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로운 컵을 샀다. 이전에 쓰던 컵보다 용량이 두세배는 될듯한 커다란 머그컵. 은은한 베이지 색에 불규칙한 작은 점들이 박혀 있는, 귀엽게 영어 대문자로 'COFFEE'라고 써 있다. 새로운 컵에 차를 마실 생각에 설렜다. 아주 별 거 아닌 변화인데 그게 뭐라고 설레서 커다란 손잡이를 몇 번이나 잡아 들었다가 내려 놓았다가 했다. 주전자에 원래보다 많은 양의 물을 끓였다. 펄펄 끓는 물로 끓인 양 많은 커피는 금방 식어 버리지 않고 오랜 시간 홀짝일 수 있다. 왠지 커피 마시는 아침이 더 여유있고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낮은 테이블에서 좌식 생활을 하다가 높은 테이블과 의자로 바꾸기도 했다. 다리가 한결 편안하고 부담이 적어 자주 왔다 갔다 하기에 훨씬 수월해졌다. 왜 이제야 높은 테이블을 들였나 싶을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다.
물건 하나 새로 들인 것이 익숙한 루틴에 신선한 변화와 새로운 감각을 가져다 주었다. 원래 쓰던 컵이 작아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큰 컵이 생기고 나니 한결 편해진 것만 같다. 좌식 테이블에 장시간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프고 불편했지만 그 불편을 인지하고서 '새로운 테이블을 사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발전시키기 까지가 꽤나 오래 걸렸다.
평소 그런 눈치가 없는 편이다. 그저 순응하고 사는 것에 익숙하달까. 현재의 처한 환경에 불편을 그다지 못 느끼고 무디다.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변화하는 것에 두려움과 피로감을 느낀다. 주어진 것을 우선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춰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 새롭게 무언가를 변화시키려 움직이는 것보다 편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여기 이 물건이 있으면 훨씬 편하겠구나’하는 생각을 늘 똑같이 살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하게 될 때면 조금은 덜 무뎠으면 싶기도 하다.
불편을 하나하나 민감하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바로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딘 쪽으로 적응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누려도 되는 편안함을 내일로 유예 시키며 지내오기도 했다. '당장 엄청 불편한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도 잘 살았는데 그거 없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들로 그냥 쭉 지내는 식이다. 진짜 괜찮은 부분들도 있고 괜찮다고 스스로 최면 거는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후자의 경우에는 결국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괜찮은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기도. 미련하다.
현재의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작은 것도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은 많은 것에 더 유연하게 살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더 누리고 더 붙잡을 수 있는 것들은 없는지 살피고, 만약 있다면 그것을 능동적으로 잡는 것도 괜찮은 삶의 태도다. 욕심을 부리는게 아니라 좀 더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더 위해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유난 떤다고 핀잔주는 사람보다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라면 그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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