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Sara 입니다.
지난 한 주도 잘 보내셨나요? 시원해지는 듯 하더니 뜨거운 가을 햇볕으로 다시 여름이 돌아온듯한 한주였던 것 같아요.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9월이라니, 제가 어릴적 느꼈던 9월 날씨와 지금의 9월 날씨는 꽤나 다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그 사이 경복궁 야간관람을 다녀왔는데요, 늘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야간관람이 오픈하는 시점에 맞춰 경복궁을 방문했습니다. 날이 조금 덥긴했지만, 그래도 밤에는 걸을만한 날씨여서 즐겁게 경복궁 야간관람을 즐기고 왔는데요, 사진을 몇장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아름답지요? 실제로 봤을 땐 더욱 아름다웠고 낮에 가본 경복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복궁 야간 관람은 10월에도 계속될 예정이고 10월의 야간관람 티켓은 9월말(9/25 오전 10시!)에 오픈하니 구독자 여러분들 중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예매하셔서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10월이면 날도 더 선선해지고 단풍도 조금씩 들어있을 것 같아서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
제가 야간관람을 갔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풀어놓는 이유는 바로 오늘의 주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경복궁 야간관람을 갔던 저의 짝꿍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고종 황제는 위스키를 드시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글쎄?"하고 대답을 했는데, 뭔가 고종황제 시절 즈음이면 위스키가 들어왔을 법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조선시대에는 위스키라는 것이 있긴 했을까하는 의문까지 이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조선시대의 위스키부터 한국 전쟁 직후까지 우리나라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위스키는 과연 언제 들어온 것일까요? 기록이 있는 역사적 내용에 따르면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물품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1880년대에는 위스키도 하나의 공식 수입 물품으로 지정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외국 물품들도 모두 한국식(한자식) 표현을 만들어서 들여왔다고 하는데요, 1883년 일본과 체결한 해관세칙에 따르면,
- 위스키 → 유사길 (惟斯吉)
- 브랜디 → 박란덕
- 샴페인 → 상백륜
- 리큐르 → 리구이
위 처럼 아주 요상한 발음으로 각종 외국 주류를 표현해서 불렀다고 합니다. 기존 발음을 한자로 유사하게 만들었다곤 하는데, 모르고 들으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연관성 같기도 합니다.ㅎㅎ
"금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써서 조선 시대의 실상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 유대인 오페르트에 의하면, 오페르트가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조선 관원들에게 위스키 한병을 뇌물 명목으로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관원들이 뇌물로 받은 위스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이 책이 쓰여진 것이 1886년이었으니, 그 전부터 조선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위스키를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증명된 셈이지요.
뿐만 아니라 영국의 여류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여행기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서는 당시 젊은 양반들이 유사길, 그러니까 소위 "양주"를 즐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에 젊은 양반들이 갓을 쓰고 소반에 기생이 따라주는 양주를 마시는 사진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유사길"의 매력에 빠지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게 조선에 들어온 "유사길"은 이 후, 일제 강점기의 모던보이들의 술로 이어지게 됩니다. 1930년대에는 일본식 카페가 상당히 유행했는데, 그 때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마시거나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백마표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으로 발전되게 되었지요. 여담으로 백마표 위스키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로 실제로 위스키 이름이 White horse whisky였습니다. 이 위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에 납품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고 이 것이 일본으로 흘러들어와 경성의 카페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 입니다.
