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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루이스 하이드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예술이라면, 마음을 움직이거나 영혼을 되살리거나 감각을 즐겁게 하거나 살아갈 용기를 주는 등 경험을 어떻게 묘사하든, 마치 선물을 받을 때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예술가의 창작이라는 대행을 통해 우리의 존재라는 천부적 자산을 알아보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선사받는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운이 좋다고 느끼고 심지어 구원받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선물 받은/재능 있는 예술가는 작품 안에 자신의 선물/재능의 생명력을 담아냄으로써 다른 사람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작품은 예술가의 생명력을 전달하고 영혼을 되살린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대가의 작품에 의해 자신의 선물/재능이 깨어나면서 자신의 소명에 이끌린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예술가는 예술 그 자체에 의해 바뀐다. 장차 예술가가 될 사람은 예술작품에 감동받는 자신을 깨닫고, 또 그런 체험을 통해 예술에 봉사하는 노동으로 나아가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선물/재능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같은 사람은 예술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와 비슷한 영혼 속에서 예술에 주목한다.
감사를 '노동'labor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work과 구분하려는 뜻에서다. (…) 노동을 마치고 나면,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 내가 말하는 노동은 사회보다는 삶의 과정에 의해 요구되는 무엇을 지칭한다. 다급하게 요구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고유한 내적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일보다는 더 느낌과 결부되어 있고 내적인 것이다. (…)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선물은 영혼의 일부를 일깨운다. 그러나 선물을 우리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만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물처럼 되는 노동에 헌신해야만 한다.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자신의 글과 인터뷰를 모은 책 『진정한 일』에서 그런 태도에 이르는 것과 그 결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분명히 그만뒀다. 그러고 났더니 더 나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늘 내가 쓴 시를 내 인생에서 필수적인 무엇이 아니라 선물로 여겼다. (…) 당신은 좋은 시를 얻고도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싶다. 그러니 당신이 느끼는 것이라고는 이게 전부이다. 겸손과 감사."
라이너 마리아 릴케 또한 삶의 방식으로서 예술의 특성을 묘사한 초기 글에서 비슷한 용어를 사용한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자기통제나 자기제한이 아닌, 자신을 마음 편히 놓아주는 것. 조심이 아닌 현명한 맹목. 소리 없이 천천히 점점 더 많은 소유물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닌, 소멸하기 쉬운 모든 가치를 끊임없이 탕진하는 것."
작가 안의 선물이 한번 실현되고 나면 그것은 계속 전달되며 청중이나 관객과 소통한다. 그리고 가끔씩 이 체화된 선물(작품)은 선물을 받아들이는 청중 안에서 ‘선물 받은 상태’를 재생할 수 있다. 즉 ‘불신의 일시정지’를 통해 우리는 상상의 작품에 수용적인 상태가 되는데, 이는 사실상 믿음이자 순간의 신앙이다. 그 덕분에 예술가가 지닌 선물/재능의 정령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들어와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 순간 우리도 우리 존재의 숨은 일관성을 깨닫고 우리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예술가는 살아 있는 것을 흡수한다. 하지만 그것의 생명은 그것에게 이름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보장되지 않는다.
집 뒤쪽 공터에서 놀던 어린 파블로 네루다는 울타리 판자에 난 구멍을 발견했다. “구멍을 들여다보니 우리 집 뒤로 펼쳐진 풍경이 보였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야생 그대로였다. 나는 몇 걸음 물러났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별안간 손 하나가 나타났다. 내 또래쯤 되는 소년의 작은 손이었다. 다시 가까이 가서 보니 손은 온데간데없고, 아주 멋진 장난감 양이 놓여 있었다. 양의 하얀 털은 색이 바래 있었다. 바퀴도 달아나고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나는 그토록 멋진 양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 구멍을 들여다봤지만 소년은 사라진 뒤였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내 보물을 가지고 왔다. 비늘이 벌어진, 솔향과 송진이 가득한 솔방울로 내가 몹시 아끼던 것이었다. 나는 솔방울을 같은 자리에 내려놓고 양을 가져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우리의 삶을 먹여 살리는 불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애정,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의 잠과 고독, 우리의 위험과 나약함을 지켜보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애정을 느끼는 것은 훨씬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경계선을 더 넓히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기 때문이다. 그때 그 교환을 통해 나는 모든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함께한다는 소중한 생각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그렇다면, 내가 인류 형제애의 대가로 송진 같고 흙과 같은, 향기로운 무언가를 주려고 애써온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어린 시절, 외딴 집 뒤뜰에서 배운 커다란 교훈이다. 아마도 그때 그 일은 서로를 모르면서도 상대에게 자기 삶에서 좋은 무언가를 건네고 싶었던 두 소년의 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고 신비로운 선물의 교환은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영원히 변치 않으며 나의 시에 빛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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