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 '아바타'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잘 만들어 놓은 상상의 세계를 보는 것이 재밌기 때문입니다. 이 상상의 세계 속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나비족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영화 속 나비족은 대충 그럴싸하게 들리도록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언어는 이 시리즈를 위해 구체적으로 단어, 문법, 음소 등을 설계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한국어 화자를 위한 나비어 강좌가 연재 중입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위해 인공어를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언어학자였던 톨킨은 자신의 작품 '반지의 제왕'에서 '퀘냐', '신다린' 등 요정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스타트렉' 시리즈에는 '클링온'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있는데, 스타트렉 팬들이 워낙 열렬하다 보니 팬끼리 결혼하여 그 아이에게 클링온어를 모국어로 가르친 사례도 있었습니다.
작품 내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목적으로 인공어가 만들어집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에스페란토일 텐데요, 영어 같은 힘 있는 언어를 국제적으로 사용할 게 아니라 국제 공용어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음료수 '미린다'는 에스페란토로 '굉장하다'라는 의미고, 번역 서비스 '파파고'는 에스페란토로 '앵무새'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오늘 알아볼 언어 '도기 보나'도 인공어입니다.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고작 14개의 음소와 120여 개의 단어로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음소가 14개 밖에 없다 보니 '도기 보나'로 읽어도 '토키 포나'로 읽어도 괜찮아서 뭐라고 쓰는 게 맞느냐도 의견이 갈릴 정도입니다. 도기 보나를 표기하는 방법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시더런 보나'라고 하는 전용 문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문자는 마치 한자처럼 한 글자가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래 그림에 나오는 시더런 보나가 전부입니다. 즉 수천 수만 자의 한자와는 다르게 아래 그림만 다 외우면 도기 보나를 표기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120여 개의 단어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단어들은 여러 단어들을 열심히 조합해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울다'는 한 단어지만 도기 보나에서는 직역했을 때 '눈의 물을 내뿜다'라는 뜻이 되는 '바나 에 도로 오고', 네 단어로 표현이 됩니다.
이 언어를 만든 Sonja Lang은 우울증을 앓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단순하게 하기 위해 도기 보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크리스마스 주간에 연구실이 닫히니 집에서 할 게 없어서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을 만들었다고 하는 Guido Van Rossum이 생각났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것도, 크리스마스에 할 일이 없는 것도 보통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닐 테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나 봅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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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
전에 읽은 에세이에서 세계공용어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음악을 언어 재료 삼아 언어를 개발한 어떤 이의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허밍이 들리면 그 언어에 익숙한 이는 ‘계란 한 개 사오라고?’라는 말귀를 바로 알아듣곤 음흠흠 하고 허밍으로 대답하는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음치인 누군가는 소통 개선을 위해 음정을 맞춰주는 휴대 기기를 들고 다니며 기계로 말할 수도 있겠지요. 에디터님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읽으셨나요? 톨킨 책 팬들의 현실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어떻게 아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페퍼노트 (1.58K)
'현실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례'라면 아마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스타 트렉>에 대해 물으시려 했던 것 같아요! 반지의 제왕은 과거 책으로 도전했다가 중도 하차한 바 있고, 스타 트렉은 수십 년 전 시즌의 TV 드라마를 OTT 서비스에서 찾아서 에피소드 몇 개 정도 본 적이 있습니다. 질문하신 '현실 생활에 영황을 미친 사례'를 알게 된 경로는, 과거 인공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위키피디아 등에서 접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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