이 후, 조선은 해방을 맞게 되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수입 주류를 금지하게 됩니다. 이 조치로 인해 일본으로부터의 위스키 수입이 어려워지자 가짜 위스키가 성행하게 됩니다. 사실 이 가짜 위스키는 일제 강점기 때에도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는데요, 그 이유는 위스키 가격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도 있고, 또 일본 수입품이 아닌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국산 양주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있었기 때문에 한국식 양주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본격적으로 일으키면서 영국으로부터 위스키 수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사실상 진짜 위스키보다 가짜 위스키가 훨씬 더 많이 생산되고 팔리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다시 해방 이후로 돌아와서, 위스키 수입이 어려우니 대체재가 필요했고 사람들은 무려 메탄올(메틸 알코올!!)을 이용한 가짜 위스키가 만들게 됩니다. 메탄올은 상당히 위험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이 가짜 위스키를 먹고 눈이 멀거나, 반신불수가 되거나 심하면 죽음까지 이르는 사고가 상당히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OMG..)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들의 군수품들이 거래되는 소위 "양키시장"에서 위스키가 종종 거래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이 때까지만해도 정식으로 위스키 수입을 허가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약간의 암거래처럼 위스키가 거래 된 것이지요. 그래서 미군들도 가져온 위스키가 부족할 때는 가짜 위스키를 마시곤 했는데 1956년에는 어떤 미군이 이 가짜 위스키를 마시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양키시장에서 팔리는 위스키로도 도저히 부족하자 이제는 일본에서 일본산 위스키를 밀수(!!)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인기있었던 밀수 위스키가 바로 "토리스 위스키" 입니다.
이 "토리스 위스키"는 제가 예전에 일본 위스키를 말씀드린 레터에서 언급한 바 있는 "도리이 신지로"라는 분의 이름을 딴 위스키 입니다. 일본 위스키의 시작이 다케츠루 마사타카와 토리이(도리이) 신지로가 함께 야마자키 증류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라고 아래 레터에서 말씀드렸었는데요, "토리스 위스키"는 "토리스 신지로"가 만든 위스키라는 뜻의 위스키입니다. (Tory's Whisky → Torys whsiky!)
이 토리스 위스키가 밀수품 중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이 위스키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본 부산의 국제 양조장을 운영하던 김타관 사장은 일본에서 위스키 향료를 수입하여, 색소와 주정 등을 혼합하여 토리스 위스키의 모조품인 "도리스 위스키"를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이 도리스 위스키는 만들어지자마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접근성이 좋았던 도리스 위스키는 그 당시 위스키 매니아들에게 너무나 좋은 선택지였지요.
그러다가 1960년 1월 부산의 언론사 국제신보는 이 도리스 위스키가 일본의 토리스 위스키에 대한 불법 상표 도용이라는 기사를 내게 되고, 국제 양조장은 적법한 상표임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도용 및 감히 "왜색" 상표를 도용했다는 괘씸죄(상표 위조 등)로 김타관 사장이 구속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꺾일 만만한 사업가가 아니었던 김타관 대표는 구속에서 풀려나자 이 도리스 위스키를 "도라지 위스키"로 이름을 바꿔 재출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도라지 원액도, 위스키 원액도 한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역설적인 위스키, "도라지 위스키"가 자리 잡게 되지요. 이 당시 여러 다방에서는 차(茶)에다가 도라지 위스키를 몇방을 떨어뜨린 "위티"를 상당히 비싼값에 팔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수입된 진짜 원액을 첨가한 위스키가 만들어지면서 이 도라지 위스키는 서서히 외면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전까지는 도라지 위스키의 인기는 상당했고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가짜 위스키(?) 브랜드가 만들어 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의 도입부에 도라지 위스키가 언급이 됩니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이 노래 속의 도라지 위스키가 앞서 말씀드렸던 우리나라 가짜 위스키의 열풍을 주도했던 바로 그 도라지 위스키 입니다. 무심코 들었던 노래 가사였는데, 역사를 알고 들으니 더 재밌습니다.ㅎㅎ
여기까지가 전쟁 직후, 196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위스키 역사 인데요, 상당히 재밌지요? 제 짝꿍의 질문이었던 "고종 황제는 위스키를 드시지 않았을까"에 대한 답변은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종황제의 위스키 시음에 대한 기록은 없기에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종황제께서는 커피를 상당히 즐기셨다는 기록이 있어 향을 즐기시는 것을 알 수 있고, 막걸리나 연엽주같은 술도 즐기셨다고 하시니 위스키 또한 해외 공사들과의 만남에서 한번쯤 드셔보시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위스키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담아보았는데요, 여러분들께서 흥미롭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다음주는 어느덧 추석입니다! 저는 이번 추석에 해외로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휴재를 해볼까 합니다. 인생에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인만큼 푹 쉬고 함께 가는 짝꿍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면서 가족들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다음주에 또 더 재미있는 위스키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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