력이 열두 달로 되어 있고 가끔 윤달이 생긴다는 것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비하면 지구와 달의 거리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달의 궤도를 그려 보면, 위 그림보다는 아래 그림에 가깝게 됩니다.
지구 주위를 돈다기 보다는 지구와 함께 태양을 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달의 궤도가 지구의 궤도와 바짝 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 주위를 도는데 어떻게 위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아래 그림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걸 보시고 그동안 달을 지구의 똘마니 정도로 생각했던 자신의 제국주의적인 모습에 실망이 드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실 모든 움직임은 상대적이고, 우리는 설명이 더 간편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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