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 고객을 만나야죠
파이프라인 회의가 끝나고 한 동료 영업이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고객 만나고 다니느라 시스템 업데이트할 시간도 없는데,
고객 몇 번 만나지도 않는 사람은 내부 리포트 잘하고 시스템 정리 잘했다고 회의에서 칭찬받는 게 맞아?”
그쵸. 영업이면 고객을 만나야지요. 하루 종일 고객과 파트너를 만나고 돌아와 Forecast와 시스템까지 완벽하게 업데이트하라고 하면 억울하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반대로 내부 정리와 시스템 관리에 유난히 꼼꼼한 영업도 있습니다. 엑셀이면 엑셀, CRM 업데이트면 업데이트, 참 잘 해놓고 설명도 착착 잘합니다.
아, 매니저들이 보면 참 예쁘죠.
그런데 이상한 걸 느낀 적이 많습니다.
한 사람은 고객을 계속 만나는데도 잘 안 풀리고, 다른 사람은 시스템에 완벽하게 잘 써 있는데, 그게 또 영업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둘 다 일을 안 한 게 아니고, 오히려 꽤 열심히 한 건데 말이죠.
잘하는 일 뒤에 숨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스타트업도 영업력에 더해 전략을 잘 짜는 사람을 많이 찾습니다. GTM 전략을 다듬고, 시장 분석과 메시지를 정교하게 만듭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저도 그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뼈대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 전략을 들고 고객 앞에 앉는 건 또 결국 현장의 사람입니다.
같은 자료, 같은 메시지, 같은 제품을 들고 나가도 결과는 꽤 다르게 나옵니다.
차이는 대부분 거기서 벌어지죠.
영업들에게 물어보면 사람 만나고 배우는 일이 좋아서 이 일을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쵸. 사람을 만나는 데 강한 영업이 있습니다.
전화도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가까워집니다. 고객과 밥을 먹고, 관계를 만들고,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데도 익숙합니다.
분명 강점입니다.
문제는 그 관계 자체가 목적이 될 때죠. 우린 끊임없이 배워야 하지만, 여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배우러 다니는 학교는 아니니까요.
몇 달째 같은 담당자와 잘 지내는데 예산 책임자는 못 만났고, 구매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미팅은 계속 있는데 Forecasting 스테이지는 제자리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커피나 술 한잔을 더하는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예산은 지금 잡혀 있나요 아니면 잡아야 하나요?”
“이걸 이번 분기에 안 해도 별 문제가 없어요?”
『챌린저 세일』 연구에서도 관계 구축형은 고성과자 중 7%로 가장 적었습니다. 이 연구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영업 행동과 역량의 패턴을 본 것입니다.
관계를 잘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죠.
관계는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좋은 게 좋은’ 안전지대가 아니라, 필요한 질문까지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신뢰여야 합니다.
자, 이번에는 반대 상황을 볼까요?
- 지난 주 : "CRM 업데이트. “PoC 검토 중.”
- 이번 주 : “내부 조율 이슈로 PoC 일정 지연.”
- 다음 주 : “PoC 관련 내부 승인 및 예산 확인 필요.”
계속 파악하고 정리하고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잘 보면 안 되는 이유는 갈수록 묘하게 잘 설명하는데, 안 되는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내부업무를 꼼꼼히 잘하는 영업이 해야 할 다음 일은 상황 파악이 아니라 상황 해결일 수 있습니다.
“PoC 관련해서 일정조율이 어려우면 저희가 스케줄이랑 리소스 계획 같이 만들고 파트너랑 올까요?”
관계형은 관계를 해칠까 봐 필요한 행동을 조심하고 미루고, 보고형은 틀릴까 봐 충분히 알 때까지 행동을 미룰 수 있습니다.
관계형은 관계 뒤에 숨고, 보고형은 분석 뒤에 숨는 거죠.
아쉽게도 필요한 일은 취향대로 골라오지 않죠
지난 글에서는 “그래서 나는 뭘 하려고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목표를 보고, 지금 무엇이 막고 있는지 찾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거꾸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였죠.
흘러가는 대로 두고 따라가는 게 아니고요.
그런데 필요한 행동을 알아냈다고 자동으로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영업에는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계속 옵니다.
화난 고객의 컴플레인을 받아야 할 때도 있고, 경쟁사와 정면으로 비교당할 때도 있습니다. 친한 고객에게 안 된다고 말해야 할 수도 있고, 가격을 지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부 제품팀과 불편한 조율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고객과의 저녁 술 자리 하나가 다음 물꼬를 트는 데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행동을 좋아하느냐가 아닙니다.
