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창의 따옴표
불행의 축복 - 영화 <마리아>(2024)
"행복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죠"
위대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일주일을 그린 영화 <마리아>에서 그녀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이렇게 말한다. 삶은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며, 관조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은 삶의 힘든 대목에서 세상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인간이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각자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은 마주하는 세상의 한 부분일 뿐, 나와 동시에 행복하거나 고통 받는 이는 아닌 것이다. 결국 삶은 각자의 행복과 고통이 엇갈리고 교차하는 집합이고, 인간의 성숙은 이렇게 주고 받는 영향 안에서 계속 변화하며 그 차이가 줄어들어 하나의 깨달음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 진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마침내 이런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가 바로 죽을 때가 된 것이라는 것, 이 또한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삶의 마지막은 항상 중요하다. 이 때만큼 진지하고 고양된 의식을 지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워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꼈을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삶의 의미들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 우리집 고양이를 가장 오래 가까이 들여다본 것도, 우리 집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예전에 만났던 친구의 힘든 인생이 불현듯 떠 올랐던 것도, 내가 힘들어서 잠을 자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세상과의 교류가 강하고 활발했던 유명한 이들의 생의 마지막은 종종 훌륭한 영화의 소재가 된다. 불행한 가족사와 순탄치 못했던 연애사를 겪으며 자신의 시대를 만들었던 이 천재적인 예술가는, 행복과 아름다운 음악이 병행할 수 없음을 말하며 자신의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암시한다.
"이젠 나 자신을 위해 노래하려고요" 하지만 한 남자만 바라보던 사랑이 행복이라고 믿으며 오랜 세월 노래를 떠나 있던 그녀는, 정작 이 깨달음을 왔을 때 이제 더 이상을 노래를 할 수도, 무대에 오를 수도 없는 상태로 심한 우울증과 수면장애에 시달리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극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자기에게 노래가, 음악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재키>(2016), <스펜서>(2021)을 연출하며, 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한 여성들을 그려온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번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 인물을 앉혀 놓고 우리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헌가'를 묻고 있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왕실에서 벗어나 자기 이름을 찾기로 했듯, 마리아도 자기의 노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추구했던 행복이 아니라, 싫든 좋든 자기가 지나왔던 불행한 삶의 발자국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모순>(양귀자)의 주인공 안진진은, 바람 잘 날 없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엄마보다, 유복하고 걱정 없이 사는 쌍둥이 이모를 늘 부러워한다. 그러나 엄마의 삶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고, 오히려 이모가 삶의 권태를 이기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흔히 행복이라 불리는 '걱정 없는 삶'은 오히려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예술로서의 삶은 행복에서 오지 않는다. 그 행복은 파란 알약을 먹고 현실 세계에 완전히 몰입할 때 나타나는데, 예술은 빨간 알약을 먹고 이면의 삶의 본질을 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은둔기계>(김홍중)에서 말하듯, 예술의 핵심 상태는 '트러블'인 것이다.
... 상처가 푸르게 부었을 때 바라보는 강은 더욱 깊어지는 법.... 그 아픔은 잠길 듯 잠길 듯 한 장 파도로 흘러가고... 내 고통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고독의 깊이> 기형도
글 : 최규창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5년 4월 26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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