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 항복 명상을 하다가 깨달은 점, 두 번째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텅 빈 해방감도 너무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이 두 번째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제가 명상에 적용하는 항복이란 '나를 내려놓는 일'로, 에고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작업을 뜻합니다.
여러분도 살다가 고통스러운 감정이 극에 달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이 백지상태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실 텐데요.
생각도, 감정도 아무것도 일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감각까지 멈춘 상태 말입니다.
그 상태가 찾아오면, 우리는 이전의 상황이 어떠했든 아무렇지 않게 그 다음 스텝을 밟게 됩니다.
감정이 휘몰아치다가 폭풍이 멎듯 고요해지면, '내가 왜 그랬을까?' 의아해하면서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요.
마음이 완전히 열려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러한 백지상태가 되기 위해 항복 명상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無로서 머무르던 중 갑자기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듯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찾아왔고,
동시에 저는 그게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순식간에 찾아온 따스한 앎, 맑고 밝은 빛은 곧 나였고
한동안 저는 그렇게 형태 없는 빛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머리로 알고자 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나'로, '에너지'로 늘 존재할 뿐이었으니까요.
사고가 없어진 자리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사랑이 나를 자유로워지게 함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랑의 가치를 좋아했지만
그건 진짜 아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렴풋하게 사랑을 느꼈을 뿐이었죠.
슬픈 사랑, 아픈 사랑, 분노하는 사랑, 질투하는 사랑, 에로스, 플라토닉, 필리아 ‥
이제 제게 사랑에 대한 무수한 분류, 방법, 신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내 안의 '존재'가 사랑을 일깨워 준 순간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모두는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도록 태어난 존재입니다.
원래가 사랑이기에 그렇습니다.
원래의 상태로 살아가는 게 자연이고, 자유입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사랑할 수 없을까 봐, 사랑으로 아플까 봐
두려워 마세요.
감정과 생각을 일으키는 게 나 자신인 것처럼
사랑에 대한 관념도 내가 일으키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자유를, 사랑을,
가장 좋은 상태를 허락하세요.
저도 한때는 어둠 속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가짜 사랑에 힘든 날들이 길었지요.
저는 그때의 저에게, 그리고 현재
스스로를 어둠 속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둠은 허상입니다.
괴로움도 허상입니다.
빛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채로
당신 속에 잠들어 있으며, 그게 진실입니다.
당신이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원래 당신은 빛입니다.
원래 자유로워야 하는 게 당신입니다.
나는 사랑의 빛이고, 당신도 사랑의 빛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랑의 빛입니다.
생각이 아닌 존재에 머물러보세요.
내가 당신의 신성을 보듯, 당신 스스로도 신성임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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