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스콧 벨스키 어도비 CPO는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창의적 능력, 그리고 이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든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배와 비행기를 만든다.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매우 집중하는 것이다.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 발명을 하고, 성을 짓고, 창조하는 사람이 어린이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창작이고, 창작은 어린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만들기를 하면서 발명가나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고, 그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갖고 많은 만들기를 계속한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해서 학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려 예술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이라는 만들기를 잘해 비즈니스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항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기업가도 예술가도 똑같다. 살다보면 모두가 두렵고 좌절을 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이 두려움인 메시미들messy middle(복잡한 중간단계)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만드는데 적합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다만, 누군가는 꿈을 잃지 않고 극복하고, 누군가는 꿈을 잃어 포기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무엇인가를 만들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앞으로의 시대는 생산성의 시대가 아니라 창의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인공지능이 생산을 하고 사람들은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
# 인공지능과 유토피아
2021 서울국제작가축제 SF작가 켄 리우와 곽재식의 대담
켄 리우 : 우리 뇌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들어있다는 점, 디지털 기억의 시대에 우리의 대화나 상호작용이 영원히 저장된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유전공학이든, 우주여행이든, 인공지능이든 인류의 사이보그화든 이 모든 것들도 똑같은 영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동시에 더욱 인간적으로, 그리고 덜 인간적으로 만든다. ‘무엇이 인간적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 속에서도 인간됨에 관한 생각과 감각과 그 가치를 유지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비인간적인 면면을 줄여가는가?’ 그것이 내가 요즘 고민하는 것이다.
켄 리우 :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점이 아니라 우리를 일에 있어서 더욱 기계처럼 만든다는 점을 우려한다. 현대적 기업들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저 기계로 변화시켜야 한다. 살아있는 기계의 부품 같은 것으로 말이다. 우리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째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가치가 있는가?’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인간을 기계처럼 대우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인가?
켄 리우 :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SF와 미래 현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미래를 예견하시려는 건가요?”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기술과 그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미래를 예견하는 건 몹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당도하는 현실은 우연의 결과이다. 많은 우연적인 변수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우연성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현재를 단순히 연장하는 것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내가 쓰는 소설이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은 현재 현실에 대한 일종의 필터처럼 작용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기존에는 쉽게 보지 못했던 현실의 그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 소설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켄 리우 : (최근 억만장자들의 우주여행 사업에 대해) 우리가 우주에 가려는 이유는 사실 그것이 쉬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주 상공 50마일에 사람을 실어 보내면서 죽지 않게 하는 문제는 트위터 사람들이 집중하려는 문제들보다 수백 배 쉽다. 가난과 혐오를 없애고 정의를 구현하는 문제들 말이다. 우주비행 같은 문제에 집중하는 까닭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지구상의 문제들은 훨씬 더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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