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시작이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날짜나 시간을 다루는 것은 수천 년 전부터 해오던 행위이면서, 정답이 없고, 꾸준히 개선해 온 분야라는 점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시간을 다룰 때 가장 헷갈리게 만드는 '오전 12시', '오후 12시'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밤 12시를 자정이라 부르고 낮 12시를 정오라고 부릅니다.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십이지를 이용하여 시간을 다뤘습니다. 하루를 열둘로 쪼개어 현재의 밤 11시부터 1시까지 정도의 시간을 자시로 삼고 그 뒤로 축시, 인시, 묘시⋯로 차례로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각 시간의 한가운데는 정(正) 자를 붙여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밤 11시부터 1시까지의 시간인 자시의 한가운데를 자정, 현재의 낮 11시부터 1시까지의 시간인 오시의 한가운데를 정오라 합니다.
정오 전이면 오전이 되고, 정오 후이면 오후가 됩니다. 따라서 정오, 즉 낮 12시는 오전도 오후도 아닌 게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정도 오전도 오후도 아닙니다.
AM, PM의 어원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AM은 라틴어로 Ante Meridiem, PM은 라틴어로 Post Meridiem의 약어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각각 '정오 전', '정오 후'라는 의미입니다. 12시 정각은 오전도 오후도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개발자로서 한 마디 하자면, 사실 이런 예외 처리를 하는 게 귀찮습니다. 선배 개발자들도 각종 기기들을 만들 때 12시를 어느 한 쪽으로 포함시키는 쪽이 편했나 봅니다. 어느 12시를 어느 쪽으로 포함시키느냐에 대해서도 각자 의견이 분분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밤 12시를 오전 12시로, 낮 12시를 오후 12시로 표기하는 게 대세가 되었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낮 12시 0분과 낮 12시 1분 사이의 시간은 모두 오후(예를 들어 오후 12시 0분 1초)가 맞는데, 이것을 초를 생략하고 표기할 때 오전 12시 0분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오후 12시 0분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식을 올렸던 시간이 12시였는데, 청첩장 업체에서는 이것을 오후 12시로 적어서 시안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수정하려고 업체에 전화까지 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앞서 예외 처리가 귀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하려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전/오후 12시라는 표현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 모호한 표현이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저는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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