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36] 🥦 허무하고 쓸쓸한 연말에 함께하는 곡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 날씨가 확 추워졌습니다. 물들었던 낙엽도 많이 떨어져서 겨울이 코앞에 닥쳤음이 실감나는 요즘이에요. 바꾸어 말하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며칠 간 저는 코를 좀 훌쩍이고 있는데요. 모두들 따뜻한 시간들로 채우면서 몸도 마음도 되도록이면 감기와는 거리가 먼 올 겨울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달력이 한 해의 마지막 장에 다다랐습니다. 12월이면 어떤 감정,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이맘때쯤이면 대체로 허무함, 쓸쓸함 같은 감정이 느껴지네요. 연말 행사처럼 해가 바뀌면 맞게 될 '한국식 나이'를 떠올리면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편지에 소개할 건 아닌데 <The Beat Goes On>이란 곡이 있습니다. 곡 자체를 막 많이 들었다고 하긴 어려운데, 제목만큼은 퍽 인상 깊었는지 이따금씩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허무함, 쓸쓸함이 느껴지는 때라면 더욱 곱씹을 만한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마다의 박자대로, 무소의 뿔까지는 모르겠지만 묵묵히 걸어 나가다 보면 볕 뜰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따스해질 테죠. 저는 그런 마음으로 올 12월을 보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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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tone Roses - She Bangs The Drums

유독 추워지면 부고 소식이 더 잦아지는 것 같다. 최근 전 국민적인 애도가 있었다. 배우 이순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그 소식에 특히 많은 사람이 슬퍼한 것은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존경이 절로 들 만큼 늘 곧았던 고인의 삶과 일에 대한 자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또래는 많이들 그러할 것 같은데, 나는 그를 드라마 <허준>과 코미디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기억한다. 두 배역의 온도 차는 한겨울 설악산 정상에서 맞는 칼바람과 봄 무렵 한강 둔치 공원에서 맞는 나른한 실바람의 간격쯤 될까. 그 말고 누가 또 그런 온도 차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연기력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쪼록 이순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한편 저 멀리 떨어진 영국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있었다. PRIIISM에서 몇 번 소개했던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의 베이시스트 매니(Mani, 본명은 Gary Mounfield)가 세상을 떠났다. 재결합 투어 막바지를 소화하고 있었던 오아시스(Oasis)를 비롯해서, 스톤 로지스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뮤지션들이 애도 메시지를 보냈고, 음악 팬들도 그를 추모했다. <She Bangs The Drums>는 매니의 리듬감 넘치는 베이스가 돋보이는 곡이다. 스톤 로지스 하면 떠오르는 몽환적이면서 청량한 사운드의 바탕엔 매니의 베이스와 레니(Reni, 본명은 Alan Wren)의 드럼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매니의 명복을 빕니다.

🥦 Richard Ashcroft - Live With Hope

한 살 두 살 나이 들어가면서 변하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선호하지 않았다. 가령 잘 될 거라는 응원은 대부분 공허하게 느껴졌고 힘내라는 말은 오히려 힘을 빠지게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그런 말에서도 위안을 받는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의 근작 [Lovin' You]에 수록된 <Live With Hope>도 예전에 들었으면 금방 다음 곡으로 넘겼을 것이다. 제목부터 그러더니 노래 첫마디도 "Live with hope", 희망을 갖고 살란다. 투박하리 만치 직설적인 이 곡이 귀에, 마음에 와닿는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가 불렀으니까 이 곡에 힘이 실리는 것일 테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1971년생, 오십 대 중반이다. 젊다고 하긴 어렵지만 늙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적당히 닳고 닳았으되 그만큼 노련하고 아직 힘이 남아 있어 한창 활동할 시기라 하겠다. <Live With Hope>가 말하자면 인생 선배가 건네는 위로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내겐 브릿팝을 대표하는 송가 <Bittersweet Symphony>로 이름을 날렸던 버브(The Verve) 시절보다 지금 목소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조성진 - Liszt: Consolations, S. 172: No. 3 Lento placido in D Flat Major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이런 곡을? 이 곡은 내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공이 워낙 얕기 때문이겠지만, 리스트는 내게 그냥 기교도 아닌 '초절정' 기교 같은 수식으로나 익숙했다. 그럴 만한 것이, <La Campanella>의 리스트 편곡 버전(원곡은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가 바이올린 연주 곡으로 만든 것인데, 원곡부터 '초절정' 기교이긴 마찬가지였다)이나 '사랑의 꿈'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Liebestraum No. 3>으로 그를 접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청아하고 단정한 곡이라니,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이나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가 떠오를 정도였다.

청아하다고 느낀 데엔 분명 연주자의 공도 컸을 것이다. 조성진은 어떤 곡을 만나도 청아하고 고상하게 연주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힘이 있다. 우락부락, 불끈 같은 힘이 아니라 단단한 힘이랄까. 그리하여 조성진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 곡(클래식은 늘 곡 이름 외우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곡은 '콘솔레이션 3번 D 플랫 메이저' 정도로 기억하면 될 것 같다. 더 쉽게는 '콘솔레이션 3번')을 요즘 자주 듣고 있다. 모름지기 클래식은 연말, 겨울에 듣기 더 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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