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서도호의 집 이야기

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 개인전에서 마주한 집의 기억들

2026.09.18 | 조회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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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에 닫힌 문을 열고 어두운 공간의 불을 켜는 순간, 마침내 집입니다.

퇴근 후 손을 씻기 위해 가장 먼저 누르는 화장실 스위치, 좋아하는 과일을 씻기 위해 물을 트는 주방 수전, 시원한 가을날 환기를 시키려고 잡아 열던 창문의 손잡이까지 - 지나치게 당연해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한 적 없던 사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터치했던 매일의 순간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가져요. 서도호는 이렇게 손길이 닿을 때마다 기억이 레이어처럼 쌓이는 집안 곳곳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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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얗고 반투명한 집을 만납니다. 작가가 살아온 여러 집의 요소들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둔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우선 아름다워요.

오간자처럼 반투명하게 비치는 새하얀 천 부스에 형형색색의 스위치와 문고리, 콘센트, 환기구 등이 박음질되어 있습니다. 런던, 뉴욕, 한국 등 작가가 살았던 공간의 요소들이 실제 사이즈 그대로 옮겨졌는데, 고운 색 천으로 만들어진 일상의 사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손끝이 닿던 일상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죠.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난방기를 조심스레 돌리며 난방배관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 런던 기숙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과 다른 모양의 수전과 콘센트까지 모든 게 신기했던 순간. 고장 난 전구를 갈기 위해 용기 내어 두꺼비집을 열고 전기를 내려본 경험. 개운하게 샤워한 후 꼭 켜놓고 나오는 화장실 환풍기까지. 그걸 누르고 만지던 순간이 담긴 하루와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이토록 작은 천으로 만든 스위치 앞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감정이 물밀듯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살았던 공간의 일부만 떼어 하나의 공간에 두었을 뿐인데, 개인의 역사가 영화처럼 재생되었죠. 작가는 진작에 알았던 것 같아요. 매일 우리가 만지고 곁에 두고 보내는 집의 모든 부분에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작은 사물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현관문과 열쇠 구멍에는 손이 닿았던 매일이 실타래처럼 묻어 있습니다.
현관문과 열쇠 구멍에는 손이 닿았던 매일이 실타래처럼 묻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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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실제 크기의 집을 가져왔네?”

<Rubbing/Loving: 서울집>(2013-2022)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살던 성북동 한옥을 탁본하여 말 그대로 그 집의 표면을 전시장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오래된 한옥의 낡은 나무의 결, 처마 문양과 간판까지.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따라 돌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던 집을 이렇게 쓰다듬은 적이 있던가.”

쓰다듬고 문지르는 행위는 고생했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표현입니다. 최근 정들었던 신혼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살던 집을 더 쓰다듬어주고 올 걸 그랬다는 마음이 드네요. 무수히 많은 우리의 하루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줬던 공간인데, <Rubbing/Loving>처럼 충분한 표현과 기억의 노력을 들이진 못했던 것 같아요.

추울 땐 온기로, 더울 땐 선선함으로, 가장 온전한 나로 쉴 수 있게 보호해주었던 집. 새로운 시작의 순간, 기쁨과 환희의 순간, 그리고 고요한 슬픔의 시간까지 받아주었던 우리 집. 나의 많은 하루들을 곁에서 함께해준 집을 쓰다듬는 건, 그 모든 시간에 대한 위로이자 기억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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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여운 드로잉을 보세요. 발이 달린 집도, 나와 연결된 집도, 그동안 살았던 집들의 문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도. 저에겐 같은 메시지로 다가왔어요. 집이 이동하고, 내가 곧 집이 되고 집이 곧 내가 되는 모습처럼 느껴졌거든요.

집은 곧 내가 어딘가에서 살아온 시간이기도 해요. 사는 곳을 옮긴다는 건 물리적 분절이 아닌, 경험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서도호의 서울 생활과 런던, 그리고 뉴욕에서의 시간들이 연결되어 지금의 서도호가 있듯이, 사는 곳을 옮긴다고 해도 이전 삶의 경험과 기억은 내 안에 있지요.

그래서 서도호의 집은 한곳에 머물러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기억을 싣고 함께 이동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을 떠난다고 해서 그곳에서의 시간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집에 들어선다고 해서 이전의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이사를 한다는 건 집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그 집에서의 나를 데리고 다음의 나로 이동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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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의 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문득 지금의 집을 조금 더 자주 어루만지고 싶어졌어요. 매일 아무렇지 않게 열고 닫는 문과, 무심코 누르는 스위치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까지. 언젠가 이 집을 떠나는 날에는 이것들도 모두 소중한 나의 일부가 될 테니까요. ✨

 

전시 정보

서도호

2026. 08. 27. – 2027. 02. 0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 3·4·5전시실, 2층 MMCA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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