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노마드’라는 유행어를 넘어,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멀리서 돈 쓰러 온 소비자가 아니라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요?
2. 기술은 정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기술이 만든 문제를 일부 기술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버블 바깥의 실존적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요?
떠돌이 테크 부족은 로컬의 문제를 함께 풀 수 있을까요?
새해에는 이를 실험하는 팝업 시리즈를 한국과 일본에서 이어가 보려 합니다.
떠돌이 테크 부족을 초대해 줄 로컬 커뮤니티 찾아요!
월간 네트워크 동네 12월 업데이트
1. 일본 시모다
2. 중국 구이린
3. UAE 아부다비
4. 일본 고베
5. 사이사이 서울
1. 일본 시모다
에서는 일본의 짬바를 느꼈습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오랜 시간 고민해 본 내공이 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자는 사회적 합의도 이미 이뤄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지역 공동체의 토양이 비옥합니다. '로컬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신토(神道)와 마쯔리(祭り, 축제)가 형형히 살아있는 덕분인지, 정부 지원 없이도 로컬이 살아 숨 쉽니다.
시모다라는 쬐깐한 항구 마을에서 열린 '미래 회의(未来 会議, Mirai Kaigi)'에 주지사 이하 정부 관계자들, 후쿠오카 등 다른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 공유 경제 협회와 디지털 노마드 협회 등 협회 사람들, 일본에서 사업하는 외국인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미야자키나 시모노세키 등 다른 지역에서 코워킹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들도 많이 왔습니다. [1] 이들은 서로의 프로그램에 품앗이하며 함께 어깨 걸고 생태계를 키워나가고(cross-polination) 있었습니다. 노마드들은 종종 다음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거 끝나고 우리 동네로 같이 갈래?' 하고 호객 초대하면 엄청 좋아합니다.
시모다에서는 제가 방문객이 아니라 이웃이 된 것 같았습니다. 짱이죠!

한국도 '로컬 크리에이터', '워케이션', '디지털 노마드' 가 지자체 키워드입니다. 다만 아직은 지역과 국가의 문제 해결이라기보다 예산 불용 피하기 지방 소비 진작을 위한 '국민지원금'이나 '우리 원격 근무도 가끔 하는 선진 기업이야'를 보여주기 위한 기업 복지 프로그램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험 초기 시행착오는 자연스럽지만, 생존의 문제라기보다는 예산 집행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고령화 속도는 우리가 세계 최고인데 절박함은 없습니다.
시모다에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지난호 <일본 워케이션 와서 러닝 안 하고 세계 지도 그리기> 를 참고해 주세요!
2. 중국 구이린
디지털 노마드는 요즘 가장 핫한 마케팅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이 단어로 묶으면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와이파이 잡아서 일하다 보니 굳이 회사 근처에 살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인데, 사실 이건 비슷한 사람들 (like-minded) 이라거나 부족의 정체성은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제 주변 노마드들은 대부분 저와 같은 테크 부족이었고, 오랜 떠돌이 생활에 지쳐서인지 비교적 그 지역에 녹아들기 위해 비교적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도 그 점을 본받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 세계 출신의 금발의 푸른 눈들이 (물가, 규제, 날씨, 친절 등) 차익거래만을 위해 제2-3 세계에 찾아와 ATM 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은 새삼 충격이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마케팅 용어로 남아있는 한, 이 사람들이 절대다수겠구나, 사업적으로는 그쪽이 더 말이 되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평생 소비자 노릇만 하며 살면 지겹지 않을까요? 처음 떠돌기 시작한 몇 년은 재밌겠지만 말입니다.
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리는 장소만 다르고 주제는 비슷비슷하다면 두세 번이면 충분합니다. '이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왜 하필 그곳에 모여야 하는지? 전 세계 수백 개 국가와 수만 개 도시 중에 왜 여기여야만 하는지? 에 답하는 팝업 시리즈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모여야 할까요?
'같이 배우기'는 참 좋은 답인 것 같습니다. 그다음 답은 아직 실험 중입니다.
