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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극장을 갈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을 피해 스크린 속으로 도피했다면, 2024년 한국에서 몇몇 영화들은 단순명료하기에 (정확히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복잡하기에) 거꾸로 우리에게 차분히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제공한다. 때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대상으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 뉴스로 뉴스를 덮는 현실의 사건사고는 너무 많고, 빠르고, 자극적이고, 단편적이라 도리어 사유의 기회를 앗아간다. 영화를 본다는 건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게 아니다. 도리어 밀착된 자극으로부터 거리를 벌려 잃어버린 리얼리티를 회복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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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누군가 총을 쏘고 다른 누군가가 그 총에 맞아 피를 흘린다면, 그 장면은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온다. 가히 총을 쏘는 속도로 빠르게 다가온다.
문학은 그런 장르가 아니다. ‘한 사람이 총을 쏜다’라고 쓰여 있다면, 독자는 총의 외관을 상기하면서 총을 쏘는 이의 자세, 방아쇠를 당기는 손의 두께 같은 것을 상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 과정은 즉각적일 수 없다. 한마디로 지연이 생긴다. 대신 하나의 문장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읽는 이는 총구 앞에 선 자의 두려움과 긴장을 다 떠안고서야 다음 문장으로 건너갈 수 있다. 그러한 느림의 미학,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감각과 감정들, 태어나는 낯선 세계들, 그런 것들이 미술과 문학의 명맥을 이어온 힘일 테다.
예술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자동화된 몸짓을 중단하고, 흐르는 일상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찬란한 아름다움이든, 섬뜩한 공포든 대면하게 하면서 우리를 잡아 세운다. 번뜩이는 일격이자 반짝이는 갱신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본질은 어쩌면 찰나의 밀려남이자 잠깐의 늦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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