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고 낭만적인 은둔을 위하여”
얼마 전부터 SNS 세계에서 사라지기를 선택했어요. 은둔중입니다. 간혹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메일을 보내오죠. “***님이 새로운 사진을 올렸습니다.” “OOO님의 새 소식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더러는 잘 지내는지 진짜진짜 궁금한 벗들도 있고, 그래서 자주 마음이 동하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잘 참고 있습니다. 저는 ‘명랑한 은둔자’니까요. :)
“나는 독신여성이에요.” “서른여덟 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아휴,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지금이면 진작 결혼했어야 하는 건데.”라고 답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라고 말하고 나서 스스로 얼마나 산뜻하고 멋지게 느꼈는지 모른다고, 캐럴라인 냅은 썼어요.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말이지요.
온라인과 SNS에서 은둔을 선택한 후 가장 기분 좋게 성가신 일은 누군가가 궁금해지면 직접 연락을 해야 한다는 점이예요. 앱을 켜고 접속하기만 하면 뭘 먹고 어디서 뭐하고 다니는지,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는 어떤지 대략 알 수 있었던 친구들과 지인들의 소식을 더 이상 저절로 알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당신과 내가 늘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만남과 접촉의 필요를 상쇄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온라인에서 자주 접하는 지인들과 실제로 만났을 때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온도차’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친밀감(의 환상)이 무례함을 낳는 경우 같은 것 말이죠. 따지고 보면 온라인에서 보는 우리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그보다는 훨씬 가까울 수 있는(또는 가까워야 할) 사이이기도 할 겁니다. 오늘 오후 내 가족의 행방을 페이스북을 열어야 알 수 있다면 좀 이상하긴 하죠.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의 말입니다. 『소음 공화국』의 저자 다이애나 세네찰은 이렇게 이야기했다는군요. “최고의 힘은 유연한 고독에 있다. 그것으로 타인의 존재도, 타인의 부재도 견딜 수 있다.”(324쪽)
하지만 역시 저자의 결론은, 좀 싱겁게도 이렇습니다. 사적인 자기 성찰과 사교적인 만남을 계속 오가야만 조화와 가치의 감각을 기를 수 있다는 것 말이죠.
🤝🏿 드디어 만났습니다!
그러니까요. 은둔중의 만남은 정말로 남달랐어요. 3회 모기영에 함께했던 자원활동가 모임이 있었습니다. 작년 11월 이후 다시 심각한 팬데믹 시절을 맞이하면서, 날짜까지 정했다가 계속 지연되었던 모임입니다. 뒤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려 민망하지만 일단 얼굴보고 함께 밥 한 끼 먹자는 생각이었어요. 각자 가능한 날짜에 두 팀으로 나누어 모였는데요, 모이지 못하는 동안 모두가 모기영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다음’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확인하면서, 예기치 못한 흥분과 감동이 있었어요. 조만간 자원활동가들 뿐 아니라 후원자/예비 후원자 여러분들이 참여 가능한 정기 모임들을 꾸려보려고 합니다. 주간 모기영을 받아보시는 여러분들께서도 기대해주시고, 모기영의 새로운 문이 열리면 여러 모양으로 동참해주세요. 😊 함께하고 싶은 모기영이 되겠습니다.
❤ 변함없는 후원에 감사를 ❤
아, 이번 호 주간 모기영이 한 주 늦어진 것은 저의 은둔과는 무관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그러셨어야 할텐데요.. ^^;;) 미리 공지하지 못한 점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3주간 모기영을 후원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영, 김●정, 김●준, 김●균, 김●향, 박●아, 박●용, 박●형, 박●선, 박●홍, 배●우, 송●훈, 신●주, 이●은, 이●진, 오늘교회, 장●나, 조●희, 채●희, 최●창, 무명1, 무명2
(2022.3.9.-2022.3.31. 기준)
유튜브 [영화로운 모기씨]와 모기영의 모든 활동은 여러분의 후원금으로 이루어집니다.
여전히, 정기후원과 일시후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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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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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것들을 보자”
‘예쁜 것들을 봐야 해’라고, 부쩍 자주 생각만 하고 있다가 외출을 감행했던 어느 봄날 오후입니다. <수렴>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이슨 마틴의 개인전이었어요. 따뜻하고도 은은한 색상들을 마음에 가득 품고 왔습니다. 카메라가 그 빛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면서요.
얼핏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과 만남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하나로 수렴하고, 혹시 내 인생의 모든 질문과 난제가 갑자기 헤아려지는 순간이 있다면, 이런 예쁜 색과 둥글둥글하고도 활기찬 붓질로 남았으면 합니다.
자가격리라는 비자발적 은둔의 터널을 통과하고 계시거나 막 지나오신 분, 혹시라도 앞에 두고 계신 분들에게,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질병이나 재앙으로 일상이 쪼그라드는 중에 서 계신 분들께도, 오늘은 명랑함을 한 줌 손에 쥐어드리고 싶습니다.
안녕들 하시지요?
2022.4.2.토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수석프로그래머
최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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