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프로의 이책저책]
『오베라는 남자』(2012)와 <오토라는 남자>(2023)
아내를 잃고 직장에서 밀려난 쉰아홉의 스웨덴 남자 ‘오베’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미루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샤프란을 밥에 넣어 먹는 이상한 가족이 옆집에 이사 오기 전까지는요. 그들이 온 후 생긴 일들도 오베 자신에게 다급한 일은 아니었어요. 대개는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들이 기막힌 타이밍에 발생했을 뿐입니다. 천장에 목을 매달았는데 마침 옆집 남자가 차로 우편함을 들이받거나 사다리를 빌리러 왔다가 곧 그 사다리에서 떨어진다든지, 장총을 이마에 대고 막 쏘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려 게이 청년을 재워주어야 한다든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 심산으로 플랫폼에 섰는데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철로에 떨어져 구조해야할 상황이 된다든지, 하는 식이었어요.
죽는 데 매일 실패하는 오베는 아내 소냐의 무덤을 찾아가 투덜거립니다. “당신 없으니까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그리고 덧붙이기를, “오늘은 꼭 당신 만나러 갈게. 보고 싶어.”
오베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어려운 남자였어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서 가장 멋있었던 것은 흑백이었던 오베의 삶에 소냐가 색깔로 들어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냐는 곧 오베에게 삶의 기준이 되었죠. 오베가 그렇게 까칠하게 살았던 것도 아기를 잃고 장애를 입게 된 소냐에게 “하얀 셔츠 입은 사람들”과 세상이 보인 불친절과 부당함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소냐가 사라진 후 다시 규칙만 남은 세계에서 오베가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오베에게 다시 색깔이 찾아듭니다. 이번에는 향기(예컨대 노란 색 샤프란의 향)까지 함께 머금은 이방인 파르바네 가족이었어요.
『오베라는 남자』는 2015년 처음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리메이크 버전인데요, 개발업자들의 사냥터가 된 미국의 공동주거지구로 배경을 옮겼습니다. 일찍이 최고수준에 오른 관료제와 복지시스템의 비인간성을 비트는 북유럽 특유의 위트와 쫀쫀한 서사, 그리고 ‘내면화된 종교성’이라고 할 수 있을 어떤 통찰....이 헐거워진 아쉬움은 남습니다만(그렇습니다, 저는 오토보다는 오베가 좋습니다.^^;), <오토라는 남자>는 여전히 따뜻하고 뭉클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공은 <피노키오>(2022)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2019) 등 최근 친숙하고 착한 이웃으로 자주 찾아오는 톰 행크스 영감님께 돌려야겠지요.
<오토라는 남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평생 소냐를 위해서만 싸워왔던 오토가 자신의 삶에 들어온 또 다른 색깔,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뇨)을 위해 싸우게 된 부분입니다. 원작에서 ‘파르바네’에 해당하는 인물로, 여기서는 멕시코계 이민자입니다.
마리솔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던 오토는 마리솔에게 폭언을 쏟아붓는 운전자의 멱살을 잡고 마구 혼내줍니다. 그리고 잔뜩 겁을 먹고 위축되어 있는 마리솔에게 돌아와 따박따박 말합니다.
“이봐, 당신은 애도 둘이나 낳았고, 이제 곧 셋째가 나올 거고, 엄청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먼 데까지 와서 낯선 말을 배웠고, 교육도 받았고, 저 멍청이 남편이랑 사는 법도 알고 있어. 당신이 뭘 두려워하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어.... 인류 최악의 멍청이들도 이걸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았다고.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어! 당신은 멍청이가 아니니까.”
아마도 마리솔 평생 들었던 최고의 칭찬이고 격려였을 것 같아요. 눈물범벅인 마리솔의 얼굴이 그걸 말해주었어요.
오베 이야기를 되새기자니, 이런 부류 영화의 원형처럼 생각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입니다. 강박증과 온갖 예민증을 지닌 까칠한 노인 멜빈 유달(잭 니콜슨)이 당차고도 따뜻한 싱글맘 캐롤(헬렌 헌트)을 만나 자신만의 규칙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된 이야기죠. 그게 벌써 25년 전이라니, 오베와 멜빈이 ‘새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믿기 힘든 일이네요.
[ 모기수다 시즌2 ]
🎬 4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4월의 모기수다 프랜 크란츠 감독의 <매스>(2021)입니다.
📍 시간 : 2023년 4월 8일(토) 오후 3시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모기수다 시즌2 오픈카톡방 / 강원중 사무국장 010-2567-4764
* 모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오픈 카톡방에 부담없이 입장하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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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봄꽃 소식이 올라옵니다. 일상에 다시 ‘색깔’이 찾아왔네요.
이번 주말엔 오베와 오토와 멜빈, 누구든 골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타인을 위해 싸우거나,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누군가에게 색깔이 되어주고 싶다는 착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요, 올해의 4분의 1이 벌써 지나가버렸다는,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진실도 잠시 잊게 되실지 모르겠어요.
만우절 아침에 인사드립니다.
좋은 봄날 되소서.
글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4월 1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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