고객이 싫어할까 봐 걱정만 하고 있어도 안 되죠.
지금 고객과 함께 이루려는 목표를 위해 정말 필요한 행동인가.
그게 먼저입니다.
흔히 목표를 이루라고 하면 매출 숫자만 떠올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목표는 고객과 이 일을 실제로 풀어가는 목표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순서는 이렇게 되는 게 맞습니다.
내가 뭘 잘하고 편해하지? → 그 일을 주로 한다.
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려는가 → 무엇이 막고 있는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그 일을 내 강점으로 어떻게 잘할 것인가.
관계에 강한 사람은 관계를 결정으로 옮겨가는 시도를 더 해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다 해주듯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실제 진행시키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하고 우선순위를 구분하고 다음 약속을 받아내는 거죠.
정리와 보고에 강한 사람은 분석을 행동으로 가져가는 역량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정보에서도 가설을 세우고, 직접 확인하고, 필요하면 개입하는 힘입니다.
강점은 어떤 문제를 피할 이유가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더 잘 풀기 위한 자원인 거죠.
그런데 조직도 착시를 만듭니다
여기서 개인만 탓하면 반쪽짜리 이야기입니다.
리더에게는 내부 보고와 시스템이 실제로 필요합니다. 중간관리자면 더더욱 그렇고요.
Forecast를 해야 하고, 엔지니어 리소스도 고민해야 하고, 가격을 승인하고, 위에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니 정리를 잘하는 직원이 실제로 참 고맙고 기특하죠.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성과는 늦게 보이고 불확실하지만, 내부 보고는 오늘 바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객 상황을 바꾸는 행동을 하는 영업보다 고객 상황을 잘 설명하는 사람이 더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리더가 현장을 몰라서라기보다, 관리하려면 가시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객 만났냐고 계속 물으면 캘린더는 빽빽해지고, 회의 때 시스템과 자료 업데이트를 칭찬하면 시스템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인정받습니다.
사람은 회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반복해서 묻고 칭찬하는 것을 더 빨리 배웁니다.
그런데 그게 분기말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자주 봤습니다.
내부업무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없앨 수도 없습니다.
다만 고객 상황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문장을 계속 쌓는 것과, 실제로 상황을 한걸음 움직이는 건 구분해야 합니다.
보고에는 이것만 있으면 될 수도 있습니다.
- 지금 뭐가 막혀 있지?
- 그래서 우리가 뭘 해봤지?
- 그럼 이제 해보려고 하는 건 뭐지?
그러고 보니 제가 봐온 많은 회사들은 채용할 때는 고객을 잘 알고 관계 구축에 능한 사람을 뽑고, 뽑은 후엔 내부에선 보고를 잘하길 바라고, 현장에서는 필요하면 관계의 불편함까지 감수하며 일을 해내서 매출을 해오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꽤 어려운 주문이죠.
그러니 사람을 뽑아 놓고 “왜 이것까지 못해?”라고 하기보다, 어떤 부분을 같이 개발해야 하는지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니저도 답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니저가 옆에서 “고객한테 가서 물어봐”, “왜 아직 안 했어”라고 등을 떠미는 게 답은 아닐 겁니다.
매니저도 모든 상황의 답을 알지는 못하죠.
사실 직접 만나도 파악하기 힘든데 한 단계 건너 의사결정을 하려면 더 어렵습니다.
어디까지 버텨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이번에는 가격으로 밀어붙일지 말지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코칭은 정답을 주는 것보다 다음 한 부분을 같이 정하는 일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번 딜에서 우리가 계속 피하고 있는 질문이 뭘까?”
“다음 미팅에서 하나만 확인한다면 뭘 물어봐야 하지? ‘예산 있나요?’ 같은 추상적인 거 말고, 지금 이 PoC가 왜 안 움직이는지 알아내려면?”
고객을 만나서 문제를 듣고 풀어가라는 교과서 같은 말보다, 왜 고객을 만나는 게 어려운지부터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접대가 힘들고 불편한 건지, 우리가 해줄 게 없어서 어려운 건지, 필요한 사람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건지, 영업이 그냥 불편한 말을 어려워하는 건지.
그 스테이지에서 막힌 이유를 같이 봐야 합니다.
큰 결심을 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업 개인도 자기가 못하는 걸 한 번에 다 고치려 하면 금방 지칩니다. 매니저에게 그렇게 직접 해보라고 해도 지치겠죠.
