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주간모기영 102호

[은프로의 책과 영화]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과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2021), [모기수다 시즌2] <피아니스트>(2001), [5회 모기영] 후원에 감사합니다!

2023.09.02 | 조회 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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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은프로의 책과 영화]

요리책과 시, 또는 음식과 혁명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과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2021)

 

깔끔하고 기품 넘치게 써요, 미스 액턴. 당신의 시처럼 깔끔하고 기품 넘치는 요리책을 가져와요.

애너벨 앱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 22쪽.

1830년대 영국, 이미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한 시인 일라이저 액턴은 30대 중반의 싱글 여성입니다. 두 번째 시집을 위해 10년 동안 정성껏 써 모은 시 원고를 들고 일라이저는 유명 출판사 ‘롱맨’을 찾아갔는데요, 롱맨의 사장은 시는 숙녀의 영역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차라리 요리책을 써오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숙녀의 영역이 아닌 것은 시 뿐만이 아니었어요. 숙녀에게는 ‘요리’도 허용되지 않았죠. 안주인으로서 주방을 관리할 수는 있었지만 양갓집 숙녀가 요리사를 두지 않고 직접 조리를 한다는 것은 수치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라이저가 처음부터 사장의 제안대로 요리책을 써보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아버지가 해외로 도망가 있는 동안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라이저와 어머니는 작은 마을로 옮겨 하숙집을 운영하기로 합니다. 요리사를 둘 형편은 아니어서 하숙생을 받아 식사를 직접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일라이저는 당대 이름난 요리책들이 너무 체계가 없고 비실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아름답지도 않고요.

레시피도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용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다. 지시를 쏟아내는 품위 없는 목록일 필요가 없다. ‘질 좋은 건강한 하얀 간을 준비해서...... 향긋한 식초와 양파 한 조각으로 밤새 재우고 위에 풍미 있는 허브 가지들을 올려서..... 투명한 불꽃에서 굽는다.......’ .... 어쩌면 나는 암담한 무너진 인생을 살아내야 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레시피 작성은 시 쓰기와 똑같이 나를 지탱하고 풍요롭게 한다. 어쩌면 나는 ‘노처녀’ 이상이 될 수 있다.

(99-100쪽)
애너벨 앱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 공경희 옮김, 소소의책, 2023, [이미지출처: 예스24]
애너벨 앱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 공경희 옮김, 소소의책, 2023, [이미지출처: 예스24]

다행히도 일라이저는 혼자가 아니어서, 주방 보조로 앤 커비가 일라이저를 돕게 됩니다. 하녀로서는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총명한 소녀였어요. 한쪽 다리를 잃은 술꾼 아버지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파리에서 일하는 오빠를 두고 있었죠. 애너벨 앱스의 소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은 앤과 미스 일라이저의 계급을 뛰어넘는 우정과 서로존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편견과 관습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의 발견에 관한 예찬입니다. 소설은 19세기 여성들인 앤과 일라이저의 지난했던 삶에 대해 구구절절 서술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서서히 폭로되는 그들의 비밀과 과거사는 시의 언어를 매개로 둘 사이에 점차 단단한 유대를 만들어냅니다.

일라이저가 앤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치던 날 앤의 서술이 인상적이었어요. 앤은 다리 통증으로 아버지가 매일 밤 비명을 지르던 이야기, 엄마가 어느 주말 여섯 자녀 중 넷을 차례로 잃은 것, 곰팡이가 핀 빵을 먹던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내 말의 힘으로 주인아씨를 울게 만들었다. 그녀의 말, 자작시가 나를 울게 만든 것과 똑같으니, 내 말이 그녀에게 똑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고달픈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마음이 하늘을 날다니 이상하다.

(253쪽)

시적인 언어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고통을 말하는 언어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 같은 ‘이상함’ 말이지요. 그날 이후 일라이저는 그들의 요리책에 빵 만드는 법을 포함시키기로 합니다. 프랑스풍 고급 디저트나 귀족들의 만찬을 위한 요리 뿐만 아니라 빵과 차, 그리고 유대식 아몬드푸딩 같은 소수자들을 위한 요리까지, 일자이저의 요리책에는 가장 평범하고 건강한 식탁을 위한 친절과 배려가, 기품있는 언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일라이저 액턴은 1835년에서 1845년 사이 켄트 주 톤브리지에 살면서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요리책을 쓴 것으로 잘 알려진 실존인물입니다. 그녀의 조수였던 앤 커비와 함께 쓴 이 책은 30년간 12만 5천 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빵이 유일한 먹거리라면, 맛있고 건강에 좋아야 해. 형편없는 빵을 먹는 관습을 끝내야 된다고. 반드시 끝내야 해!

(353쪽)

모든 사람이 빵 굽는 법을 알아야 해!

(354쪽)

일라이저처럼, 요리사가 되겠다고 나선 상류층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어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은 주방하녀는 할 수 있을망정 여자가 요리사가 되는 것은 꿈꿀 수도 없었던 18세기 말에 요리사 견습생이 된 귀족 부인과 공작의 요리사 망스롱의 이야기입니다.

망스롱은 천한 백성이나 먹는 땅속 식물 감자로 새로운 요리를 선보였다가 공작의 성에서 쫓겨납니다. 그는 성을 나와 아버지의 주막으로 돌아갔는데요, 굶주린 마을사람들에게 빵을 나누고 서민들에게 품격 있는 한 끼 식사를 제공하되 귀족과 같은 공간 같은 식탁에서 먹도록 초대합니다. 귀족들의 전유물이자 자랑이었던 ‘요리’와 요리사를 서민들과 공유한 이 사건을 영화는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사건과 나란히 다루었어요. 음식과 혁명, 레스토랑의 역사와 혁명의 역사를 관습을 뛰어넘는 로맨스와 더불어 흥미롭게 조화시킨 수작입니다.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에릭 베스나르, 2021)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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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수다 시즌2 ]

🎬 9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9월의 모기수다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2001)입니다.

📍 시간 : 2023년 9월 9일(토) 오후 3시 (3~5시-영화감상, 5~6시-감상 나눔)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문토' 어플리케이션-> '모기수다' / 사무국 010-2567-4764

모기수다 모임 참여는 '문토'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앱스토어 / 구글스토어에서 '문토(MUNTO)' 어플 설치
▶︎ '모기수다' 검색
▶︎ '9월 모기수다' 클릭 후 '참여하기'
▶︎ 참가비 결재 (1만원)

▲ 이미지 클릭 - 9월의 모기수다 문토 참여
▲ 이미지 클릭 - 9월의 모기수다 문토 참여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간 모기영. “열심히 다니고 보고 듣고 배우겠습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간 모기영. “열심히 다니고 보고 듣고 배우겠습니다.”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시의 언어와 예술이 가장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필요를 담은 조리법과 만나 품격 있는 요리책을 만들었듯이, 고통을 숙성시켜 품어낸 어휘가 때로 최고의 자유를 선물하듯이, 얼핏 보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와의 '다름'이 조화나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분노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일상이어서, 더욱 간절해지는 바람이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일주일을 보내셨나요. 어느새 선선해진 밤공기처럼, 돌아오는 한주는 한결 가뿐하고 산뜻하시기를 빌어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9월 2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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