3. UAE 아부다비
12월 2, 3일은 1971년 태어난 아랍에미리트 연방의 건국 기념일입니다. 중국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국경일에 열병식을 한다면, UAE는 외국의 자본과 인재를 초대하기 위해 수도인 아부다비에서 '슈퍼 위크'를 엽니다.
컨퍼런스는 팝업 도시의 원조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부족들이 한 곳에 모입니다. 그 한 주 동안 그 동네는 해당 부족의 집성촌이 됩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도, 식당 건너편 테이블 사람도 '우리 부족의 전통 의상'을 입고 '우리 부족의 언어와 바디랭귀지'를 씁니다. 여러 부족이 동시에 모이는 슈퍼 위크에서는 부족별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저는 아부다비 파이낸스 위크(ADFW)와 브레이크포인트(BP)에 다녀왔습니다. 아부다비는 Capital of Capital, 자본의 수도라고 불립니다. 이곳의 금융 컨퍼런스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 연기금, 패밀리오피스 등 지상 최대 쩐주들을 알현하기 위해 각국의 금융 업계 종사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BP는 솔라나 부족의 연례 집회입니다. UAE는 2020년에 AI 담당 정부 부처를 만들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입니다. [2] 게다가 솔라나 생태계 최대 디지털 자산 운용사가 UAE에 있습니다. 테크&금융 부족의 회합 장소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전통 금융과 신흥 금융의 대비는 겉모습부터 확연합니다. ADFW의 전통 금융 부족은 땅에 질질 끌리도록 무거워 보이는 시계를 차고 한 눈에도 톡톡하니 고급스러운 옷감의 정장을 입었습니다. 깔맞춤에 진심이었습니다. 사막의 날씨에는 더워 보였지만, 전통은 전통이니까요.
ADFW는 갤러리아라는 럭셔리 몰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장의 절반은 VIP 전용 공간이었습니다. 수행원을 줄줄이 대동한 사람들(여기에는 한화그룹의 3세들도 포함입니다)은 그곳으로 모여들었고, 슬쩍 묻어가보려 했지만 일반 티켓을 가진 사람들은 입밴이었습니다. 저도 네트워킹이란 걸 해보기 위해 성큼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웨이터인 줄 알길래 관뒀습니다.
반면 BP의 테크 부족은 사회적 신호(social signal)를 옷감이나 옷태로 보내지 않습니다. 검정 반팔이 전통 의상입니다. 검정 모자까지 갖춰 쓰면 최고의 예를 다한 셈입니다. 온라인 자본 시장의 큰손들은 오프라인에서는 숨어 다닙니다. 그래서인지 테크 부족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워낙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는 곳이라 정장의 ㅈ은커녕 전문성의 ㅈ도 없어 뵈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도 즐거워합니다.
BP는 야스 섬의 에티하드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페라리 월드와 F1 경기장, 고급 호텔, 씨월드, 워너 브라더스 월드가 모인 럭셔리 엔터테인먼트 공간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부족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4. 일본 고베
에서는 새삼 일본이 가진 자원이 참 많다고 느꼈습니다. 고베는 일본 부자들의 별장촌입니다. 뒤로는 마야산과 롯코산을, 앞으로는 오사카 만을 품고 있습니다. 일본 최초의 골프장도 고베에 있습니다. 롯코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에는 고베 시내와 바다, 바다 건너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롯코 산 중턱에는 롯코노마드라는 코리빙&코워킹 산장이 있습니다. '산속 유휴 공간 사용율 높이기' 위한 지자체 지원금을 받아 고베의 부동산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베 시내에 하나, 경치 좋은 산장에 하나, 이렇게 두 군데 지점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롯코산 안에는 편의점도 마트도 없기 때문에, 차가 없는 노마드들에게 접근성 좋은 곳은 아닙니다. 실제로 주 고객은 고베 시에 사는 프리랜서들로, '주 1회 월간 멤버십'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곳도 한국처럼 '내국인 노마드' 를 주요 대상으로 한 걸까요? 아무튼 노마드는 좋은 브랜딩인 모양입니다.

