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무늬로 만드는 방법

2024.04.04 | 조회 897 |
0
|
첨부 이미지

 

# 신유진 작가

굴곡 없는 삶이 있을까 싶어요. 모두 그렇듯이 저 역시 상처를 주고받고 만들며 살아왔는데요. 저에게는 상처를 받는다는 표현보다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일도 상처로 만든 게 아닌가 할 때가 많거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상처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상처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무뎌지는 것과는 조금 다르죠. 기억을 쓰면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쓰는 행위를 통해 기억을 다시 살아볼 수 있고, 다시 살아보고 나면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렇게 상처를 무늬로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저는 표백된 하얀 세상이 아니라 무늬 가득한 세상을 만들며 살고 싶어요.

확실한 것은 번역도 글쓰기도 고강도의 노동이라는 것이죠. 엉덩이 힘으로 쓰고 옮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새벽에 글을 써요.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바로 쓰기 시작하죠. 망설이는 시간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해요. 생각이 많아지고 망설임이 길어지면 직관을 잃어요. 저에게 직관은 중요한 요소거든요. 일단 쓰고, 반복해서 읽고 고쳐요. 퇴고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이죠.

원문

 

#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 이규리

새벽 서너시까지 울어대는 매미

삼베 이불이 헐렁해지도록 긁어대는 소리

어쩌라고 우리 어쩌라고

 

과유불급,

 

나도 그렇게 집착한 적 있다

노래라고 보낸 게 울음이라 되돌아왔을 때

비참의 소리는 밤이 없었을 것이다

 

불협도 화음이라지만

의미를 거두면 그저 소음인 것을

 

이기적인 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우리 안에는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가 제각기 운다

어느 것이 네 것인지 종내 알 수도 없게 엉켜서

 

허공은 또 그렇게 무수히 덥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remem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이제 책을 펼칠 시간이다

# '쓰고 읽기, 읽고 쓰기.' 그건 타자의 상처에 자신의 경험을 접촉하며 서로를 포옹하고 부축하는 일이다. 한강 문학 핵심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국가대표

2024.10.14·조회 783·댓글 2

예술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

# 테드 창, 2024 사람과디지털포럼 기조 강연 기술과 지능을 구분해, 기술은 작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로, 지능은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습득하는가로 규정할 수 있다

2024.07.15·조회 1.04K

시의 숲 입구에서

# 시인 박준 시의 숲 입구에서 ‘이쪽입니다’ 하고 이끄는,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고목과 새로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고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나무가 될 수 있다면

2024.09.23·조회 711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 살아 있다는 건 기억들을 연료 삼아서 내가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그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드라마 '눈물의 여왕' 사람이 인생의 방향을 찾는 일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

2024.06.24·조회 84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나는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실의 고전문학 서가에 앉

2024.07.25·조회 1.27K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천쉐 『오직 쓰기 위하여』 타이완 소설가 천쉐는 98년 어머니의 병, 생계 문제 등으로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리

2024.09.26·조회 690
© 2026 remem

영감을 주는 메시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문장들.

뉴스레터 문의remem@remem.s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