필요한 건 자기가 반복해서 피하는 행동을 하나씩 줄여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성장은 강점을 버리는 게 아니라, 강점만으로는 못 건너는 구간을 하나씩 건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AI가 들어오면 이 차이는 더 중요해집니다
계속 나오는 얘기지만, AI는 회의록을 만들고, 이메일을 요약하고, 자료를 만들고, 시스템 입력까지 점점 도와줍니다.
그러면 조직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기도 쉬워집니다.
각각은 필요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입력 효율을 높였다고 입력의 가치까지 높아진 건 아닙니다.
정보의 연결과 분석이 빨라진 만큼 고객과 시장에서 배우고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 때문에 생긴 시간이 더 많은 보고와 상황설명으로만 오고 갈 수 있습니다.
예전 글에서 살펴본 Gartner 조사에서도 AI는 영업의 시간을 줄여주고 있었지만, 많은 조직은 그 시간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충분히 다시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스템이 깔끔해졌을 때 남는 질문은 결국 하나입니다. 누가 상황을 바꾸는 행동을 했는가.
방식은 달라도 여기까지는 같이 봐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가 사실 그 최소선입니다.
지금 뭐가 막혀 있고, 그래서 우리가 뭘 해봤는지. 그래도 안 움직였다면 이제 뭘 다르게 해볼 건지.
미팅을 열 번 했는데 세 번째 답이 매번 "다음에 또 만나기"라면, 관계 뒤에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봐야 합니다.
상황 설명은 갈수록 정교해지는데 두 번째 답이 몇 주째 비어 있다면, 분석 뒤에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봐야 합니다.
이건 모든 영업을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기준이 아닙니다.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관계형은 관계를 결정으로 가져가면 되고, 보고형은 분석을 행동으로 가져가면 됩니다.
리더는 그 둘을 같은 스타일로 만들 게 아니라, 이번에 어디까지 한 발 더 가볼지 같이 정하면 됩니다.
방식은 달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한 발짝씩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최소선은 있어야 합니다.
처음 그 회의 후로 돌아가면
“고객 몇 번 만나지도 않는 사람이 칭찬받는 게 맞아?”
“억울하긴 하지. 근데 그렇다고 비워둘 수도 없잖아. 이왕 적는 거,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보이게 써먹어야지 뭐.”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저한테 하는 얘기였겠죠.
아, 나도 고객도 만나고 내부공유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지금 뭘 먼저 해야 하지?
나는 뭘 하기 싫고 뭐가 편하지?
불편해도 이번에는 해야 할 게 뭐지?
사실 그렇게 불편해 할 일이 아닌데 괜히 혼자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업은 원래 뜻대로만 되지 않죠.
고객 사정도 있고, 제품도 있고, 경쟁사도 있고, 운도 있습니다.
모든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지금 이 고객과 무엇을 이루려는지 다시 보고, 뭐가 막혀 있는지 찾고, 필요한 다음 행동을 정하고, 하기 싫더라도 하나씩 해보는 게 중요하죠.
안 되면 또 보고, 다시 하나를 시도해가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물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요즘 일을 많이 하고 있는가.
아니면 목표를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가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잘 안 풀리는 순간에도, 압박 속에서도 다른 일 뒤에 숨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행동을 찾아 하나씩 해보고 있는가.
댓글 질문
여러분은 영업에서 자기가 잘하고 편해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반대로, 필요한 줄 알면서도 자꾸 미루거나 피하게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다음 글 예고
이렇게 결국 일을 해나가는 건 사람이지만, AI에 의존하는 부분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회의록을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를 쓰고, 다음 액션까지 제안합니다. 그렇게 AI가 만든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고와 승인, 의사결정을 점점 더 많이 오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점점 시스템 사이에서 정보를 받아 넘기는 API처럼 되고 있는 건 아닐까.
AI가 소통까지 도와주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직접 이야기하고, 무엇을 맡기고, 어떻게 내외부의 사람들과 맥락을 맞춰가야 할까요?
사람이 API가 되는 것 같은 시대의 소통. 다음 화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 Gartner, Gartner Survey Finds AI Saves Sellers Nearly 5 Hours Per Week, Yet 72% of Sales Organizations Fail to Reinvest Time in High-Value Activities, 2026년 5월 19일.
- 매슈 딕슨·브렌트 애덤슨, 『챌린저 세일』, 2011. CEB의 90개 기업, 6,000명 이상의 영업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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