시모다와 고베 워케이션에서 부러웠던 점은 1) 촌동네에서 코리빙 및 코워킹 사업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2)이는 지자체 보조금이 적절하게 쓰이는 덕분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3) 일본 내 다른 지역과 경쟁하기보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골 코워킹 사장님의 주 업무는 우리 동네 활성화입니다. 지역과 젊은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집니다. 그리고 코워킹은 대표적인 노마드 허브입니다. (우리나라는 카페가 워낙 잘 되어있어 코워킹 사업은 힘들 수 있겠습니다) 지역 특색과 코워킹을 갖춘 시골 마을이 많다는 것은, 누구든 일단 일본에 가면 갈 곳은 많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워케이션과 중국의 노마드 리트릿에 참여한 이유는 한중일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은 팝업 시리즈를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워낙 땅떵어리도 크고 사람도 많아, 그 자체로 하나의 권역처럼 완결성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열린 공조가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사회 이슈 역시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지만 중국은 결이 다릅니다. 권역으로 묶는다면 한국과 일본만 들어가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팝업이라는 형태가 먼저 오고 그 것이 가질 수 있는 의미(혹은 해결 가능한 문제)를 찾는다는 점인데요. 이상적으로는 제가 해결하고픈 문제가 먼저 있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 방법 중 하나로 팝업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는 많으니까! 끼워맞는 문제 하나쯤 있겠죠?
5. 사이사이 서울
에서는 한국의 노마드 관련 프로젝트들이 협업 (coordination) 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매년 가을, 후쿠오카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일본 최대 노마드 축제가 열립니다. 일본 각지, 세계 각국에서 노마드들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듭니다. 노마드가 되고 싶은 현지 사람들도 옵니다.
후쿠오카 축제가 끝나면, 일본의 다른 지역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엽니다. 노마드 입장에서는 워케이션만 따라다녀도 알찬 일본 소도시 여행이 되고, 어느새 90일 무비자 기간이 꽉 찹니다. 일본의 노마드 관련 프로젝트들이 서로 상생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워케이션 프로그램 기간조차 서로 겹칩니다. 발주자인 지자체끼리 소통이 없는 게 가장 문제지만,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모이는 자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전국 단위의 노마드 축제로 한국에 올 핑계를 만들어주고, 이후 다른 동네에서 줄줄이 로컬 프로그램을 주최하면 어떨까요? 여기에 일본과 대만의 축제까지 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한국인과 비한국인을 반반무만이로 섞어 사업하는 분들이 한 데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 보려다, 결국 조촐한 저녁 식사로 대신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시행착오는 창대하리라!
사업도 사람도 모름지기 자기가 하고 싶은 실험을 스스로 돈 대며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년에는 '한국에 중장기 거주하는 비한국인 대상으로 돈 벌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해요, 멸치 떼 헤엄!!
각주
[1] 시모다 워케이션을 예약하던 당시, '프로그램이 매진이라 5분 거리의 다른 숙소에서 지내야 하는데 괜찮냐? 부엌은 없지만, 본부의 부엌을 써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유독 부엌 얘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지자체 보조금 지급 기준 중에 '부엌이 있는 코리빙'이 있다고 합니다. 코리빙 아닌데 코리빙이라고 우겨서 지원금 타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일지도요. 혹은 커뮤니티란, 그리고 식구(食口)란 모름지기 같이 밥 해 먹으며 생겨난다는 깊은 뜻이 있는 걸까 싶어 혼자 감명을 받았습니다.
[2] 석유 이전에 중동에는 진주가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까지 UAE 지역은 전 세계 진주 공급의 80%를 담당했습니다. 로또 맞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진주로 번 돈은 대부분 시원하게 돈지랄에 썼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일본이 진주조개 양식에 성공하면서 걸프 지역은 급격히 빈곤과 식량 부족으로 생존 위기까지 처합니다.
그리고 석유라는 두 번째 로또를 맞았고, 이 번에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쏟아붓습니다. UAE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히얀은 “석유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길 수 없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건 사람과 제도뿐이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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