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아의 요즘 한국영화
무의식을 점령한 이기적인 목소리
<잠>(유재선, 2023)
*현재 절찬중인 영화 <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 훌륭한 연기력과 센스있는 예능감으로 호감형이었던 이선균과 정유미 배우를 보고 선택했던 영화 <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컬트 영화였습니다. 첫 대사부터 심장이 조여오는 걸 느끼는 순간 어디선가 지나쳤던 영화 포스터에서 공포물의 인상이 어렴풋이 기억났지요. 영화 <잠>은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도식을 충실히 따르며 깔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출중한 연극 배우 출신 현수(이선균)은 TV 배우로 경력 전환을 꾀하고 있고, 그의 아내 수진(정유미)는 곧 출산을 앞둔 회사원으로 둘은 사이좋은 신혼부부입니다. 어느 날부터 현수는 잠에 든 상태에서 이해 불가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그 수위가 심각한 정도에 이르자 이들 부부는 수면 클리닉을 찾아가지요. 하지만 성실한 노력에도 별 차도를 보이지 않자, 수진은 의사의 처방과 약의 효험에 의구심이 커집니다. 그러던 중 수진의 친정 엄마가 불러온 무당이 하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수진은 점차 현수의 몽유병 증상이 빙의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집의 가훈
영화는 마지막에 현수가 아랫집 할아버지로 빙의 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고 끝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요. 먼저는 현수가 아내 수진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아랫집 할아버지를 연기했다는 결론입니다. 죽은 반려견에 대한 죄책감과 갓 나은 아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수진이 걷잡을 수 없는 과격한 행동까지 저지르자, 현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가신 아래층 할아버지를 연기했던 것이죠. 현수의 직업이 배우라는 설정도 이 해석에 힘을 싣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현수의 몽유병에 대한 의사의 완치판정은 무당의 퇴마 의식으로 원귀를 잠시 통제했던 것뿐이고, 아기와 가정을 지키겠다는 수진의 절실함과 굳건한 의지가 결국에는 현수의 몸에서 할아버지 귀신을 떠나게 했다는 해석입니다. 둘 중에 어떤 해석으로 접근하든 <잠>은 영화에서 몇 번이나 등장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면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가훈처럼 가족 수호를 내세우고 있지요.
우리 사회가 창조하는 신화
이처럼 공포영화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상상력에 대한 자극과 쾌와 불쾌가 섞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한 공동체가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드러내고 이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장르로도 읽힌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영화 <잠>속에 상정된 부분들은 꽤 의미심장하게 읽히기도 합니다.
<잠>은 공포감을 작동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잉태한 젊은 부부를 위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무의식중에 해괴한 짓을 하는 자기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았던 현수처럼, 우리 사회는 가정을 위협하는 원인을 개인의 문제 이를테면, 신체 호르몬, 스트레스 조절력, 혹은 생활방식 등으로 치부하며 개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회복 가능하다는 신화를 지속해서 창조하지요. 물론 그렇게 해결이 가능하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그 문제는 의지가 부족한 개인의 실패로 탓하게 됩니다. 또는 현수가 나아질 때까지 견디지 못하는 가족(수진)의 참을성 부족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영화는 현수의 몽유병을 견디지 못하는 수진에게나, 수진의 과대망상을 견디지 못한 현수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한다는 응원을 건넵니다. 이 부부가 헤어지기를 바랐던 아래층 할아버지의 딸을 통해서 말이죠.
이 응원은 개인의 문제로 가정 공동체가 위태로워질 때 성립할 수 있지만, <잠>은 영화의 처음부터 이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가 개인이 아닌 외부자임을 암시합니다. “누가 들어왔어”라는 대사를 통해서요. 그리고 그 외부자는 생전에 이들 부부 아랫집에 살면서 층간소음으로 마찰을 빚어 온 할아버지였죠. 우리사회에서 빈번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공동주택 이웃 관계이자,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뤄왔던 기성세대로 대표되지요. 그리고 무당의 목소리를 통해 이 외부자의 욕망은 정확히 드러납니다.
무의식을 점령한 이기적 목소리
개 혹은 아기로 대변되는 말 못 하는 약자의 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나 이외에는 돌봄의 존재가 없기를 바라는 기성세대의 욕망이 투영된 대사지요. 이 지독한 이기심을 멈추게 하는 방법으로 감독은 대위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수진이 취하는 방식입니다. 당신이 젊었을 때 끔찍하게 아꼈던 자식, 손주의 존재도 위협당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집착을 버리라고 협박하고 허구의 세상 속에서 이 전략은 성공합니다.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이러한 비유와 충격으로 현실 속 우리들의 잘못된 방향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예술은 얼마든지 충격적이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 충격과 공포가 영화관 밖의 현실에서도 이어질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5회 영화제 후원모금]
강*영, 강*중, 강*철, 김*현, 김*관, 김*정, 김*호, 김*교, 김*선, 김*진, 더불어숲평화교회, 로고스서원, 류*, 박*혜, 박*영, 박*원, 박*애, 박*선, 배*필, 배*우, 박*홍, 북인더갭, 신*주, 신*식&변*정, 아카데미숨과쉼,윤*훈, 윤*원, 이*기, 이*욱, 전*영, 정*호, 정*하, 정*석, 지*실, 최 *, 허*호 님 (총 37명)
- 5회 영화제 후원모금 -
*5회 모기영을 위한 후원모금은 9월 30일까지 진행합니다.
추후 진행될 텀블벅 펀딩을 기대해주세요! :)
5회 모기영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시기,
메이커들은 모처럼 함께 모여 모기영의 핵심가치에 대해 나누고
진솔한 나눔을 통해 팀웍을 다지는 워크숍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
다양하지만 또 일치된 마음으로 펼쳐갈 제 5회 모기영
많이 기대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
글 : 박일아
편집디자인 : 강원중
2023.8.12.토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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